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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벤허) 230919 벤허라는 극과 나이브한 규벤의 캐릭터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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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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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공때 규벤 특유의 평화주의적인, 세상보다 자기 가족과 식솔이 더 중요한 '나이브'한 성정이 1막 마지막 운명을 통해 대의로 확장되면서 임팩트가 엄청났다는 후기를 쓴 적이 있거든.

그때 나한테는 운명의 임팩트가 워낙 컸고, 상대적으로 신에게 반기를 들기보다는 슬퍼하는 것에 가까워보인 골고다는 덜한 인상이었어.

근데 어제 경셀라 스포씬 이후에 어머니와 티르자, 떠나는 유대군사들, 죽음 앞에 놓인 메시아 앞에서 부르짖는 골고다까지

그 흐름에서 규벤 얼굴에 점점 눈물이 차오르는게 보이더니 골고다때는 진짜  용량을 벗어난 눈물들이 펑펑 흘러넘치는데, 너무 울다보니 벤허가 꼭 아이로 돌아간듯한 느낌이 나더라고. 

감정에 순수하게 압도되서 꺼이꺼이 우는 남의 모습을 보는것도 오랜만이라 거의 테라피 되는 느낌ㅋㅋㅋㅋ

1막때 그렇게 결연하고 멋있게 운명을 불러놓고 2막에서 흉터 한번 안나봤을 것 같은 힘없고 약한(실제 벤허는 어느것도 이루지 못했으므로) 어린양으로 돌아가는 전개가 맞나? 의문을 가졌던 때도 있었는데

어제 그 의문이 해소되고 새로운 시야가 열린 느낌이었음..


나이브함,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함이란 항상 양날의 검임.

아직 세상의 어두운면이나 상실을 경험해보지 못한 규벤은 '모든게 별 문제 없이 해결되면 좋겠다'고 정말 진심으로 생각하고(아버지의 상실로 그늘져있는 어머니와 달리), 동생이 일부러 기왓장을 떨어뜨린것이 아니다, 모든건 오해다라는 말을 로마인 친구가 믿어주고 도와줄거라 생각함.

그 나이브한 사고의 결말은 가족의 해체와 노예행인데, 이놈은 그런데도 타고난 천진함, 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질 못함. 

그래서 로마군인 장군을 살리고(유다와 퀸터스 장군이 손을 마주잡는 장면에서 규벤은 같은 경험을 한 동료애보다 인간애의 느낌이 굉장히 압도적), 또 그래서 그 집안의 양자로도 들어갈 수 있었음.

이때 규벤의 관심사는 가족의 복원 뿐이고, 휑해진 집에서도 '아직도 여전히' 가족이 돌아올 수 있다고 믿음. 

하지만 양아버지인 장군과 어머니, 여동생의 죽음이라는 개인의 고통을 경험하고 필연적으로 고통의 근원인 로마에 대한 반기로 전환되는데, 규벤은 이 과정에서 칼을 들때 굉장히 고통스럽게 듬.

그동안 외면해왔던 세상의 흐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이기도 하고, 믿어왔던 선과 천진함을 이제는 어린시절의 과오로 묻어둘 수 밖에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에

유독 천진하고 나이브했던 유다 벤허인 규벤의 운명은 확실히 임팩트가 큼. 칼을 집어 드는 순간 역사적 영웅보다는 마음이 찢기는 고통의 한 개인이 잘 보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칼을 집어든 규벤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나?

냉정한 마음으로 거리를 두려했던 친구의 죽음. 자기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자기보다 훨씬 일찍이 세상을 경험하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 일어서야만 했던 친구의 쓸쓸한 죽음임.

어제는 유독 경셀라가 '나메셀라'부터 자신의 순수함을 죽이고, 마음을 죽여가면서 얻은 생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서, 죽음의 질주부터 나메셀라 맆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결국 '슬픔을 지닌 또다른 개인'이었던 메셀라에게도 자꾸 공감을 느끼게 되더라.

그러니 결국 1막과 같은 상실이 규벤 앞에 반복되는데, 운명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듯 보였던 규벤은 여전히 친구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대의 속에 숨어있는 개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지 못함.

이런 시선은 골고다 속에 십자가를 쥐고 걸어가는 메시아를 따라가는 모습과도 겹치는데, 메시아라는 존재를 진짜 구원자나 영웅으로 보기보다 자신처럼 누더기가 된채 고통 속에 걸어가는 개인으로 치환하고 감정 이입을 함. 

왜냐하면 규벤에게 메시아란 자신이 생의 끝을 잡고 가장 힘들어한 순간에 '물을 준',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역사를 바꾸기보다 그저 한사람 한사람의 생이 더 중요한 규벤에게는 메시아도 그런 존재인 것처럼 보여.

그렇다면 '그들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메시아의 말은 어떤 느낌이냐면, 사실은 규벤이 일찍이 마음 속으로 가지고 있었던 내면의 발로처럼 보이기도 함.

규벤은 메시아가 '그 말을 할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거든. 

속삭이고 떠나가는 메시아를 쳐다보는 눈빛에 놀라움보다 슬픔이 가득함.

그 숱한 경험을 하고도 타고난 천진함을 버리지 못한 규벤은 메셀라를 미워할수도 없었고, 그렇기에 메셀라가 일으킨 양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의 죽음에 결국은 누구도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임.

미워할 대상 없이 그저 슬픔만이 남아 있으니 의문과 분노로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저 슬픔에 압도되서 꺼이꺼이 우는데, 어제 공연은 정말 흡사 어린 아이가 주변 보지 않고 우는 것처럼 울더라고.

속살을 다 드러내고 눈물을 흘리는 약함이 근데 결코 한심하거나 가볍게 보이지 않고 도리어 힐링되는 그 느낌 알지?


벤허의 메시지는 결국 메시아의 단 한마디 '저들을 용서하라'는,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나이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마디인데, 

세상의 순수함을 믿고 용서하기에 꺼이꺼이 울어재끼는 규벤을 보니, 그냥 아주 오랜만에 그런 가치를 눈앞에서 목도한 기분이 들더라.

Naive 라는 단어가 대게 부정적 어폐를 담은 말로 쓰이지만, 본 뜻만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함과 용서로 모든것은 구원될지도 모른다는 나이브하지만 믿고싶어지는 이야기랄까.

사실 이게 벤허라는 극이 정말로 의도한 방향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어제는 내가 납득 당해버린 느낌이었엌ㅋㅋㅋ

어제 밤에 공연보고 들어와서 반쯤 잠에 취해 쓰다가.. 이제 낮공 들어가야되서 마저 쓰고 올림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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