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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스토브리그'를 향한 과몰입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는지, 늘 앉아있던 극중 백영수가 아닌, 걸어다니는 배우 윤선우(34)가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 윤선우는 "이 작품,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이미 '분석'했었다"며 극중 보여줬던 전략분석팀 백영수의 면모를 확실히 자랑했다.
최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이신화 극본, 정동윤 연출)에서 윤선우는 드림즈의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의 아픈 손가락이자 동생인 백영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얻게 됐고,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도 명문대학 통계확과를 졸업, 드림즈의 전략분석팀 팀원으로 입사하게 되는 인물. 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애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도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그런 백영수를 연기했던 윤선우는 "글이 너무 좋아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아닌 저 정도 포지션(조연급)에 있으면, 글이 좋다는 것은 내용이 좋다는 것을 넘어서 하나 하나 작은 배역들도 잘 살려준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저에게도 서사가 있었다는 거다. 그런 작품들은 꼭 이렇게 잘 된다"고 말하며 '스토브리그'에 대한 믿음을 증명했다. 그의 말처럼 극중 백영수는 백승수의 인간미를 끄집어내는 존재이자,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는 인물로 등장하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이렇게 좋은 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성공도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다. 극중 전략분석가로 활약했던 윤선우는 예상 시청률을 25%로 분석했었다고. 그는 "25%를 예상하고 들어갔는데, 첫 방송이 5%가 나오더라. 많이 당황했지만, 두 번째 방송이 7%로 올라서 금방 오르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방송됐던 '동백꽃 필 무렵'이 저희와 추이가 비슷했는데 '동백꽃'은 20부작이었고, 저희는 16부작이었으니 25%까지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쉽게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19.1%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니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극중 야구를 너무나 사랑해 몸이 다친 후에도 그 애정을 버리지 못한 인물로 등장했지만, 현실 윤선우는 경기를 보기보다는 기록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는 극중 백영수와 다르고도 같은 점. 윤선우는 "농구, 축구, 야구 다 좋아하지만 기록만 본다. 야구 경기보다는 기록을 보는 게 더 재미있더라. 승률과 기록만 보게 된다. 그런데 저처럼 그런 분들이 많을 거다. 홈 성적이 어느 정도로 출루율이 어느 정도인지만 집중해서 본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할 때에도 제가 야구는 잘 보지 않더라도, 야구 분석 용어인 WAR(Wins Above Replacement), OPS(On-base Plus Slugging) 등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용어가 익숙했고, 모르는 단어가 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편했다"고 설명했다.
'말'과 '이해'는 편했지만, 몸으로 하는 연기는 어려웠다는 설명. 윤선우는 "앉아있는 연기가 편안할 때도 있었는데, 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다 보니 연기적인 수단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걷거나 서거나 앉는 것도 감정표현 방법 중 하나인데 제약을 두다 보니 어렵더라. 배우로서 아쉬운 부분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심스러울 슌도 있었다. 혹시라도 제가 이 연기를 하며 장애에 대해 가볍게 대할까봐 걱정이 됐고, 조심스러웠다"고 밝혔다.
어려움이 많았던 현장이지만,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 이는 바로 같은 소속사 선배이기도 했던 남궁민. 윤선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큰 분이라 항상 연기 얘기만 했었다. 엄청나게 보고 배울 것이 많았다.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이렇게 많이 배운 선배가 있었나 싶다. 특히 현장에서 보여주시는 모습들이 인상 깊었다. 연출님과 논의를 할 때에도 일부는 월권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제가 봤을 때는 이럴 것 같다'고 하시면서 논의를 하시는데, 그 후의 결과물은 누가 봐도 훌륭했다"고 말했다.
'스토브리그'를 만난 것은 윤선우에게는 행운에 가까웠다. 2003년 제작됐던 EBS 어린이드라마 '환경전사 젠타포스'에서 젠타윈드로 활약하기도 하며 출연료의 일부를 받지 못하는 등 인생의 쓴맛도 봤고, 그동안 큰 역할에 도전하지는 못했지만 '스토브리그' 속 서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윤선우는 "'젠타포스' 이후 연기를 쉬는 기간도 있었고, 스스로 부족함도 느꼈다. 그 후로는 연습을 거듭했다. 지난해에는 문영남 작가님의 KBS2 '왜그래 풍상씨'도 만났는데, 당시 저에게 서사를 많이 넣어주셔서 연기하기가 재미있었고 더 연구하게 됐었다. '스토브리그'도 마찬가지였다. 강두기도, 장진우도 다 자신의 사연이 있었고 저도 제 사연이 있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보니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윤선우는 "'스토브리그'라는 작품도 정말 좋았지만, 남궁민 선배를 만난 것이 저에게는 너무 도움이 돼서 연기적으로도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이렇게 '톱'에 있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저도 연기를 오래했지만,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잘 안 와 닿고, 또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 매 순간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남궁민 선배가 하는 걸 보고 저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듣고 '아, 뭘 해야 잘 할 수 있구나'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연기를 더 연습하고 싶어졌다. 잘하는 방법을 알아서 잘하고 싶어진 거다. 그 전까지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는데, 이제는 그 방법을 좀 안 것 같다. 그래서 '해보자'는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이 작품이 저에게는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선우는 '스토브리그'를 마친 뒤 차기작을 검토한다. 그는 "전력분석팀으로서 분석을 한 결과, 이렇게 하면 저는 잘 될 수 있고 잘 되고 싶다는 결론에 닿았다"고 분석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