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발단
탄타입에 너무 늦게 입덕한 자에게 닥쳐오는 가혹한 시련... 그놈의 저작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태방덬들의 아름다운 집단지성 덕에 영자막 딸린 영상을
자동번역해서 보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애 이름이 Type이라고 그걸 진짜 꼬박꼬박 ⭐유형⭐이라고
바꿔주는 친절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서 결국 몇 주를 참다참다 자급자족하기로 함.
2. 노가다의 시작
자막 프로그램은 대충 검색해서 최상단에 뜨는 걸로 씀.
하... 사실 옛날옛적 급식시절에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사는 배우한테 미쳐가지고
그 배우가 나오는 핵마이너 인디영화 한번 제대로 보겠답시고
딱 지금마냥 자급자족으로 자막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쓴 프로그램보다 쬐끔 더 나아진 걸 보니
세상은 역시 나빼고 다 발전하는구나 싶고 가슴이 웅장해짐.
심지어 클릭 몇번만 하면 영자막 싱크 고대로 한글 자동번역까지 해줌.
수준은 다음팟 선생님이랑 비슷한 것 같음.
10초만에 초벌번역 뚝딱 나오니까 야... 이거 주말 하루면 다 조지겠는데?
싶었지만 결국 사흘째인 지금 절반밖에 못했고...
어쨌든 노가다가 문제지 어려운 건 아니라 금방 익숙해짐.
혹시 자동번역은 상관없는데 타입이 유형이로 개명당하는건 도저히 못봐주겠는 덬이 있다면
그냥 아무 프로그램 받아다가 자동번역 한번 돌린 다음에 이름만 바꿔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음.
근데 나도 처음에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이 지경까지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말하겠음.
그리고 도대체 무슨 버그인진 모르겠는데 커서를 글자에 걸쳐두고 다른 데로 넘어가면
자꾸 그 글자가 다음 자막에 붙어서 사람 미치게 만들었음.
근데 와중에 다른 프로그램 찾을 생각은 안한 걸 보면 그래도 할 만 했나봄ㅋㅋㅋ
3. 갓 파 고
인터넷 어딘가의 현자가 말했듯 영어로 뭔갈 써야 할 상황이 오면 영어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번역기가 최적의 결과를 뱉어낼 수 있게 문장을 짜깁기해서 집어넣는 능력이 생김.
본덬 역시 그런 쪽의 머리만 잘 굴러가는 사람인지라 파파고 선생님이 편하게 보시도록
문장을 온갖 조합으로 붙였다 뗐다 하면서 굴림.
그렇게 인간과 기술의 아름다운 공존이 낳은 "말이 되는 문장"을 이제 한국인이 한국말처럼 보이게
소금후추 쳐주면 이 눈물겨운 노가다의 기본 싸이클이 완성됨. 와!
4. 심화과정(aka 뻘짓)
위에서 쓴 대로 열심히 Kor Sub 하나를 만들고나면 그놈의 유형이랑 뚝딱거리는 자동번역 미국 보낼 정도는 됨.
하지만 이미 이 노가다에 중독된 나는 좀 더 딥한 노가다를 하고싶어짐.
(영상 보는 것보다 이거 만드는 게 우선순위가 됨. 요즘 취미가 없어서 좀 집착하는 부분 인정함.)
딥한 노가다라고 했지만 사실 별 거 아님.
태국어>영어가 되는 과정에서 나온 으마으마한 축약과 생략들을 좀 손봐주고 싶었음.
ex)영자막은 단어 다섯개로 끝나는데 캐릭터는 대사를 서른마디 하고 있음.
웃기게도 의역 오역 뇌피셜 다 집어넣는 와중에 저걸 잡고 싶었음.
하지만 암만 그래도 이 나비효과에 휩쓸려서 태국어 공부까지 할 순 없었음.
(아는 태국말은 능쏭쌈 나락나락 사왓디캅 쑤쑤나로 만족해)
본 덬은 본인의 한계를 아주 잘 알기 때문에 태국어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신 원작 소설을 선녀같은 영어로 번역해둔 선생님의 페이지를 찾았음.
자막이나 소설이나 똑같은 꼬부랑말이지만 소설은 묘사가 훨씬 자세하고 친절했음.
그렇게 다섯글자로 쓰고 서른마디로 읽는 부분이 나오는 곳을 찾아내서 대충 비교를 한 다음에,
소설에 있는 긴 대사를 적당히 짜깁기해서 대사랑 자막 길이를 맞춤ㅋㅋ
근데 문제의 장면이 소설에 없을 때도 있음. 그럴땐 그냥 대충 문맥 읽고 지어냄.
이쯤되니까 자막을 만드는건지 2차 창작을 하는건지 모르겠음.
여튼 이 뻘짓까지 해서 나는 드디어 말할수 없는 그 물건(아직 절반 더 해야됨)을
자급자족으로 손에 넣게 되었음.(폴더이름: 눈물젖은 까올리)
5. 결과
캐릭터가 대사를 치면 바로 뇌에 입력이 됨. 드디어!
영자막일땐 그냥 심드렁하게 보다가 둘이 붙어먹을때만 집중했었는데,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오도방정 대주접 방청객 빙의한 상태로 볼 수 있게 됨. 역시 한국인은 한글을 읽어야함.
가내수공업 얼렁뚱땅 자막의 장단점은 아래와 같음.
장점
-내용이 바로 머리에 꽂히는 멀쩡한 자막...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보다가 거슬리는 부분이 보이면 그냥 본인이 메모장 켜서 수정하면 된다. 10초만에 수정 가능.
-말투 설정이 만든 사람 취향을 따라가서 좀 더 보기에 흐뭇해진다.
(테크노의 깐족거림을 그냥 커피에서 TOP로 끌어올리고 싶었음)
-시간 진짜 잘감. 요새 취미도 없던 차에 잘됐음.
단점
-내가 정말 제대로 번역한게 맞나 의심하는 경우가 쫌쫌따리 있음.
(이미 오역의역 최대치로 넣은 주제에 왜 신경쓰는지 본인도 모르겠음)
-자막만들고 바로 보면 이게 드라마를 보는건지 작업물 컨펌하는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됨.
눈으로 막 수정할 부분 찾고 있음. 최소 사흘은 묵혔다 봐야 남이 만든 것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듯.
-시간 진짜 잘감. 덕분에 요며칠 새벽 세시에 잠. 오늘은 올린 시간 보면 알겠지만 이미 자긴 글렀음. 연차쓸걸...
6. 그렇게 1~6편을 제대로 본 후기
-영자막 시절엔 죄다 스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부분만 쌔고닳을정도로 보느라 몰랐는데,
하나하나 나노단위로 뜯어보고 있으니까 재밌는 부분이 많았음.
특히 테크노 대사가 제일 찰지고 재밌어서 좋았음. 겁나 촐싹대긴 한데 또 베프모먼트일땐 진짜 진국이더라.
나도 저런 친구 갖고싶다! 그러니 감히 자급자족 자막의 최대 수혜자는 테크노라고 할 수 있겠음.
-켕클라 부분도 맨날 코후비면서 스킵하다가 이제서야 뭔 말인지 제대로 알게 됐는데,
대사 하나하나가 WOW... 럽바챈 생각하면 당연히 이럴 애긴 한데...
-타입은 불타는 주둥이만 수납하면 훌륭한 엄마친구아들 재질이었음.
키크고 잘생기고 몸좋고(🔥Hot🔥)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한다는 얘기가 전부 직접 언급된 부분들인데
나는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 그냥 말 험하게 하는 호모포비아 정도의 설정인 줄 알았음ㅋㅋㅋㅋ
하긴 그 얼굴에 고작 그정도 설정이 붙을 리가 없는데...
특히 공부를 거의 과탑 먹을정도로 잘한다는건 둘이 붙어먹는 부분만 봤던 일주일 전의 나였으면 아마 영원히 몰랐을 사실...
-초반부 탄은 거의 살아있는 부처님 수준이던데 반면에 타입이 빡치는 포인트도 알 것 같았음.
그렇게 싸우고 밀어내는데도 무슨 스킨십을... 어우... 보는 입장에선 뭐 고맙긴 한데... 고게 참... 좋다구...😇
-옆방에 있는 Seo가 한국말 할때 너무 좋았음. 자막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초반부에 타입 트라우마 터지는 부분도 맨날 붙어먹는 부분만 돌려보던(...) 시절엔 음 대충 뭔 일인지는 알겠다!
하고 말았었는데, 가내 수공업으로 자막 하나하나 찍으면서 다시 보니까 이입이 훅 들어가더라.
역시 한국 사람은 한글로 봐야지... 이역만리 꼬부랑 글자로는 이 느낌이 안 온다고ㅠㅠㅠ
7. 마치며
이놈의 자막땜에 눈물흘리는 나랑 같은 처지에 처한 덬들한테 나는 이렇게 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쓰긴 했는데...
박찬호 뺨치는 투머치 오도방정 대잔치 글이 돼서 여기까지 읽어주는 덬이 없을 것 같음ㅋㅋㅋㅋㅋ
어쨌든 막상 해보니까 그깟 영어실력 좀 딸린다고 아주 못할 것도 아니라서 진짜 심심하면
깨작깨작 하루에 10분짜리 한 편 뚝딱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100명의 뒷북 태덕과 100개 버전의 한글자막...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이 쌩고생을 나만 즐기기엔 너무 아쉬우니 자급자족 해야하는 덬들은 꼭 한번 해보자!
이제 곧 2시즌도 나오니까!! 쑤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