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유머 하와이안 항공의 추억
1,946 6
2018.11.21 19:26
1,946 6
다시 불 붙은 대한항공 커리사건글을 보고 떠올라서 퍼옴.



몇 년 전 J와 나는 하와이 여행길에 올랐다. 하와이안 항공은 처음이었다. 교포로 보이는, 한국말이 서툰 스튜어디스가 한 명 있었고 나머지는 다 미국인 승무원들이었다. 비행기에 올랐는데도 도무지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꽤 지체되었을 것이다. 밤 비행기였고 J와 나는 일찌감치 잘 준비를 하고 담요를 뒤집어썼다. 그래도 영 소식이 없더니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체에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는 또 한참이 지나 안내방송이 나왔다.

“고치고 있습니다.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려면 전원을 껐다 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일단 내려주셔야 합니다. 가방과 소지품을 모두 챙겨서 일단 내려주세요.”

우리는 막 짜증을 부리며 내렸다. 이놈의 비행기는 도무지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그마치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길지도 않은 휴가 일정에 하루가 다 날아갈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폭발했다.

하지만 이건 하와이안 항공.
대한항공이 아니었던 거다.

게이트에는 하와이안 항공의 한국인 직원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도대체 비행기가 가긴 해요? 이게 지금 몇 시간째예요? 언제 출발해요? 그럼 그들은 유유자적 대답했다.

“모릅니다~!”

사람들이 더 흥분했던 건 대한항공처럼 나긋나긋,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직원들의 태도 때문이었을 거다. 떼로 몰려가 직원들에게 화를 냈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언제 다 고칠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지. 거기 있는 직원들이 어떻게 알겠어. J와 나도 신경질이 나서 십 분에 한 번씩 직원들에게 쫓아갔다.

“저기요. 비행기 가기는 하는 거예요?”
“그러겠죠.”

“아니, 그렇게 대답하시지 말고 뭔가 조치를 해주셔야 하는 거 아녜요?”
“어떻게요?”

“그걸 저희한테 물으시면 어떡해요?”
“그럼 전 누구한테 물어요?”

“하와이안 항공은 매뉴얼 같은 것도 없어요?”
“무슨 매뉴얼이요?”

“비행기가 못 가고 있을 땐 승객들한테 이렇게 이렇게 대처한다, 그런 매뉴얼도 없어요?”
“있습니다! 지금 매뉴얼 대로 하고 있고요~.”

뭐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약이 올라 그 밤에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막 하소연을 했다. 친구가 까르르 웃었다.

“야. 하와이안 항공 짱. 걔네들 멋있다. 우리 같으면 거기서 죄송하다고 무릎 꿇었을 거야.”

사람들의 항의에 하와이안 항공 한국 지사장이 나왔지만, 그는 더 시크했다. 사람들은 ‘이러다 비행기 타겠느냐’고, 배상을 요구했다. ‘당장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네에~ 가실 분들은 가세요~ 비행기 표는 환불해드립니다~ 가세요~!”

미국인 기장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물론 영어였다.)

“어디가 고장 났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더 기다려 주세요.”

직원들은 주스와 빵을 가지고 나왔는데 J와 나는 한참 직원에게 짜증을 낸 터라 배가 고팠지만, 빵을 가지러 갈 수가 없었다. 민망했으니까.

“아까 괜히 화냈다. 배고픈데.”
“그냥 슬쩍 가져올까? 모른 척하고?”

다시 기장이 나왔다.

“여러분, 굿 뉴스입니다!”

굿 뉴스, 라는 영어를 알아들은 승객들이 미리 환호했다. 짝짝짝 손뼉을 치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국인 기장이 계속 떠드는데 J와 나도 짐을 챙겼다. 지사장이 급하게 마이크를 받았다.

“지금 여러분들이 굿 뉴스란 말에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다 고쳤다는 말이 아니고요. 어디가 고장 났는지 이제 찾았답니다. 지금부터 고칠 테니 기다리세요.”

정말 공항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벽이었고 졸렸고 이미 여섯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지. 이거 우리 보상받아야 하는 거야. 미적거리다간 아무 보상도 못 받아. 이거 다른 항공사 같았으면 난리 났어. 돈으로 달래야지. 안 그래요? 쟤들 지금 우릴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고.”

J와 나는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만사 귀찮았다. 그때 우리에게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왔다.

“이봐요, 젊은 엄마들. 이럴 땐 젊은 엄마들이 나서줘야 해. 자기들이 그래도 우리보단 똑똑하고 말도 잘할 거 아냐.”

스트레스 지수 급상승. 안 그래도 남들 신혼여행지로 간다는 하와이를 우리 둘이 간다고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데. 젊은 엄마들이라니. 우리는 그냥 아, 네네, 그러고 말았다.

결국, 비행기는 정비가 끝났고 J와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직원들에게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활짝 활짝 웃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짜증을 낸 것도 미안했고 빨리 와이키키 해변으로 날아가 모래밭을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출발하지 못했다.
뜻밖의 사달이었다.

바로 우리 자리 통로 건너편 젊은 아줌마 때문이었는데,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탄 아줌마였다.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지쳐 보였다.

아줌마: 이거 보세요. 지금 우리 애가 거의 탈진이에요. 어쩌실 거예요?
교포승무원: 뭘요?

아줌마: 애가 아프다고요.
교포승무원: 그래서요?

아줌마: 당신들이 우리 기다리는데 담요도 안 줬잖아요. 그러니 애가 열이 나요, 안 나요?
교포승무원: 달라고 하시지?

아줌마: 그런 건 그쪽에서 챙겨야 하는 거 아녜요?
교포승무원: 추운 줄 몰랐는데요?

아줌마: 얘 어쩔 거예요?
교포승무원: 뭘요?

아줌마: 그러니까, 당신들 때문에 애가 이 지경이 됐으니까 애를 좀 케어해 달라고요.
교포승무원: 어떻게요?

아줌마: 애가 아프다니까요!
교포승무원: 그런데요?

진짜 이 대화를 삼십 분 넘게 하고 있는 거였다. 우리는 진정 옆에서 통역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는요, 지금 비즈니스석으로 옮겨달라고 하는 거예요, 승무원님.”

하지만 통역을 해드릴 수야 없었으므로, 의도가 빤한 아줌마와 눈치 없는 승무원님은 계속 저런 대화만 하고 있었다. 사무장 미국 승무원도 왔다.

미국승무원: 왜? 무슨 일?
교포승무원: 애가 아프대.

미국승무원: 그런데?
교포승무원: 케어해달래.

미국승무원: 어떻게?
교포승무원: 몰라.

듣는 우리는 진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정말 하와이 좀 가보고 싶었다.

미국승무원: 아줌마. 어떻게 케어해달란 거예요?
아줌마: 애가 아프잖아요!

미국승무원: 그런데요?
교포승무원: 여기 서서 애를 쳐다봐 달라고요?

아줌마: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아이에게 더 편한 장소를 제공해달라고요!
교포승무원: 어딜요?

아줌마: 그러니까요! 좀 찾아보라고요!
미국승무원: 이 여자 뭐라는 거야?
교포승무원: 몰라.

급기야 기장님 출동.

기장: 왜 그래요?
교포승무원: 애가 아프대요.

기장: 그런데요?
교포승무원: 그러게요.

아줌마: (자기도 지침)

미국승무원: 여기 서서 우리가 애를 봐 줘요?
아줌마: 그게 아니고요…

교포승무원: 그럼요?
아줌마: 애를 좀 케어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이쯤 되니 주변의 승객들도 짜증이 폭발했다. 거 참, 그냥 비즈니스석 달라고 대놓고 말을 하던가. 그러면 그 옆의 아줌마들이 또 투덜댔다.

“어머, 지들만 힘들었나. 저 여자만 비즈니스 주면 안 되지. 그럼 우린? 그러게 말이야, 웃겨. 아, 고만하고 출발 좀 합시다!”

정말 웃겨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우린 지쳐서 이제 비행기가 가든 말든 더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냥 여행 취소하고 단골 소줏집에나 가고 싶었다.

기장: 아기가 많이 아파요?
교포승무원: 아기가 아프네요.
아줌마: 네.

교포승무원: 그렇대요.
기장: 그럼 내리세요.
교포승무원: 아줌마 내리래요.
아줌마: 네?

기장: 우린 아픈 사람 못 태워요. 의사 없어요.
교포승무원: 여기 의사 없어요. 내리래요.
아줌마: 무슨 소리예요?

기장: 빨리 내려요. 우리 출발해야 해요.
교포승무원: 우리 출발해야 한대요. 빨리 내리래요.
아줌마: 아니… 지금 보니 좀 나아진 거 같아요.

교포승무원: (기장에게) 안 아프대요.
기장: 그래도 걱정돼요. 내려요.
교포승무원: 그래도 내리래요.
아줌마: 아뇨, 그냥 갈게요. 일 보세요.

기장: 그럼 각서 써요. 애한테 문제 생겨도 딴말 없기.
교포승무원: 각서 쓸래요?
아줌마: 네.

그래서 우리는 출발했다.

하와이는 날씨도 좋았고 우리는 보상 차원으로 하와이안 항공을 다시 탈 때 180달러를 깎아준다는 바우처를 받았지만, 그냥 버렸다. 자그마치 여섯 시간을 손해봤지만, 뭐 괜찮았다. ‘램프리턴’(항공기가 활주로로 가던 중 탑승구로 돌아가는 것)은 그럴 때 하는 거다. 비행기가 고장 났을 때. 애가 아플 때. 비행기에 의사도 없을 때. 단 각서 쓰면 안 내려도 된다.

http://slownews.kr/34763
목록 스크랩 (0)
댓글 6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바이오던스🩷] 원조 겔 마스크 맛집의 역대급 신상✨ NEW 콜라겐 젤리 미스트 체험 이벤트 (100인) 375 03.05 12,700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916,364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867,191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901,77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201,511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63,26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506,36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26,19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00 20.05.17 8,632,09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517,68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98,360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10891 이슈 이제 스트론쪼라는 이탈리아어 평생 못잊을 듯 00:25 218
3010890 이슈 형아 온숭이 생긴 펀치🐒 1 00:24 270
3010889 이슈 1억으로 77억 벌어서 퇴사 고민한 사람 6 00:24 1,182
3010888 이슈 카타르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 자국 영공 사용하는 걸 거부 8 00:22 698
3010887 기사/뉴스 75세 여배우가 18세 소녀역 맡아 '30살 연하'와 키스신…中 '발칵' 5 00:21 1,106
3010886 이슈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만든 왕사남 결말 (사심200%) 2 00:21 361
3010885 이슈 aespa 에스파 〖ATTITUDE〗 3 00:19 710
3010884 정치 또 김혜경 여사한테 김혜경 씨 거리는 김어준 35 00:19 863
3010883 정보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뱀파이어 소설 7 00:18 662
3010882 이슈 환승연애 헐리우드 버전 00:18 307
3010881 정보 허찬미 미스트롯4 준우승 41 00:17 2,730
3010880 이슈 알고보니 노래 가사 아예 대놓고 알려줬었던 아이브 컨포 배지 스포일러 3 00:17 500
3010879 이슈 왕과 사는 남자 오늘 천만 달성(예정) 13 00:17 1,145
3010878 팁/유용/추천 2023년에 이탈리아에서 흥행 1위한 영화🌹 한번 볼래?? 7 00:15 620
3010877 정보 [시합 하이라이트] 한국 vs 체코|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Netflix Japan 00:14 88
3010876 정보 블랙핑크 [DEADLINE] 앨범 초동 🎉 10 00:13 890
3010875 이슈 에스파 일본 디지털싱글「ATTITUDE」발매 7 00:12 501
3010874 이슈 버거킹 점주가 24년 개근 직원을 해고한 이유 34 00:10 4,939
3010873 이슈 왕과 사는 남자 제목으로 단종, 엄홍도 그리기 16 00:10 1,100
3010872 이슈 멕시코 재벌 4세와 연애 중이라는 엠마 왓슨 11 00:10 4,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