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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왜 멀쩡한 여자들이 어어어 하다가 당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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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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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런 이야기를 익명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저의 비겁함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지금은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다가, 저희 부모님과 남편은 제가 영화일을 하던 시절에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지 자세한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저의 신원이 밝혀질 경우 가족들과 제가 다시 상처받게될 것이 두려워 부득이 익명으로 고백합니다. 따라서 신원을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일부 디테일에 있어서 모호하게 서술하고 넘어갈 수 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요즘 실명으로 폭로에 나서신 피해자분들은 정말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제 신원을 밝히면 상대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이 큽니다. 이 글은 누군가를 공개 저격하기 위함이 아니고 사법절차를 진행할 계획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기억이나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그의 신원이 추측될만한 디테일도 최대한 생략하였음을 밝힙니다.

그러면 한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런 익명의 고백을 왜 하느냐 싶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왜, 어쩌다가 ‘어디가 모자란 것도 아닌’ 멀쩡한 여자가 ‘어- 어-‘하다가 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또라이도 아니고 파렴치한도 아닌 보통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해를 하게 되는지 그 맥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직적 폐쇄적인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서검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이어진 문학계, 연극계의 사례들을 본 후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쉬기가 어렵고 울화가 치밀어 며칠이나 밤잠을 설쳤습니다. 벌써 십년도 넘게 지난 일이라 괜찮아진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200*년도에 저는 한 영화의 메인 스텝으로 a감독과 일을 하며, 낮에는 사무실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밤에는 잠자리를 해주는 생활을 촬영 중반쯤부터 후반 작업 중간까지 몇 달 정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존경하는 감독님이었습니다. 그 작품 이전에 다른 작품을 두 개나 함께 하면서 신뢰를 쌓기도 했었고요. 많은 부분 도제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일 특성상 a감독은 저에게 단순히 상사나 고용주가 아닌 스승이자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세번째로 함께한 작품에서 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작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작업이 밤 늦게 끝나고 다음 날 일찍 시작해야하는데, a감독이 자기 집은 멀고 저희 집은 가까우니 저희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찍 나가겠다고 하는 식이었죠.
당시 a감독은 처자식이 딸린 아저씨였고, 저는 20대 중반의 자취하는 여자였습니다.

아마 a감독은 ‘합의된 성관계’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완력으로 저를 위협했던 것도 아니고 제가 순순히 자기 말을 따랐으니 저도 좋아서 그랬을거라 생각하겠지요.
근데 저는 그 ‘합의된 성관계’ 때문에 그후 정신과 치료를 5년이나 받았습니다.
a감독은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자각이 없었을 것이기에 이제와서 제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싫었으면 당시에 싫다고 말했어야지. 네 스스로 너희 집 문을 열어주고 들어오라고 해놓고선 이제와서 딴 소리냐. 성인 대 성인끼리 성관계를 한 건데 피해자 가해자가 어디 있느냐.’

맞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a감독을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a감독의 입장을 이해했고 성인인 저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싫으면 싫다고 했어야 했다.’
이것이 지난 수년간 저를 따라다니며 저를 괴롭혔던 생각입니다. 나는 왜 멍청하게 그 말을 못 했을까?

저는 오히려 저 자신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게 마음의 병이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병들어 썩어들어가는 지경이 되도록 왜 어느 시점에서 no라고 말하지 못했나. 도망치듯 영화계를 떠나기 전에 왜 a감독에게 ‘더 이상 그만'이라고 말하지 못했나 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비참했고 자기 혐오에 빠졌습니다.

a감독은 제가 알기로는 요즘 폭로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파렴치한도 아니었습니다(요즘은 어떤지 모르겠고 당시에는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당했다는 얘길 들어본 적도 없었고, 오히려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이었고 스승님이었죠. 아마 본인 스스로도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성폭력을 행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안 해봤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미성년자도 아니고, 20대 중반이면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왜 바보같이 그랬을까요? 그 일 이후 몇 년 동안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제가 No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를 되짚어봤는데 몇 가지로 정리가 되더군요.

먼저, a감독의 관계가 변질되기 전에 두 작품을 함께 하며 상당 기간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타이밍에 정색을 하고 no라고 해야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계속 듣고 있기 불편한,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했지만 매일 얼굴 보고 일해야하는 사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속으로 참고 농담처럼 웃고 넘겼습니다. 기존의 ‘좋은 관계’와 ‘좋은 분위기’를 내가 정색함으로 인해서 망치게 될까봐 참고 또 참다보니 결국 그 지경이 되도록 웃고 넘긴 내가 바보 멍청이라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자세히 캐물을 때? 그때 정색했어야 했나? 영화가 남녀관계에 대한 내용이다보니 ‘일 얘기'하는 건데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었습니다. 지방 로케에서 숙소를 잡아놓은 걸 보니 저는 감독 옆방이고 다른 스탭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다른 건물에 숙소를 잡아놓은 것도 찜찜했었는데, 그때도 구실이 있었습니다. 촬영 전후에 저랑 같이 회의해야할 게 있어서 그렇다는데... 그러면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오늘 갑자기 네가 여자로 보인다'고 했을 때? 다음 날 술 깨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해져있는데 제가 정색하고 어제 불쾌했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너랑 한번 자면 안되냐’라고 물었을 때? 손 한번 잡아보라고 했을 때?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을 때? 아니면 우리 집에 또 오겠다고 했을 때?
분명히 기분이 불쾌하고 마음 속에서는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희안하게도 머리 속에서는 a감독의 입장을 변호하고 합리화해줬습니다. ‘a감독은 좋은 사람이고, 나를 키워주고 있는 고마운 어른이다. a감독이 나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할 리가 없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내가 예민한 건가…’ a감독의 행동이 불쾌하다는 저의 기분을 무시했고, 오히려 왜 a감독의 행동이 말이 되는지 그의 입장에서 합리화해주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저의 판단력이 손상된 탓입니다.

그러면 왜 판단력이 손상되어 no라고 말하지 못하느냐, 거기엔 다음과 같은 맥락이 숨어있습니다. 스탭을 구성하는 권한이 상당 부분 감독의 재량인데 기본적으로 벌써 세 작품째 저를 선택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고, 또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서 존경하고 있던 마음이 있었고 실제로 많이 배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른에게 예의바르고 공손한 것, 영화 선배로서 존경하는 것, 맡은 일을 열심히 한 것이 그 사람을 남자로 좋아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만약 a감독이 그렇게 오해를 했다면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상사와 일할 때는 그런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부러 싸가지 없이 굴어야 하나요?

또한 이전 작품들을 함께 했을 때 손발이 잘 맞았던 것과 달리, 그 영화를 하면서는 a감독이 저의 작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속 했던 일을 다시 하고, 또 다시 하면서 하루 종일 a감독에게 꾸중을 듣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일을 해야했고 저는 주눅이 들어서 a감독의 부당한 요구에 차마 no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낮동안 잔뜩 예민해져서 신경질을 부리던 a감독은 저희 집에서 잠자리를 하고 나면 너무나도 상냥하게, 선심쓰듯이 “내일은 오후에 출근해도 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치 몸을 팔아서 부족한 수면을 구걸하는 것 같은 비참함과 잠자리를 해준 덕분에 내일은 a감독을 몇시간이라도 더 늦게 볼 수 있다는 안도감 사이에서 미쳐갔던 것 같습니다.
저는 a감독이 저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제 작업에 트집을 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영화가 이전 영화들에 비해 예산이 큰(당시로써는 블록버스터) 작품이었던 터라 a감독이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고 실제로 제가 작업한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혼나는 분위기에서 제가 a감독의 부당한 요구에 당당하게 ‘no’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또한 저는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만류를 무릅쓰고 영화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저를 곱게 키워주신 부모님께서 속상해하실 것을 생각하면 영화일 하면서 이런 힘든 일이 있다고 터놓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의 파트 특성상 다른 스텝들과 마주치거나 함께 일할 필요가 없고 감독과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내부자들과 의논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a감독에 대해 성폭력 쪽으로 나쁜 평판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런 고민과 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때 ‘쟤가 꼬리를 친거 아냐?’ 이런 시선과 소문이 두려워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바라는 게 있어서 응한 것이니 그것은 암묵적 동의라고요. 하지만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자발적으로 몸 로비를 하는 것과, 부당한 불이익을 피하려 억지로 성관계에 응해야 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 사유리의 예를 들면서 두려워서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라고, 두려움은 욕심이라고 피해자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입니다. 저 역시 성관계를 전제로 섭외가 들어왔다면 사유리처럼 쉽게 거절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영화 안하고 다른 영화 하면 되니까요. 특히 잘 모르는 사람인 경우 거절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고 있던 작품에서 문제가 생기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a감독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감독에게 정색하고 no라고 하면 앞으로 일하면서 얼굴 계속 봐야하는데 불편해지지 않을까, 영화계가 좁은데 감독에게 찍히면 소문이 안 좋게 나서 다음 작품이 안 들어오면 어쩌나, 이 영화를 좋게 마무리짓지 못하면 내 커리어가 망가질 것이다…’ 이런 두려움, 이런 욕심이 그렇게 나쁜 것입니까? 사유리가 용감하게 거절한 것은 박수칠만 합니다. 용기는 가치있는 덕목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피해자들이 사유리처럼 용기있지 못했다고 해서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갑자기 피해자의 탓으로 둔갑되어서는 안됩니다.

영화/방송계에서 성상납을 통해 자리를 얻는 사례들은 공공연히 알려있습니다. 하지만 감독과 스탭이, 감독과 배우가 잠자리를 가졌다는 상황만으로는 그 상황의 맥락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몸 로비라면 하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처벌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정당한 기회를 빼앗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위계에 의한 압력이라면 100% 윗사람의 책임입니다. 부당한 압력을 넣은 것은 감독인데 어째서 영화의 꿈을 키우는 스탭 혹은 배우가 졸지에 ‘거절하고 영화판을 떠나느냐 승락하고 남느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합니까? 어쨌든 저는 결과적으로는 가장 병신같은 결말-부당한 압력에 굴복하고서도 결국엔 영화판을 떠나는-을 맞이하였지만요.

어쨌든 일단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만 꾹 참자라고 결심하고 버텼습니다. 영화만 개봉하면 이 짓도 끝이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개봉이 몇 달 연기되면서 저는 결국 저는 작품을 그만 두었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거든요. 저에게 그 영화를 그만둔다는 결정은 단순히 그 영화만을 그만둔다는 게 아니라 저의 꿈이었고 일이었던 영화를 포기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a감독과 그 작품을 했던 기간의 디테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사건 전후로 해리가 생기는 것처럼요. 다만 당시의 고통과 불쾌함, 역겨움, 자기 비하와 혐오, 죄책감과 부적절감, 자괴감, 그리고 자살 사고 등 당시의 기분들은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 놀랍습니다.

a감독에게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걸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더 이상 이 작품을 못하겠다, 이유는 묻지 말아달라, 내가 받았던 개런티를 돌려줘야한다면 시간을 2주 정도만 달라, 전세금 빼서 주겠다, 후임자를 찾으면 그와 연락해서 인수인계를 하겠다’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a감독과는 만난 적도 얘기한 적도 없습니다.

a감독이 악의를 가지고 제게 그리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악의가 없더라도, 보통의 착한 사람이더라도, 조그마한 힘이라도 권력이 있는 자리에 앉게 되면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남녀를 떠나서 그리 해야합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성관계를 제안하면 그 제안을 받는 입장에서는 yes라고 해도 피해를 받고 no라고 해도 피해를 받습니다. 애초에 그런 부적절한 제안을 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자신의 아랫 사람을 대답하기 곤란한 지경에 몰아넣은 뒤, “왜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묻지 마십시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애초에 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남녀 관계에 있어서 남자가 들이대고 여자는 이리저리 재보다가 승낙하거나 거절하거나 하는 mating game을 하는 것이 생리적으로 진화적으로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하직원에게, 제자에게 들이대지 말고 또래에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비슷한 직급에게 들이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본인이 처자식이 딸린 유부남이면 그냥 애초에 다른 집안 여자들한테 들이대지 마십시오.



본인이 싱글인데 부하직원이 이성으로 너무 호감이 간다면, 술먹여서 모텔에 데려갈 궁리를 하지 마시고 회사 밖에서 만나보자고 제안을 하시되 거절해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을테니 편하게 대답하라고 하는 안전장치를 충분히 마련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한때는 ‘어른들 말 잘 들어라’, ‘상냥하고 싹싹한 사람이 되어라’, ‘사회 나가면 일 열심히 해라’라고만 가르쳐주신 저희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빠와 결혼하여 평생 주부로 사셨습니다. 사회생활 경험이 없으셨기 때문에 사회 생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십니다. 따라서 저에게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주지 못하셨죠.

저는 지금 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아이도 성인이 되면 아마도 직업을 갖고 일을 하게될 텐데요, 저는 제 딸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네가 믿던 어른이 어느날 갑자기 네가 여자로 보인다며 수작을 걸어오면 어떻게 대처하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미투 고백은 사실 성폭력이 포커스라기 보다는 위계에 의한 부당한 압력 행사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 제주지검장의 행위는 정신병이고 그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폭로된 미투 사례들은 조현아 갑질과 오히려 더 비슷한 면이 많으며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이 선배가 되고 상사가 되고 감독이 되고 하다보니 점점 본인에게 쓴소리(그러면 안된다고) 해주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참고 견뎌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왜곡된 현실 속에 살면서 자기 행동이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는 채 자연스럽게 못된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살면서 변태들 몇 번 만나봤습니다.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었고 일회적이어서 불쾌했지만 그 놈이 또라이고 그날 재수가 없었다 생각하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로 모든 남자가 다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금은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문화의 문제라서 보통 사람도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저는 미투 운동이 남녀 간에 편을 갈라 상대방을 잠재적 성폭력범이나 무고 꽃뱀으로 비난하면서 누가 더 피해자인지 경쟁하는 병림픽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모공을 보면 제발 어느 하나 무고 건만 터져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무고 사건이 터져서 미투 운동이 힘을 잃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남성 피해자가 용감하게 나서주어서 미투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는데에 힘을 보태주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군대 내 성폭력은 전형적인 위계에 의한 성폭력입니다. 회사에서 여자 상사에게 당하는 성폭력, 여초 집단 내의 소수 남자로서 감내해왔던 성폭력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연극영화과 입학식날 본 성폭력 장면의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신고식이란 이름으로 신입생들을 소극장에 집합시켜 갑자기 의자에 등 붙이지 말고 똑바로 앉으라고 험악한 분위기을 조성해놓고 한명씩 무대 위로 올려 장기자랑을 시킵니다. 불 꺼진 객석 뒤에 앉은 선배들의 마음이 흡족해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합니다. 그날 제가 본 장면은 남학우 두명을 무대 가운데 서로 등지게 세워놓고 딸딸이 치는 시늉을 하도록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둠속의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선배들은 키득거렸습니다. 그 일은 복협(복학생 협의회)이라고 하는 선배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신입생은 목소리만으로 가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았는데 당사자인 두 남학생들의 수치심은 오죽했을까요?
미투는 성 대결이 아닙니다. 남성 피해자들이 세간의 시선과 오해, 가족이 받은 상처와 창피함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나서줄 때에 한국에 만연한 상하 위계에 의한 부당한 요구를 참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폭력에 대한 폭로로 시작되었지만 미투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한국의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남녀를 떠나서, 억지로 앉아있는 회식 자리에서 먼저 집에 간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 힘들게 말을 꺼냈지만 상사가 ‘에이, 왜그래~ 좀 더 있다 가’하면 다시 엉덩이 붙이고 앉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참든지 퇴사하고 나가든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위계에 의한 갑질과 인격 모독,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의 만행에 대한 증언이 많이 나왔습니다. 많은 증언들이 ‘나도 비슷하게 당했는데 강간 당하기 직전에 도망쳐 나왔다’ 입니다. 정말 성추행에서 끝났을까요? 저는 지금 국내에서 성추행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성폭행이기에 말하지 못하고 숨어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결혼해서 애낳고 가정을 꾸린 사람들이 지금와서 실명 까고 그때의 성폭력을 털어놓기가 쉬울까요?

맷데이먼은 나이 든 세대 사람들이 여자들 어깨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던 옛날의 문화가 있는 것을 이해하고 단순한 희롱과 강간은 구분해야한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맷 데이먼의 의견에 매우 공감합니다. 불쾌한 일을 랜덤하게 한 번 당한 것과 불쾌한 일을 일터에서 지속적으로 당한 것, 그리고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환청이 들리고 공황 발작이 올 정도로 트라우마를 받은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대가 변했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며 그 과도기에 미투 운동이나 그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소급적용하여 ‘그 정도가 무슨 성폭력이냐, 사회생활 하려면 그정도는 웃고 넘겨야지’라고 생각하시는 구 시대 분들을 모조리 범죄자로 몰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께서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고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려 노력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a감독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 글을 보게 되고 이게 혹시 본인 이야기가 아닌가 찔리는 기분이 든다면,
네, 당신 얘기 맞습니다.
용기가 없어 no라고 얘기하지 못했던 저의 과실과 책임 부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제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도 제가 싫어하는 줄 모르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가 당신과 여러차례 잤지만 그 경험은 모두 너무너무 불쾌했고, 절대로 당신이 남자로 매력적이어서 같이 잤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출처 https://m.clien.net/service/board/park/11832041

부하직원에게, 제자에게 들이대지 말고 또래에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비슷한 직급에게 들이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본인이 처자식이 딸린 유부남이면 그냥 애초에 다른 집안 여자들한테 들이대지 마십시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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