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퀘어 들어갔더니 핫게에 공시 현실 어쩌구 하는 글이 올라왔길래
갑자기 나 공시 준비하던 시절이 파드득 스쳐지나가서 생전 안오던 공부방을 들어오고 후기까지 쓰게 됨
우선 내가 합격했던건 2015년이니까 어떤 학원을 가야하고 무슨 과목은 어느 강의를 들어야 되고
무슨 커리를 타야 하고 이런거 자체가 그때랑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졌을테니 그 부분은 걷어내고 이야기 하려고 함
처음에는 나도 공시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때문에 주변에서 나름 잘한다는 공시학원을 가서 종합반을 들어갔음
2개월짜리 기본강의 커리큘럼을 몇차례 반복하다 시험 앞두고 두달정도 문풀강의가 돌아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는데
그땐 학원 1년 수강권 끊어두면 합격할 줄 알았음
처음 두달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도가 팍팍 나가고 다음 두달은 들어봤던것 같은 내용이 지나가고 그 다음부터는 그래도 몇차례 반복이 되니까
아는거는 들리고 모르는건 안들리고 하는 상태가 됐는데 1년이 지나도록 이 상태에서 머물러서 나아지질 않고 첫 시험은 당연히 망쳤음
사실 여기서 문제를 깨닫고 때려쳤으면 그 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수도 있겠지만
내가 좀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아직 시작한지 1년도 안됐는데 떨어지는게 당연하지~ 내년 목표로 해야지~ 하면서 수강권 1년치를 또 끊음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
아침에 학원 가서 저녁까지 종합반 수업만 주구장창 듣다 집에 와서 드러눕는 루틴이 고착되버림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나오면서 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적이 없었거든 더구나 난 영어도 곧잘 했었어서 자만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춰버림
지금 성적이 안나오는거는 내가 조금 공부를 덜 해서 그런거고 내가 조금만 준비하면 이런거 바로 붙는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와 반대로 나는 점점 에너지를 잃고 있었고 우울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음
2년차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신체와 멘탈 양쪽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3년차 들어서면서는 원체 움직일 일이 없어지다보니
다리에 근육이 힘을 거의 잃어서 내 힘으로 계단을 오르는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함
독서실도 조명 없이 껌껌한 구조여서 우울이 매우 심해짐
밥먹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와서 길가에 주저앉아 한참을 우는 일들이 생겨남
이때 나는 더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자살 시도까지 함
그러다 조금 무섭기도 억울하기도 하고 해서 집어치우고
집에 전화해서 이제 공부 그만하겠다고 통보함
그리고나서 세달정도 집에 내려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여행만 다님
사실 집이 아주 부유하진 않았지만 계속 용돈받고 수강료 대주고 하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몇년간 백수 공시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 이후에 합격까지 끌고갈 수 있었지
아무튼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 속이 곪아터질지언정 내가 공부하는 동안에는 한번도 잔소리 하신적이 없었어 (아마 줄곧 따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놀고먹기만하는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시던 부모님이 이제 다시 공부 시작해보는건 어떠냐 하셨음
나는 그 당시에도 지금이 내 삶의 방학이다 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마 하고 바로 응하고
노량진으로 올라감
공기가 무겁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들은 이미 동네 종합반부터 느껴왔던거라 별반 새로울게 없었고
가끔 광고지에서나 보던 스타강사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게 그냥 신세계였음
마침 그때가 8월말이라서 9월부터 시작하는 단과반 수강신청을 받고 있었고
이때 행정학 이론 단과반하고 새벽 단어 문풀강의(+프리패스)를 등록함
2013년 9월부터 2015년 6월 필기 합격할때까지 아침 문풀은 불가피한 일이 없는이상 매일 실강을 들으러 갔고
지금 생각하면 그 규칙적인 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 습관 형성 + 멘탈 유지 + 실력 향상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진거 같음
그 시기부터는 매일 똑같은 생활을 했음
5시반에 일어나서 씻고 씨리얼을 타먹고 버스타고 학원으로 가서 단어강의를 듣고
바로 독서실 내자리로 가서 프리패스를 보던 문제를 풀던 이론서 n회독을 하던 자리를 지키며 9~11시쯤 귀가함
실강 수업 있는 날에는 실강 들으러 가고 무슨 학원에 모의고사 있다 그러면 아는대로 다 신청해서 이것저것 막 봄
그렇다고 그 시기동안 공부에 미쳐서 산건 아님
공부 너무 하기 싫은날에는 지하철타고 영화도 보러 가고 친구 불러서 커피마시고 산책도 가끔 하고
집에 가서는 맨손체조(지금으로 치면 홈트)도 깔짝거리기도 하고 저때 좋아하는 가수 스케쥴도 챙기러 가보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면서 지냄
그러다가 14년 연말쯤 되었을때는 아 이정도 공부량이면 내년 시험은 합격 할것같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연초로 넘어오면서 이론 암기도 마무리 되어가고 기출문풀도 틀리는 개수가 많이 줄어들면서 점점 합격에 대한 자신이 붙어가고
사실 15년 국가직 시험은 망하긴 했지만 지방직은 붙을거라 생각하며 바로 멘탈 다잡아서
정말로 그 해 지방직 붙고 탈출함
합격하고 오래 지나서 과거 기억이 미화된 데도 있을거고 어딘가는 또 잊혀지거나 더 무서운 기억으로 변했을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너무 늦게 발견한 케이스임
노량진으로 넘어오고 나서 순탄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건 이미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이기도 하고
또 귓등으로 들었을지언정 종합반 n회독이 이미 끝나있었기도 했으니까 노량진 가면 쟤처럼 누구나 합격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 하려던건 아니었음
글을 못써서 후반엔 너무 놀면서 공부한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제일 열심히 공부한것도 저때고 수업 듣다가 쓰러져 실려나간것도 저때고 독서실에서도 몇번 쓰러졌던것도 저때임
이후의 생활에 만족하냐고 물으면 그건 사실 잘 모르겠음
나는 공무원의 생활이 내 적성에 너무 잘 맞기 때문에 이 이외의 다른 직업을 떠올리기 힘듦
민원 들어오면 지금도 감당안될만큼 힘들지만 정기 인사이동 바라보면서 사는거지 뭐 ㅋㅋㅋ
당최 누구 읽으라고 쓴 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이 글이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다행일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