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연재해 온 10000글자 롱 인터뷰가 새로운 장으로 돌입. 힘들 때, 슬플 때, 항상 옆에 있어 준 것은 누구인지-
인연을 주제로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제1번은 타키자와 히데아키.
고민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지만 결코 강한 것은아니야……
그런 고고한 남자가 오늘도 무대에 서는 원동력은?
이번부터 10000자 인터뷰의 새 시리즈가 시작되는데 테마는 인연(유대, 키즈나)인데요 이 문구를 듣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글쎄요 누굴까나...
그러면 고민하거나 핀치에 몰렸을때 상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 아무에게도 상담하지않아요. 어쩐지 사람에게 상담받고 기분이 변하는 경우라면 내 안에서 아직 여유가 있는 단계라고 생각하네요. 고민하는 시간도 아깝고 인연이라는건 제 안에서는 더 깊은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그러면 누구에게도 상담하지않는 강한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건가요?
-저 전혀 강하지않아요. 단지 이야기하지않는것은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닌 놓인 환경의 문제네요. 제가 몸담고있는 세계가. 어쩐지 괜찮나요? 제 이야기 주제와 상관없는거같은데요?
괜찮습니다. 그럼 듣는 방법을 바꿔서, 타키자와군이 입소한것이 1995년 4월인데요 오늘까지 입소후를 되돌아봤을때 특별히 생각나는것을 말씀해주세요.
-3가지네요.첫번째는 입소 후 요코하마아레나에서 킨키키즈의 백으로 나간거에요
두번째는?
-라스베가스에 가서 여러가지 무대를 본 일이네요.
세번째는?
-음 이건 최근의 일이네요. 지난해 말 타키츠바의 라이브일이네요. 저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물론 핀치상태에서 했었지만 공부도 되었고 여러가지를 재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자 그럼 그 세가지 기억에 남는 순간을 중심으로, 그때 곁에 있어준 사람은 누구였는가? 를 들어보려고합니다.
-알겠습니다
특별한 존재일까나
형님같은 존재
첫 무대라거나 기억에 남을거같은데요
-중 1때 오디션이 끝나고 떨어졌겠지 했는데 1주일후에 전화가 왔네요 킨키키즈의 콘서트 리허설이 있으니까 잊지말고 와.라고
누나가 킨키 도모토 코이치군의 팬이었죠?
-네. 저는 쟈니즈에 대해서 자세하게 몰라서 주니어에 대해 몰랐고 들어가면 바로 데뷔할수있는줄알았어요.
그게 급하게 무대에 서게되었다고?
-백의 제일 끝자락이었어요. 이 세계 대단해!! 라고 포로가 되어서, 그때까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것도 좋아하지않았고 오히려 싫어했었는데 그런것도 잊을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킨키키즈는 어떤 존재?
-역시 지금까지도 특별하달까 형님(아니키)같은 존재네요. 제가 주니어시절에 対(마주하는) 킨키키즈같은 조금 이상한 그룹의 시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 주니어들은 여러 그룹의 백을 하고있었는데 킨키의 백만 댄스와 구성의 변경이 많아서 우리들은 여러 그룹의 백을 겸임해서 어쨌든 안무를 기억하는 양이 막대한데 그런 와중에 코이치군은 '만들고 변경, 만들고 변경' 하는 일이 많아서 최종적으로는 '주니어는 나오지 않는' 때도 꽤 있었네요. 주니어들은 "이쪽의 기분도 생각해줘" 같은 불만을 가지고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아닌 후배의 제멋대로인데도 코이치군은 그런 공기를 읽고 우리들을 대기실로 불러서 이야기를 같이 하고 어떤것을 생각하고있는지 들어준거에요. 그 후 TV에서 공연할수있는 때가 오면 주니어가 어떻게하면 멋지게 비칠지 앵글의 위치를 계산하여 주니어를 더 비춰주었어요. 주니어의 제멋대로를 받아들여서 용서해줬을뿐만아니라 모두가 TV에 비출수있게 해준거에요. "이 사람 굉장하네"라고 어린아이었지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역시 킨키키즈는 특별한 존재네요.
코이치군은 부타이 'SHOCK'시리즈를 15년간 하고있고 타키자와군은 부타이 '타키자와 가부키'를 10년간 하고있는데 어드바이스를 받는것이 있나요?
-특별히는, 그치만 생각하는것은 함께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 안에서 코이치군은 쟈니상의 제 1의 이해자라고 역시 생각하고 저는 그 뒤를 따라가는 감각은 있네요.
눈치채줬네요
언제라도 돌아오렴 이라고
입소 후 바로 드라마에 출연. 1998년에 처음 주니어 단독 콘서트가 치뤄지면서 갑자기 구성이나 연출에 참여했어요. 큰 짐을 짊어진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선배 주니어 중에서는 역시 좋게 생각하지않는 사람도 있었고요. 불쾌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상담할 사람도 없어서 주니어의 선두에 서서 공격받는것을 견딜수없게되서 한번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만두려고 생각한것은 이후에도 이전에도 그 단 한번이에요.
그치만, 참고 버텼네요
-"그만두고싶어" 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려는 생각으로 전화했어요. 막상 말하려고하니 입이 떨어지지않았어요. 그러니까 눈치채줬네요. 언제든지 돌아오라고이야기해줘서 그 말을 듣고 냉정해져서 단념할수있었네요.
타키자와군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
-뭐라고 해야할까, 일이 바빠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이야기했던적이나 함께 어딜 갔던 기억은 그렇게는 없네요. 기본적으로 뭘해도 화내지않고 꽤 자유롭게 성장했네요. 대신 뭘해도 책임은 자신이 가지라고. 자유라는것은 듣기에는 좋지만 엄격함과의 이웃이었다고 할까?
어머니, 힘들었겠네요
-쉬는 날은 계속 주무시더라고요. 그치만 아이로서는 "피곤하구나" 라는 마음보다 왜 돌봐주지 않는거야? 라는 마음이 있어서.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까
보호받을 시간이 없어서 역시 서운하기도 했다?
-어떨까요, 수업참관같은것도 온적이 한번도 없었고 뭐, 쓸쓸했던거 아니었을까요? 응.
저 꽤 얀챠(장난을 잘 치는 아이)여서 노여움을 사서 학교에서 호출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여러번 사과해줘서 평소 어머니 같은 일을 해주지않아서 그 모습을 보면서 '오 제대로 부모같잖아' 같은 (웃음) 왠지 신기한 거리감이었어요.
그만큼 어머니는 열심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네요. 어머니가 바쁘셔서 가족 모두가 모여서 "잘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먹은 기억이 없네요. 최근에는 괜찮아졌지만, 이전에는 지인의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는다던가, 큰 접시 요리가 나온다던가하면 어떻게해야 좋을지 몰랐었어요. 도시락쪽이 자신의 몫이 결정되있어서 좋았었어서요.
자 그럼, 어머니의 맛이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요리는 뭐가 있나요?
-속재료가 닭고기인 만두일까나? 처음으로 라멘가게에 가서 만두를 먹고 저민고기가 들어있어서 "이상한 가게네?" 라고 생각하고 (웃음) 아 그리고 카레, 카라아게, 아 토마토 소스의 롤캬베츠! 맛있었는데도 "맛있어!" 라고 말하면 매일 그것만 나오니까 말하지않았어요. 뭔가 받았다는 추억은 없지만 사랑받았다는건 실감이 나네요.
언젠가 좋은 추억이 되서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어
학교에서의 추억은 어떤것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저학년때 교복이라던가 사주지못해서, 겨울에도 짧은 반바지로 런닝이었네요. 어느날 전체 조회에서 교장선생님께서 전교생앞에서 "이 아이는 한겨울에도 반바지로 런닝하니 건강하다. 본받으세요!" 라고 칭찬을 받고 속으로는 '건강때문이 아니지만' 이라고 (웃음) 그래도 특별히 '싫어-'라고는 생각안했던거같아요. 그때 힘들다고 생각했을때도 언젠간 좋은 추억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어떤 싫은것도 영원하지는 않고 인생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고 고민할것도 없고.
그렇군요.
-어머니가 저랑 생일이 가까워서 함께 형제들과 축하하기도 했고 케이크가 나온것도 선물교환이 있던것도 아니었지만 다같이 "축하해" 라고 함께 말하고 그것만으로 만족했고 아, 그래도 자신의 자전거는 갖고싶었던걸까나. 친구가 자전거로 놀러갈때 나, 롤러스케이트로 쫓아갔어요. 히카루겐지가 유행중이어서 조금 괜찮았을지도 (웃음) 역시 어머니가 담백했다고 할까 "우리는 우리!"라는 마음이 있던게 큰 위로라고 생각하고있어요.
어머니가 강했었네요.
- 강했어요. 어머니의 친정이 엄격해서 아마 거기에 반하고(반대)있던거 같았어요. 그래서 자기 아들은 자유롭게라고 생각했던거같아요. 성격도 보통은 풀이 죽는일에도 풀죽지않고 웃으면서 끝냈어요. 그러니까 특별히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고생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타키자와군의 강함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거네요.
-아마, 그렇지요
일에 관해서는 어머니, 어떤 입장이셨어?
-지금도 그렇지만 일체 아무말하지않으세요. "힘내" 라는 말도 하지않으세요. 하지만 처음 드라마촬영을 했을때일까나 사랑니가 아파서 잠을 잘수없어서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게끔 한밤중에 드라이브해준적이 있어요. 근처를 빙빙 돌았을뿐이지만, 지탱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어머니가 바빠서 자유로운 시간이 한밤중이라서 밤중에 같이 나왔던적이 몇번 있네요.
일상의 일을 잊고,
두시간만은 꿈을 꾸세요.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의 두번째는 라스베가스에 간것이라고 말했었죠?
-처음 간것이 10대 중반이네요. 쟈니상이 데려다주고 그걸로 해외에 간건 정말 처음인것도 있었지만, 정말 충격이었어요. 정말, 여러가지 쇼를 봤는데요. 어떤 쇼도 말이 아니라 몸으로, 퍼포먼스로 감동을 전하고있었어요. 연대나 국적이나 언어가 달라도 누구라도 감동할수있는 쇼가 엔터테이먼트인것같아서 이걸 쟈니상은 구하고(바라고, 요구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기위해 일부러 주니어의 쿠소가키들을 데려왔다고 생각해요.
사장은 이런 부분을 배워봐 라고 가르쳐주지않나요?
-하지않네요. "이 부분이 대단해 "라고 말하면 모두 그 부분밖에 보지 못하게 되버리니까. 그러면 같은 성장밖에 못하게되니까요. 각각의 감성으로 배우라는 자세입니다.
그게 쟈니즈의 제왕학이네요.
-우리들은 '쟈니이즘'이라고 부르고있네요. 여러가지 하는 방법(방향)이 있지만, 쟈니즈의 경우 쟈니상이 계기를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자신의 것으로 자신을 닦아가는것일까나. 그러니까 쟈니이즘은 사람의 수만큼 있네요. 쟈니즈는 뭘까, 엔터테이먼트는 뭘까, 각각 주의하고 생각할수밖에없다. 그래서 어떤길을 가도 틀리지않고 지름길도 없다. 모두 각자 다르고 제각각 개성의 그룹이 되면 재미있어지게된다. 같은 캐릭터뿐이면 그룹이 되도 재미없어진다.
그렇군요.
-쟈니상, "YOU는 어떻게 생각해?" "YOU가 그렇게 생각하면 해봐" 라고 지금까지도 말하고있다. 뭔가 말이 아니라 경험에서 기억하게. 그런 부분은 어딘가 우리 어머니와 겹치는 부분이 있군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뭐 기본적으로 쟈니상이 말하는것은 알기 곤란하지만요. 사람은 무거운 짐을 들고가는것같네요. 어떻게 잘 말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웃음)
나카야마 유마군을 취재했을때 사장이 말하는 의미를 모르겠어서 타키자와군에게 상담했다고 들었어요.
-쟈니상의 말, 처음에는 잘 모르거든요. "그런 멋있음 필요없어" 라던가 "그런거 재미있지않아" 라던가. 저는 이때까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생각했으니까. 몇번이라도 부딪혀서 이제야 말하는것을 알았으니까 유마는, 그 도중이네요.
조금씩 알아가는것인가요.
-어디선가 깨닫네요. 뭐든지 해버려도 아무말 안하네요
무슨 말이죠?
- 이해할수있는것은 보통이라고할까. 이해할수없는것은 비일상이며, 거기에 재미있는 맛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있다고 할까. 어떤 말이 적절할가 모르겠어서, 굳이 사용합니다만 쟈니상, 보통이 아니어서 그치만 보통이라면 무난한 작품밖에 태어나지않아서 쟈니상을 보고 생각하네요. 보통의 사람이 아니면 할수없는것을 하지않으면 의미가 없다고요.
쟈니이즘의 한가지는 비일상?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볍게 입에 담기 힘들겠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있어났던 후 동북에서 라이브를 했어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도 가족이 지진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었어요. 자리가 빈곳도 있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이란 무엇을 할수있는건가하고 재차 생각했고 역시 꿈을 보여주는것 "이 2시간만큼은 일상의 사건을 잊고, 꿈을 보세요"라는 공간을 제공하는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보통의 일을 하고있으면 의미가 없네요. "현실에 젖으면 안돼!"라는 쟈니상의 말을 알겠고요, 꿈의 세계로 데려가지않으면 어떡하냐고 생각하네요.
사장과 아직도 부딪치네요.
-자주 그러네요. 연출에 대해서 "이거는 관객들 몰라요" "몰라도 되요. 알게되면 끝나요!"라던가 서로 물러서지 않으니까. 현장에서 입으로 듣지 않는다던가. 꽤 있네요 (웃음)
결국 마지막은 어느쪽이 물러나나요?
-어느쪽도 물러나지않아요 (웃음) 최근은 없지만서도, 예전에는 쟈니상이 우리 어머니께 전화해서, 불평을 이야기하곤 했었어요.
반대로 사장에게 칭찬받은것은요?
-칭찬안해서, 없네요.
자 그럼 지금 쟈니이즘은 몇프로 이해하고있다고 생각하나요?
-어떨까요... 70%정도일까나. 100%라는것은 뭔가 말하지못한다고 생각해서 "아직 거기!?" 같은 말이 드러나네요. 게다가 언젠가 쟈니상이 머리속에서 떠올리는 세계를 거기까지 재현하고 싶네요.
그런날이 오면 좋겠네요.
- 15, 16세 정도일까나, YOU에게 10을 줄거니까 1만 나에게 반환해주세요"라고 말을 한적이 있어요 그것이 주니어가 TV방송국의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않아서, 쟈니상이 화가났을때 한말이에요. 최소한 인사를 하는것이 모든것을 받은것이라고. 인사는 1이라고. 그러니까 최소한 인사를 하라고. 정말로 모든것을 받았으니까 조금이라도 돌려주고싶네요. 다만 받은것이 많아서 그 크기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보답이 모자라네요. 결국은 각각 힘내는 모습을 보여주는수 밖에 없네요.
사장의 효행의 하나로 작년에 생일파티를 해준거죠?
-했었네요. 쟈니상, 처음이라고해서
간사는 타키자와군?
-아뇨 저는 도와주는 사람이었고요 간사는 유마였어요. 유마로부터 생일파티를 열어본적이 없어서 회장은....? 이라고 상담을 받아서 "아 그럼 그건 내가 준비해둘게!" 말하고 "모두를 부르는것은..." 라고 해서 "내가 부를게!" "당일 MC는..." "내가 대본을 써올게!" "당일 흐르는 영상은..." "내가 편집해올게!" 해서
그거 타키자와군이 간사인거 아닌가요?
-저는 어디까지나 도와준거고 유마가 간사입니다 (웃음)
사장은 기쁘게 받았나요?
-처음에, 눈치채고 달아났네요. 마중나가서 약속 장소에 갔는데 없어서, 어쨌든 설득해서 회장에 데리고갔는데 어쩐지 납득하지 않는 느낌으로 계속. 도중에 생일파티도 좋을지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웃음)
참가 멤버는요?
-꽤 많이 오였어요. 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왔고, 올수 없는 사람중에서는 비디오 메세지나 편지를 보내준 사람도 있었고. 제가 영상편지를 편집했지만. 모두 꽤 말하고싶은 상태였어요.
그랬나요?
-모두 지금 본심을 말하지않으면 평생 말할수없다고 생각한거같아서 (웃음) 역시 평소에는 "고마워"라는 말 안하니까요. 쑥쓰러우니까요. 부모님에게도, 갑자기 "고마워"라고 못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생일파티 명목으로 저희들이 이때까지감사를 처음으로 전했달까. 비디오 메세지를 본 타이밍에서 쟈니상, :모두 좋은 아이로 자라서 다행이야. 행복해"라고 말했네요 역시 조금 좋았을라나. 파티가 끝나고 "생일파티 올해 한번 더하자"고 해서 "아니아니 쟈니상. 생일파티라고 하는건 매년 한번이야? 라고 설명해줬네요 (웃음)
핀치를 찬스로
내가 타키츠바를 지킬거야.
세번째로 기억에 남는건 지난해 말 타키&츠바사의 콘서트라고 말했었네요. 이마이 츠바사군 부재의 콘서트였었던거죠.
-솔직히 지금에서야 말할수있는거지만, 꽤 위험했고 어떻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치만 노래는 물론 MC도 호평이었었네요.
-MC, 뭐라고 말해야할까 고민이었었네요. 어떤 대응이 츠바사 본인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한편 팬을 안심시킬수 있을까. 이것은 팬을 포함해서 "이 사람에게 맡기자"라고 생각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타키츠바를 지킬거야"라는 말이 나오고..
앙코르에서 입은 "翼 -츠바사-' 라고 적혀진 티쳐즈, 츠바사군이 서있는 위치에도 조명이 비추거나 아이카타 사람이 넘치는 연출이었어요.
-뭐라고 해야할까, (츠바사가) 있는 전제의 구성밖에 생각하지않아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는것처럼 했달까요.
그 후 '베스트 아티스트 2014에 츠바사군 대신 아이바 마사키군 (아라시), 요코야마 유군 (칸쟈니), 카메나시 카즈야군 (캇툰), 마스다 타카히사군 (NEWS) 콜라보에 백댄서로 Hey Say Jump가 나왔네요
-기뻤네요. 모두 자기곡이 있는데도 흔쾌히 하겠다고해서, 전원 모여서 리허설 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웃의 대기실이 칸쟈니었는데요, 계속 '夢物語'가 반복되고, 기뻤네요. 아이바도 "15년만에 같이 하네"라고 말해줬어요." "뭐 그렇게나 되었나"고 그리웠네요.
본방 직전에 츠바사군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요?
-왔었네요 생방송인데 꽤 허둥지둥하고있는 타이밍에요. "잘 부탁해"라고 말해서 "아, 응 알았어, 응 네네네"라는 느낌으로 (웃음) 다른 공연자에게도 한명 한명 전화했던거같아요.
그랬었군요.
-사카모토군도, 이노하라군도, 기무라군도 여러 사람들도 "뭔가 할수있는거 없어? 라고 걱정해주고 쟈니즈의 관계를 재확인 할 수 있었어요. 계기는 츠바사의 몸이니까, 무조건 기뻐할수는 없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뭔가 쟈니즈구나. 다른 사무소에는 없는 쟈니즈니까 성립할수있는 조합이구나랄까요. 위기가 와도, 그것을 핀치에서 기회로 바꾸는거라고. 츠바사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관객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스테이지를 제공했으니까.
앞으로도,
잘부탁해 (웃음)
츠바사군은 정말 계속 같이 있었네요
-오디션부터니까요
지금 두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다고 해야할까 좋은 분위기에요
2010년에는 처음으로 두사람이서 밥을 먹으로 갔다면서요?
-그러네요 맛치상이 세팅했지만요. 직전까지 두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맛치상이 중간에 들어가서 주선해준거구나.
-네 맛치상 뭔가 굉장하네요 제가 고민하고있을때도 갑자기 말을 걸어주실때가 있어서, 그래서 그때 닭날개구이를 먹었는데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둘이서만 이야기한적이 없어서 밥을 둘이서 먹은적이 없으니까.
그치만 3시간이 지나자 술의 힘을 빌려서 어색한것도 풀리고 또 한 가게 갔었어요. 그 날을 계기로 거리가 가까워졌네요.
그때까지 사이가 나빴었나요?
-그런게 아니라, 싸움같은건 해본적없어요. 싸움이 아니라 조금 싫다-같은 기분이 있어서, 서로 말하지않고 끝나버리니까 20대 전반에는요. 닭날개구이집에 가기 전날까지도 서로 방향을 마주보려고하지 않아서, 황할정도로 간단해서 "아, 뭐야 이렇게 간단한거였어?"라고 거기서부터 조금 걸리는것을 이야기하고 바로 홀가분해졌네요.
그때까지 같은 방향을 마주보지 않았었나요?
-츠바사와는 13살때부터의 전우로, 하지만 어딘가 수줍어하는면이 강하고, 같은 경치도 세계도 보고 자랐기띠문에 어딘가 오기로 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할까. 후배에게는 그룹의 일을 상담할때 "그거 같이 마주보는것이 좋아" 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우리들의 일이었어요 (웃음)
콤비로 짜서, 츠바사군이라 좋았다고 생각했을때는 어떤때인가요?
-역시 노래할때일까나, 츠바사라서 다행이라고생각할때랄까 타키&츠바사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지금도 그렇고 혼자였다면 성립하지 않았네요.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부딪혀도 같은것을 보고 온 사람끼리 알수있는것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수있는것이 있달까? 저의 가장 큰 이해자는 츠바사이고, 반대로 저도 츠바사의 가장 큰 이해자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기를 원해요 뭔가, 처음 말로 하니까 쑥쓰럽지만요 (웃음)
모처럼이니까 지면을 통해서 메세지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일까나 (웃음)
여차할때는,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해준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타키자와군이 말한, 인연(키즈나)의 이미지가 이해가기 시작했어요.
-여차할때는,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준다고 하는 안심감과 신뢰감, 그것이 인연일까나. 저에게는 그것이 어머니도 있고 쟈니상도 있고 맛치상도 있고 그리고 츠바사도 그 한 사람이네요.
지금 항상 곁에 있어준 사람들이군요.
-그렇네요. 누구도 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역시 누구보다도 효도하지않으면 안되는 사람이면 쟈니상이라고 생각해요. 180도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니까요.
그러니까 한 고생도 있지않았나요?
-물론이네요. 힘들거나, 이런것도 해야하나 싫어라고 생각했을때도 있었어요. 그치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구나 생각해요. 후회도 없어요. 감사밖에 없어요. 그저 대단한 사람을 만나버렸다고. 역시 지금까지도 반말로 말하지만요 (웃음) 과거에 많은 소년의 인생을 180도 바꿔준 사람을 저는 우연히 만나서, 인간끼리의 교제를 하거나 때로는 부모가 되거나, 때로는 친구가 되거나 때로는 싸움 상태가 되거나, 그런 관계가 쟈니즈 사무소에 들어와서 지금도 바뀌지않네요. 그게 대단해요. 지금은 쟈니상이 현장에 오는 일은 전보다 적어지고있지만, 비록 그곳에 없어도 그 작업장 구석에 쟈니상의 마음은 두고서 하자는 의식이 있는거에요.
인연을 주제로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제1번은 타키자와 히데아키.
고민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지만 결코 강한 것은아니야……
그런 고고한 남자가 오늘도 무대에 서는 원동력은?
이번부터 10000자 인터뷰의 새 시리즈가 시작되는데 테마는 인연(유대, 키즈나)인데요 이 문구를 듣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글쎄요 누굴까나...
그러면 고민하거나 핀치에 몰렸을때 상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 아무에게도 상담하지않아요. 어쩐지 사람에게 상담받고 기분이 변하는 경우라면 내 안에서 아직 여유가 있는 단계라고 생각하네요. 고민하는 시간도 아깝고 인연이라는건 제 안에서는 더 깊은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그러면 누구에게도 상담하지않는 강한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건가요?
-저 전혀 강하지않아요. 단지 이야기하지않는것은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닌 놓인 환경의 문제네요. 제가 몸담고있는 세계가. 어쩐지 괜찮나요? 제 이야기 주제와 상관없는거같은데요?
괜찮습니다. 그럼 듣는 방법을 바꿔서, 타키자와군이 입소한것이 1995년 4월인데요 오늘까지 입소후를 되돌아봤을때 특별히 생각나는것을 말씀해주세요.
-3가지네요.첫번째는 입소 후 요코하마아레나에서 킨키키즈의 백으로 나간거에요
두번째는?
-라스베가스에 가서 여러가지 무대를 본 일이네요.
세번째는?
-음 이건 최근의 일이네요. 지난해 말 타키츠바의 라이브일이네요. 저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물론 핀치상태에서 했었지만 공부도 되었고 여러가지를 재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자 그럼 그 세가지 기억에 남는 순간을 중심으로, 그때 곁에 있어준 사람은 누구였는가? 를 들어보려고합니다.
-알겠습니다
특별한 존재일까나
형님같은 존재
첫 무대라거나 기억에 남을거같은데요
-중 1때 오디션이 끝나고 떨어졌겠지 했는데 1주일후에 전화가 왔네요 킨키키즈의 콘서트 리허설이 있으니까 잊지말고 와.라고
누나가 킨키 도모토 코이치군의 팬이었죠?
-네. 저는 쟈니즈에 대해서 자세하게 몰라서 주니어에 대해 몰랐고 들어가면 바로 데뷔할수있는줄알았어요.
그게 급하게 무대에 서게되었다고?
-백의 제일 끝자락이었어요. 이 세계 대단해!! 라고 포로가 되어서, 그때까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것도 좋아하지않았고 오히려 싫어했었는데 그런것도 잊을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킨키키즈는 어떤 존재?
-역시 지금까지도 특별하달까 형님(아니키)같은 존재네요. 제가 주니어시절에 対(마주하는) 킨키키즈같은 조금 이상한 그룹의 시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 주니어들은 여러 그룹의 백을 하고있었는데 킨키의 백만 댄스와 구성의 변경이 많아서 우리들은 여러 그룹의 백을 겸임해서 어쨌든 안무를 기억하는 양이 막대한데 그런 와중에 코이치군은 '만들고 변경, 만들고 변경' 하는 일이 많아서 최종적으로는 '주니어는 나오지 않는' 때도 꽤 있었네요. 주니어들은 "이쪽의 기분도 생각해줘" 같은 불만을 가지고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아닌 후배의 제멋대로인데도 코이치군은 그런 공기를 읽고 우리들을 대기실로 불러서 이야기를 같이 하고 어떤것을 생각하고있는지 들어준거에요. 그 후 TV에서 공연할수있는 때가 오면 주니어가 어떻게하면 멋지게 비칠지 앵글의 위치를 계산하여 주니어를 더 비춰주었어요. 주니어의 제멋대로를 받아들여서 용서해줬을뿐만아니라 모두가 TV에 비출수있게 해준거에요. "이 사람 굉장하네"라고 어린아이었지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역시 킨키키즈는 특별한 존재네요.
코이치군은 부타이 'SHOCK'시리즈를 15년간 하고있고 타키자와군은 부타이 '타키자와 가부키'를 10년간 하고있는데 어드바이스를 받는것이 있나요?
-특별히는, 그치만 생각하는것은 함께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 안에서 코이치군은 쟈니상의 제 1의 이해자라고 역시 생각하고 저는 그 뒤를 따라가는 감각은 있네요.
눈치채줬네요
언제라도 돌아오렴 이라고
입소 후 바로 드라마에 출연. 1998년에 처음 주니어 단독 콘서트가 치뤄지면서 갑자기 구성이나 연출에 참여했어요. 큰 짐을 짊어진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선배 주니어 중에서는 역시 좋게 생각하지않는 사람도 있었고요. 불쾌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상담할 사람도 없어서 주니어의 선두에 서서 공격받는것을 견딜수없게되서 한번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만두려고 생각한것은 이후에도 이전에도 그 단 한번이에요.
그치만, 참고 버텼네요
-"그만두고싶어" 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려는 생각으로 전화했어요. 막상 말하려고하니 입이 떨어지지않았어요. 그러니까 눈치채줬네요. 언제든지 돌아오라고이야기해줘서 그 말을 듣고 냉정해져서 단념할수있었네요.
타키자와군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
-뭐라고 해야할까, 일이 바빠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이야기했던적이나 함께 어딜 갔던 기억은 그렇게는 없네요. 기본적으로 뭘해도 화내지않고 꽤 자유롭게 성장했네요. 대신 뭘해도 책임은 자신이 가지라고. 자유라는것은 듣기에는 좋지만 엄격함과의 이웃이었다고 할까?
어머니, 힘들었겠네요
-쉬는 날은 계속 주무시더라고요. 그치만 아이로서는 "피곤하구나" 라는 마음보다 왜 돌봐주지 않는거야? 라는 마음이 있어서.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까
보호받을 시간이 없어서 역시 서운하기도 했다?
-어떨까요, 수업참관같은것도 온적이 한번도 없었고 뭐, 쓸쓸했던거 아니었을까요? 응.
저 꽤 얀챠(장난을 잘 치는 아이)여서 노여움을 사서 학교에서 호출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여러번 사과해줘서 평소 어머니 같은 일을 해주지않아서 그 모습을 보면서 '오 제대로 부모같잖아' 같은 (웃음) 왠지 신기한 거리감이었어요.
그만큼 어머니는 열심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네요. 어머니가 바쁘셔서 가족 모두가 모여서 "잘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먹은 기억이 없네요. 최근에는 괜찮아졌지만, 이전에는 지인의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는다던가, 큰 접시 요리가 나온다던가하면 어떻게해야 좋을지 몰랐었어요. 도시락쪽이 자신의 몫이 결정되있어서 좋았었어서요.
자 그럼, 어머니의 맛이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요리는 뭐가 있나요?
-속재료가 닭고기인 만두일까나? 처음으로 라멘가게에 가서 만두를 먹고 저민고기가 들어있어서 "이상한 가게네?" 라고 생각하고 (웃음) 아 그리고 카레, 카라아게, 아 토마토 소스의 롤캬베츠! 맛있었는데도 "맛있어!" 라고 말하면 매일 그것만 나오니까 말하지않았어요. 뭔가 받았다는 추억은 없지만 사랑받았다는건 실감이 나네요.
언젠가 좋은 추억이 되서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어
학교에서의 추억은 어떤것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저학년때 교복이라던가 사주지못해서, 겨울에도 짧은 반바지로 런닝이었네요. 어느날 전체 조회에서 교장선생님께서 전교생앞에서 "이 아이는 한겨울에도 반바지로 런닝하니 건강하다. 본받으세요!" 라고 칭찬을 받고 속으로는 '건강때문이 아니지만' 이라고 (웃음) 그래도 특별히 '싫어-'라고는 생각안했던거같아요. 그때 힘들다고 생각했을때도 언젠간 좋은 추억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어떤 싫은것도 영원하지는 않고 인생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고 고민할것도 없고.
그렇군요.
-어머니가 저랑 생일이 가까워서 함께 형제들과 축하하기도 했고 케이크가 나온것도 선물교환이 있던것도 아니었지만 다같이 "축하해" 라고 함께 말하고 그것만으로 만족했고 아, 그래도 자신의 자전거는 갖고싶었던걸까나. 친구가 자전거로 놀러갈때 나, 롤러스케이트로 쫓아갔어요. 히카루겐지가 유행중이어서 조금 괜찮았을지도 (웃음) 역시 어머니가 담백했다고 할까 "우리는 우리!"라는 마음이 있던게 큰 위로라고 생각하고있어요.
어머니가 강했었네요.
- 강했어요. 어머니의 친정이 엄격해서 아마 거기에 반하고(반대)있던거 같았어요. 그래서 자기 아들은 자유롭게라고 생각했던거같아요. 성격도 보통은 풀이 죽는일에도 풀죽지않고 웃으면서 끝냈어요. 그러니까 특별히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고생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타키자와군의 강함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거네요.
-아마, 그렇지요
일에 관해서는 어머니, 어떤 입장이셨어?
-지금도 그렇지만 일체 아무말하지않으세요. "힘내" 라는 말도 하지않으세요. 하지만 처음 드라마촬영을 했을때일까나 사랑니가 아파서 잠을 잘수없어서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게끔 한밤중에 드라이브해준적이 있어요. 근처를 빙빙 돌았을뿐이지만, 지탱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어머니가 바빠서 자유로운 시간이 한밤중이라서 밤중에 같이 나왔던적이 몇번 있네요.
일상의 일을 잊고,
두시간만은 꿈을 꾸세요.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의 두번째는 라스베가스에 간것이라고 말했었죠?
-처음 간것이 10대 중반이네요. 쟈니상이 데려다주고 그걸로 해외에 간건 정말 처음인것도 있었지만, 정말 충격이었어요. 정말, 여러가지 쇼를 봤는데요. 어떤 쇼도 말이 아니라 몸으로, 퍼포먼스로 감동을 전하고있었어요. 연대나 국적이나 언어가 달라도 누구라도 감동할수있는 쇼가 엔터테이먼트인것같아서 이걸 쟈니상은 구하고(바라고, 요구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기위해 일부러 주니어의 쿠소가키들을 데려왔다고 생각해요.
사장은 이런 부분을 배워봐 라고 가르쳐주지않나요?
-하지않네요. "이 부분이 대단해 "라고 말하면 모두 그 부분밖에 보지 못하게 되버리니까. 그러면 같은 성장밖에 못하게되니까요. 각각의 감성으로 배우라는 자세입니다.
그게 쟈니즈의 제왕학이네요.
-우리들은 '쟈니이즘'이라고 부르고있네요. 여러가지 하는 방법(방향)이 있지만, 쟈니즈의 경우 쟈니상이 계기를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자신의 것으로 자신을 닦아가는것일까나. 그러니까 쟈니이즘은 사람의 수만큼 있네요. 쟈니즈는 뭘까, 엔터테이먼트는 뭘까, 각각 주의하고 생각할수밖에없다. 그래서 어떤길을 가도 틀리지않고 지름길도 없다. 모두 각자 다르고 제각각 개성의 그룹이 되면 재미있어지게된다. 같은 캐릭터뿐이면 그룹이 되도 재미없어진다.
그렇군요.
-쟈니상, "YOU는 어떻게 생각해?" "YOU가 그렇게 생각하면 해봐" 라고 지금까지도 말하고있다. 뭔가 말이 아니라 경험에서 기억하게. 그런 부분은 어딘가 우리 어머니와 겹치는 부분이 있군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뭐 기본적으로 쟈니상이 말하는것은 알기 곤란하지만요. 사람은 무거운 짐을 들고가는것같네요. 어떻게 잘 말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웃음)
나카야마 유마군을 취재했을때 사장이 말하는 의미를 모르겠어서 타키자와군에게 상담했다고 들었어요.
-쟈니상의 말, 처음에는 잘 모르거든요. "그런 멋있음 필요없어" 라던가 "그런거 재미있지않아" 라던가. 저는 이때까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생각했으니까. 몇번이라도 부딪혀서 이제야 말하는것을 알았으니까 유마는, 그 도중이네요.
조금씩 알아가는것인가요.
-어디선가 깨닫네요. 뭐든지 해버려도 아무말 안하네요
무슨 말이죠?
- 이해할수있는것은 보통이라고할까. 이해할수없는것은 비일상이며, 거기에 재미있는 맛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있다고 할까. 어떤 말이 적절할가 모르겠어서, 굳이 사용합니다만 쟈니상, 보통이 아니어서 그치만 보통이라면 무난한 작품밖에 태어나지않아서 쟈니상을 보고 생각하네요. 보통의 사람이 아니면 할수없는것을 하지않으면 의미가 없다고요.
쟈니이즘의 한가지는 비일상?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볍게 입에 담기 힘들겠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있어났던 후 동북에서 라이브를 했어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도 가족이 지진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었어요. 자리가 빈곳도 있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이란 무엇을 할수있는건가하고 재차 생각했고 역시 꿈을 보여주는것 "이 2시간만큼은 일상의 사건을 잊고, 꿈을 보세요"라는 공간을 제공하는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보통의 일을 하고있으면 의미가 없네요. "현실에 젖으면 안돼!"라는 쟈니상의 말을 알겠고요, 꿈의 세계로 데려가지않으면 어떡하냐고 생각하네요.
사장과 아직도 부딪치네요.
-자주 그러네요. 연출에 대해서 "이거는 관객들 몰라요" "몰라도 되요. 알게되면 끝나요!"라던가 서로 물러서지 않으니까. 현장에서 입으로 듣지 않는다던가. 꽤 있네요 (웃음)
결국 마지막은 어느쪽이 물러나나요?
-어느쪽도 물러나지않아요 (웃음) 최근은 없지만서도, 예전에는 쟈니상이 우리 어머니께 전화해서, 불평을 이야기하곤 했었어요.
반대로 사장에게 칭찬받은것은요?
-칭찬안해서, 없네요.
자 그럼 지금 쟈니이즘은 몇프로 이해하고있다고 생각하나요?
-어떨까요... 70%정도일까나. 100%라는것은 뭔가 말하지못한다고 생각해서 "아직 거기!?" 같은 말이 드러나네요. 게다가 언젠가 쟈니상이 머리속에서 떠올리는 세계를 거기까지 재현하고 싶네요.
그런날이 오면 좋겠네요.
- 15, 16세 정도일까나, YOU에게 10을 줄거니까 1만 나에게 반환해주세요"라고 말을 한적이 있어요 그것이 주니어가 TV방송국의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않아서, 쟈니상이 화가났을때 한말이에요. 최소한 인사를 하는것이 모든것을 받은것이라고. 인사는 1이라고. 그러니까 최소한 인사를 하라고. 정말로 모든것을 받았으니까 조금이라도 돌려주고싶네요. 다만 받은것이 많아서 그 크기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보답이 모자라네요. 결국은 각각 힘내는 모습을 보여주는수 밖에 없네요.
사장의 효행의 하나로 작년에 생일파티를 해준거죠?
-했었네요. 쟈니상, 처음이라고해서
간사는 타키자와군?
-아뇨 저는 도와주는 사람이었고요 간사는 유마였어요. 유마로부터 생일파티를 열어본적이 없어서 회장은....? 이라고 상담을 받아서 "아 그럼 그건 내가 준비해둘게!" 말하고 "모두를 부르는것은..." 라고 해서 "내가 부를게!" "당일 MC는..." "내가 대본을 써올게!" "당일 흐르는 영상은..." "내가 편집해올게!" 해서
그거 타키자와군이 간사인거 아닌가요?
-저는 어디까지나 도와준거고 유마가 간사입니다 (웃음)
사장은 기쁘게 받았나요?
-처음에, 눈치채고 달아났네요. 마중나가서 약속 장소에 갔는데 없어서, 어쨌든 설득해서 회장에 데리고갔는데 어쩐지 납득하지 않는 느낌으로 계속. 도중에 생일파티도 좋을지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웃음)
참가 멤버는요?
-꽤 많이 오였어요. 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왔고, 올수 없는 사람중에서는 비디오 메세지나 편지를 보내준 사람도 있었고. 제가 영상편지를 편집했지만. 모두 꽤 말하고싶은 상태였어요.
그랬나요?
-모두 지금 본심을 말하지않으면 평생 말할수없다고 생각한거같아서 (웃음) 역시 평소에는 "고마워"라는 말 안하니까요. 쑥쓰러우니까요. 부모님에게도, 갑자기 "고마워"라고 못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생일파티 명목으로 저희들이 이때까지감사를 처음으로 전했달까. 비디오 메세지를 본 타이밍에서 쟈니상, :모두 좋은 아이로 자라서 다행이야. 행복해"라고 말했네요 역시 조금 좋았을라나. 파티가 끝나고 "생일파티 올해 한번 더하자"고 해서 "아니아니 쟈니상. 생일파티라고 하는건 매년 한번이야? 라고 설명해줬네요 (웃음)
핀치를 찬스로
내가 타키츠바를 지킬거야.
세번째로 기억에 남는건 지난해 말 타키&츠바사의 콘서트라고 말했었네요. 이마이 츠바사군 부재의 콘서트였었던거죠.
-솔직히 지금에서야 말할수있는거지만, 꽤 위험했고 어떻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치만 노래는 물론 MC도 호평이었었네요.
-MC, 뭐라고 말해야할까 고민이었었네요. 어떤 대응이 츠바사 본인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한편 팬을 안심시킬수 있을까. 이것은 팬을 포함해서 "이 사람에게 맡기자"라고 생각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타키츠바를 지킬거야"라는 말이 나오고..
앙코르에서 입은 "翼 -츠바사-' 라고 적혀진 티쳐즈, 츠바사군이 서있는 위치에도 조명이 비추거나 아이카타 사람이 넘치는 연출이었어요.
-뭐라고 해야할까, (츠바사가) 있는 전제의 구성밖에 생각하지않아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는것처럼 했달까요.
그 후 '베스트 아티스트 2014에 츠바사군 대신 아이바 마사키군 (아라시), 요코야마 유군 (칸쟈니), 카메나시 카즈야군 (캇툰), 마스다 타카히사군 (NEWS) 콜라보에 백댄서로 Hey Say Jump가 나왔네요
-기뻤네요. 모두 자기곡이 있는데도 흔쾌히 하겠다고해서, 전원 모여서 리허설 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웃의 대기실이 칸쟈니었는데요, 계속 '夢物語'가 반복되고, 기뻤네요. 아이바도 "15년만에 같이 하네"라고 말해줬어요." "뭐 그렇게나 되었나"고 그리웠네요.
본방 직전에 츠바사군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요?
-왔었네요 생방송인데 꽤 허둥지둥하고있는 타이밍에요. "잘 부탁해"라고 말해서 "아, 응 알았어, 응 네네네"라는 느낌으로 (웃음) 다른 공연자에게도 한명 한명 전화했던거같아요.
그랬었군요.
-사카모토군도, 이노하라군도, 기무라군도 여러 사람들도 "뭔가 할수있는거 없어? 라고 걱정해주고 쟈니즈의 관계를 재확인 할 수 있었어요. 계기는 츠바사의 몸이니까, 무조건 기뻐할수는 없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뭔가 쟈니즈구나. 다른 사무소에는 없는 쟈니즈니까 성립할수있는 조합이구나랄까요. 위기가 와도, 그것을 핀치에서 기회로 바꾸는거라고. 츠바사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관객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스테이지를 제공했으니까.
앞으로도,
잘부탁해 (웃음)
츠바사군은 정말 계속 같이 있었네요
-오디션부터니까요
지금 두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다고 해야할까 좋은 분위기에요
2010년에는 처음으로 두사람이서 밥을 먹으로 갔다면서요?
-그러네요 맛치상이 세팅했지만요. 직전까지 두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맛치상이 중간에 들어가서 주선해준거구나.
-네 맛치상 뭔가 굉장하네요 제가 고민하고있을때도 갑자기 말을 걸어주실때가 있어서, 그래서 그때 닭날개구이를 먹었는데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둘이서만 이야기한적이 없어서 밥을 둘이서 먹은적이 없으니까.
그치만 3시간이 지나자 술의 힘을 빌려서 어색한것도 풀리고 또 한 가게 갔었어요. 그 날을 계기로 거리가 가까워졌네요.
그때까지 사이가 나빴었나요?
-그런게 아니라, 싸움같은건 해본적없어요. 싸움이 아니라 조금 싫다-같은 기분이 있어서, 서로 말하지않고 끝나버리니까 20대 전반에는요. 닭날개구이집에 가기 전날까지도 서로 방향을 마주보려고하지 않아서, 황할정도로 간단해서 "아, 뭐야 이렇게 간단한거였어?"라고 거기서부터 조금 걸리는것을 이야기하고 바로 홀가분해졌네요.
그때까지 같은 방향을 마주보지 않았었나요?
-츠바사와는 13살때부터의 전우로, 하지만 어딘가 수줍어하는면이 강하고, 같은 경치도 세계도 보고 자랐기띠문에 어딘가 오기로 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할까. 후배에게는 그룹의 일을 상담할때 "그거 같이 마주보는것이 좋아" 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우리들의 일이었어요 (웃음)
콤비로 짜서, 츠바사군이라 좋았다고 생각했을때는 어떤때인가요?
-역시 노래할때일까나, 츠바사라서 다행이라고생각할때랄까 타키&츠바사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지금도 그렇고 혼자였다면 성립하지 않았네요.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부딪혀도 같은것을 보고 온 사람끼리 알수있는것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수있는것이 있달까? 저의 가장 큰 이해자는 츠바사이고, 반대로 저도 츠바사의 가장 큰 이해자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기를 원해요 뭔가, 처음 말로 하니까 쑥쓰럽지만요 (웃음)
모처럼이니까 지면을 통해서 메세지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일까나 (웃음)
여차할때는,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해준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타키자와군이 말한, 인연(키즈나)의 이미지가 이해가기 시작했어요.
-여차할때는,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준다고 하는 안심감과 신뢰감, 그것이 인연일까나. 저에게는 그것이 어머니도 있고 쟈니상도 있고 맛치상도 있고 그리고 츠바사도 그 한 사람이네요.
지금 항상 곁에 있어준 사람들이군요.
-그렇네요. 누구도 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역시 누구보다도 효도하지않으면 안되는 사람이면 쟈니상이라고 생각해요. 180도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니까요.
그러니까 한 고생도 있지않았나요?
-물론이네요. 힘들거나, 이런것도 해야하나 싫어라고 생각했을때도 있었어요. 그치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구나 생각해요. 후회도 없어요. 감사밖에 없어요. 그저 대단한 사람을 만나버렸다고. 역시 지금까지도 반말로 말하지만요 (웃음) 과거에 많은 소년의 인생을 180도 바꿔준 사람을 저는 우연히 만나서, 인간끼리의 교제를 하거나 때로는 부모가 되거나, 때로는 친구가 되거나 때로는 싸움 상태가 되거나, 그런 관계가 쟈니즈 사무소에 들어와서 지금도 바뀌지않네요. 그게 대단해요. 지금은 쟈니상이 현장에 오는 일은 전보다 적어지고있지만, 비록 그곳에 없어도 그 작업장 구석에 쟈니상의 마음은 두고서 하자는 의식이 있는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