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처음엔 배우 남궁민의 연기력이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백승주의 얼핏 냉정한 듯 보이나 가슴이 따뜻하고, 잃고 얻고의 기준만 뚜렷한 듯 보이나 인간미를 중시하는 모습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드라마 자체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연출 정동윤, 극본 이신화), 낯설 수 있는 소재를 배우의 연기력으로 시선의 포문을 연 뒤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좋은 예다.
‘스토브리그(stove league)’, 야구 용어로 ‘스토브’는 프로 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 즉, 계약 갱신이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기간을 의미하며 이러한 스토브를 둘려싸고 팬들이 평판을 한다는 데서 ‘스토브리그’란 말이 탄생했다고 한다. 야구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들은 익숙할 터이나 일반 대중에겐 낯설고 생소한 단어임은 분명하다.
드라마에 있어 무패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남궁민과 나오는 족족 시선을 강탈하는 배우 오정세의 출연이 아니었다면 쉽게 손대지 못했을 드라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청률이 결정되는 4회까지의 이야기에서, 그래서 가장 중요한 구간이기도 한 도입부에서, 이해하기 쉽고 따라가기 쉬운 전개방식과 속을 알 수 없던 인물인 단장 백승수(남궁민)가 프로야구단 드림즈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보인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직스런 행보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자연스레 이곳저곳에서 터진 입소문은 본격적인 전개인 5회에 이르러 흥행의 급물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특히 4회와 5회에 걸쳐 이루어진 용병을 데려오는 에피소드는 와중에 압도적이었는데, 안그래도 빠져들어가고 있는 시청자들을 ‘스토브리그’에 자리를 깔고 눕게 만들었다 할까. 배우의 연기력, 이야기의 전개와 완성도, 연출력까지 하나의 완벽한 합을 형성해냈기 때문이다.
백단장은 괴물 투수 마일스를 데려오려 미국에 갔다가 뜻하지 못한 변수를 만나 영입에 실패하고 만다. 그를 똑같이 눈여겨 보고 있던 펠리컨즈 단장 오사훈(송영규)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까닭이다. 이후 만난 후보군 용병들도 누군가 이미 접선을 했다거나 혹은 볼 필요 없는 실력을 가졌다거나 하여 실패. 별 소득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 앞에서 백단장은 그저 담담하기만 한데, 원래 그런 인물이긴 하지만 그럴 상황은 또 아니라서 의뭉스럽기 그지없긴 했다.
이렇게 한껏 우리의 심장이 쫄깃해 졌을 때에야 비로소 드라마는 모든 이면의 상황, 알고 보니 백단장의 용병 스카우트 일을 도와주었던 코디 길창주(이용우)가 투수로서의 재기를 준비하고 있던 현직 선수였고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으나 귀화로 인한 병역기피 논란이 있다는 것, 그러나 나름의 사연이 있고 성품도 좋고 성실하기까지 하여 그를 새로운 드림즈의 용병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밝힌다. 그것도 돌아오는 비행기 에 오른 백단장이 좌석 내에 설치된 VOD의 되감기 버튼을 누르는 장면을 활용한, 아주 세련된 플래시백 기법으로.
길창주에게 계약서를 건네는 장면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볼 용병이 없어 돌아가는 길에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추고 말자, 길창주가 근처 주유소를 다녀오겠다며 나간 상황. 그 사이 백단장은 전화 한 통을 받는데 미리 요청해 둔 길창주의 징계해제가 받아들여졌다는 연락이다. 때마침 길창주가 기름을 사들고 돌아오자 백단장은 준비해온 계약서를 건네고, 길창주는 놀라움과 감격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그 앞에는 ‘Dead End’, ‘막다른 길’이란 뜻의 말이 적힌 표지판이 서 있다. 백단장도 길창주도, 막다른 길에서 새 길을 찾은 것이다. 아무도 길이라 생각 못했던 새로운 길을.
엄청난 연출력 아닌가. 별다른 말 없이, 에피소드와 관련된 장면 하나 만으로 드라마가 추구하는 바와 세계관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어디서 비롯된 연출인지는 몰라도 하나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이야기에 완벽히 몰입하고 있고 서로 좋은 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배우의 연기력은 물론이고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마저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놓은 이야기의 매력이 뒤를 탄탄히 받혀 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했던 결과일 테니까.
이제 시청자들은 누구 때문도, 무엇 때문도 아닌 ‘스토브리그’가 좋아서, 그 안에 담긴 세계와 사람들이 좋아서 본다. 그 뻔하다는 러브라인 하나 딱히 없고, 어쩌면 익숙하지 않을 ‘스토브리그’의 세계와 이야기에 마음이 설레다니, 참 놀라운 현상이다. 이것이 바로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지닌 강력한 힘으로, 고작 5회 방영에 제대로 물이 오른 ‘스토브리그’엔 이제 ‘Dead End(막다른 길)’란 없겠다 싶다. 그저 앞으로의 시청률이 기대될 따름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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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이 좋아서 갖고와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