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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가 바닥인가요?"입니다. 씁쓸한 것은 장이 오른 날에도, 내린 날에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높은 변동성과 흔들리는 AI 투자심리가 조정의 끝을 속단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해보려 합니다. 다만 '여기가 바닥이다'라는 선언 대신, 바닥이 가까워질 때 켜지는 신호들이 지금 어디까지 켜졌는지를 하나씩 세어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어젯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8.19% 폭등했습니다. 닷새 연속 급락하던 업종이 하루 만에 방향을 뒤집은 것이고, 코스피 야간선물은 상한가(+8%)까지 치솟았으니 오늘 우리 시장도 오랜만에 숨을 돌리는 하루가 될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이 급등의 성격을 뜯어보면, 반가움과 함께 겸손해질 필요도 느끼게 됩니다. 어제의 상승을 주도한 것은 펀더멘털의 재평가가 아니라 옵션 수급이었기 때문입니다. FOMC와 물가지표라는 큰 이벤트를 지나며 변동성 프리미엄이 급격히 꺼졌고, 반도체 종목에 콜옵션 매수가 몰리자 딜러들의 헤지 매수가 현물 주가를 밀어 올리고, 오른 주가가 다시 콜 매수를 부르는 ― 매수가 매수를 부르는 흐름이었습니다. 하락 국면에서 풋 베팅이 몰리며 치솟았던 풋/콜 비율이 어제 하루 만에 평시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 그 흔적입니다. 지난 며칠 매도가 매도를 불렀던 바로 그 기계가, 방향만 바꿔 반대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그 기계의 정체가 하나 드러났습니다. 전직 오픈AI 연구원 레오폴드가 운용하는 시츄에이셔널 어웨어니스 펀드가 총수익스왑(TRS)으로 4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일으켜 AI 반도체에 집중 투자했다가, 이번 조정에서 마진콜을 맞고 담보 주식이 강제 청산됐다는 소식입니다. 이 물량이 옵션 시장의 헤지 매도와 겹치며 최근 반도체 급락을 증폭시켰다는 분석이고, 대형 기관들이 이 포트폴리오를 인수해 기계적인 매도 압력이 사라지자 어제는 숏커버링과 재헤지 매수가 급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입니다. 월가 일부가 이 펀드의 마진콜 가격대를 노려 공매도를 집중했다는, 아케고스 사태를 연상시키는 루머까지 돌았습니다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해석입니다. 분명한 것은 최근 반도체의 폭력적인 변동성은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태평양 양쪽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빚으로 산 주식이, 가격을 묻지 않고 팔리는 일 말입니다.
우리 시장의 사정도 숫자로 짚어보겠습니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지난 27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신용융자 잔액이 32조7,000억 원으로 지난달 고점 38조6,000억 원에서 줄었지만, 연초 이후 쌓인 신용융자 포지션의 청산은 약 65%만 진행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3분의 1가량의 잠재 매물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분석에서 더 인상적인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신용융자 잔액과 코스피200지수의 상관관계가 92.2%에 달한다는 것인데, 지금 지수를 움직이는 것이 펀더멘털이 아니라 빚의 증감이라는, 앞선 이야기의 정량적 증거인 셈입니다.
청산의 속성은 단순합니다. 주가가 내려 담보비율이 깨지면 반대매매가 나가고, 반대매매는 가격을 묻지 않으며, 그 매도가 가격을 더 눌러 다음 계좌의 담보비율을 깨뜨립니다. 삼성전자가 어제 사상 최대 실적과 2028년까지의 공급부족 진단, 주주환원 카드까지 꺼냈는데도 지수가 장중 5%대의 상승분을 전량 반납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파는 손은 펀더멘털에 실망해서 파는 손이 아니라, 팔 수밖에 없어서 파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 매물에는 시계가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부터 레버리지 상품의 기본예탁금 상향이 시행되어 새 레버리지의 유입 문이 좁아지고, 지금의 소진 속도라면 잔여 물량은 8월 초·중순께 마무리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쯤에서, 요즘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도 짚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증발한 돈은 대체 누가 가져간 건가요?" 실감이 나는 질문입니다. 씨티는 이번 조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레버리지 ETF에서만 약 56조 원의 손실을 봤다고 추산했으니까요. 주식시장이 제로섬이라면 누군가의 손실은 누군가의 이익이어야 할 텐데,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대부분은,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시가총액은 금고에 쌓인 현금이 아니라 '마지막 거래 가격 × 주식 수'라는 표시 가격입니다. 마지막 한 주가 10% 싸게 거래되는 순간 팔지 않은 모든 주식의 장부상 가치가 함께 내려가는 구조라, 하락장에서 사라진 돈의 대부분은 누구의 주머니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장부 위에서 증발한 것입니다.
물론 돈이 실제로 이동한 자리도 있습니다. 급락 전에 판 사람은 이익을 실현했고, 공매도·풋옵션·인버스로 하락에 베팅한 소수는 이번에 실제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반대매매로 쏟아진 물량을 받아간 매수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이익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형입니다. 참고로 ELS를 지목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지수 급락은 ELS의 원금손실 구간 우려를 키우니 그분들 역시 같은 피해자 쪽에 서 있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것은 위로 때문이 아니라 함의 때문입니다. 내려올 때 돈이 '이전'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증발'한 것이라면, 올라갈 때도 그만큼의 새 돈이 들어와야만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뉴욕증시가 보여줬듯, 팔 수밖에 없는 손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얇은 매수만으로도 가격은 빠르게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바닥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세는 것입니다. 저는 세 개의 축을 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청산의 잔량입니다. 65%라는 진도와 8월 초·중순이라는 소진 시점, 그리고 오늘 시행되는 예탁금 상향이 그 진행을 읽는 눈금입니다. 둘째는 받는 손입니다. 외국인이 코스피·코스닥 동반 순매수로 복귀했고, 투신·사모·연기금 등 액티브 기관 자금 유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가 불안 속에서도 환율이 1,420원 아래로 내려온 것 역시 이번 조정이 자금 이탈을 동반하지 않은 조정임을 보여줍니다. 셋째는 명분입니다. 삼성전자는 공급부족의 시한(2028년)과 생산능력의 60~70%에 달하는 장기계약, 가격 하한, 주주환원 검토까지 내놓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 분기에만 1,300억 달러의 데이터센터 신규 임차 계약을 공개하며 AI 인프라 피크아웃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했고, 아마존도 AWS 호조에 시간외에서 9%대 상승 중입니다. 그리고 어제 예고 드린 6월 PCE 물가 역시 둔화 흐름을 확인시키면서 워시 의장이 보겠다는 '추세'의 첫 페이지가 긴축의 편이 아님을 확인시켜 줬습니다.
세 축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신중함은 유지하겠습니다. 어제의 급등이 펀더멘털이 아니라 수급의 기계가 만든 것이라면, 바닥의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청산의 일단락은 급락의 끝일 뿐이며, 추세의 회복은 빅테크의 투자와 메모리 가격이 앞으로도 숫자로 확인되어야 가능합니다. 그 확인이 진행되는 동안의 대응은 기존과 같습니다. 사이클에 대한 믿음으로 붙들고 온 반도체를 그대로 가져가되, 급등을 쫓아 레버리지를 다시 쌓는 일만은 피하는 것입니다. 빚으로 산 주식이 가격을 묻지 않고 팔리는 것을 우리는 이번주 내내 목격했습니다.
바닥은 지나봐야 알 수 있지만 시그널은 켜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