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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스압] 의느님이 겪은 심근경색 생존기.txt
24,669 178
2017.11.01 12:37
24,669 178
안녕하세요. 
  
  
한 숨 돌리고 나니 뭔가 도움이 될 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의사이지만 심장내과나 흉부외과 전문의는 아니기 때문에 
  
저도 이해하고 최대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썼습니다만 
  
행여라도 문맥의 오해나 전달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저와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계신 분은 
  
제 이야기로만 자신의 증상을 판단하지 마시고,  
  
반드시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비록 대한민국 의료가 전문과에 관계없이 
  
미용과, 감기과, 통증과 세 개 남기고 싹 다 죽어가고 있기는 합니다만 
  
아직까지 한국은 유능한 전문의가 발에 채일 정도로 싸게 널려 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입니다. 
  
곧 망하기 전 까지는 적극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문제의식도 가져주시면 좋구요. 
  
  
  
<배경> 
  
  
저는 41세 남자이고, 표준 체중에서 15%정도 과체중입니다. 직업은 의사입니다. 
  
닥터 K라는 영화 보면 ‘자기 목숨을 줄여가며 환자를 치료한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닥터 K야 특별한 능력을 쓸 수록 자기 마나랑 헬스를 깎아먹는다는 설정이지만  
  
사실 의사로 살다보면 평범한 의사들도 결국은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의사들 몸에 좋게 사는 방법 다 알긴 아는데, 
  
환자들 보고 치이고 스트레스 받다 보면 정작 그렇게 살기가 불가능하죠. 
  
그렇지 않더라도 아파도 동정받지 못하고 ‘의사가 아파?’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자살율도 탑이고 보람도 줄어들고 
  
이래저래 한국 의사 평균 수명은 계속 낮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암튼,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나에게도 한 번 쯤은 순환기 문제가 오겠구나 하는 생각은 요즘 들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체중은 쉽게 빠지지 않는데, 생활은 더욱 불규칙해졌죠.  
  
업무과다, 피로, 스트레스, 과체중이 계속되다 보니 
  
작년 정기검진에서는 고혈압이, 올해 검진에서는 고지혈증이 발견되어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저하 약물을 복용하던 중이었습니다. 
  
유산소운동도 주 2-3회 정도로 늘려가는 중이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 날은 10년 쯤 빨리 왔습니다. 
  
이미 망가져 있는 몸을 되돌리기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일이 벌어지기 전 몇 달 동안, 몸은 극도로 피곤하여 
  
쉬어도 회복이 쉽게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기초 상식>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Acute coronary syndrome)은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동맥 
  
(관상동맥. 심장을 crown모양으로 위에서 감싸고 있어서 coronary artery라고 합니다)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심장 조직이 괴사하면서 통증이 발생하고, 심하면 심장이 멎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하는 질환입니다. 
  
  
클래식하게는 
  
협심증 (안정형: 운동할 때 아픔, 불안정형: 쉴 때도 아픔) 
  
심근경색 (좁아진 게 아예 막혀서 심장에 풍이 옴) 
  
심정지 (사망) 
  
순서로 진행됩니다. 
  
  
  
뇌혈관이 막히면 뇌가 죽듯이 (중풍) 관상동맥이 막히면 심장이 죽습니다. 둘다 놔두면 결국은 죽는 병입니다. 
  
위험 인자로는 고혈압, 당뇨, 과체중(비만), 고지혈증, 흡연, 유전력(가족 병력) 등이 있고,  
  
선행되는 몸의 변화는 동맥경화 (기름과 피떡이 혈관 안쪽에 쌓여 굳어져 혈관이 딱딱해지고 내경이 좁아짐. 
  
관상동맥 뿐 아니라 전신의 동맥에 나타남) 입니다. 
  
  
  
증상은 제가 겪은 걸 설명을 드릴거고 (심정지 바로 전 단계까지 갔었습니다) 
  
치료는 동맥에 와이어와 풍선을 넣어서 좁아진 곳을 보면서 찾아 (혈관 조영술) 
  
벌려주고, 금속 그물망인 스텐트를 넣어주는 시술 (혈관 성형술)을 하거나 
  
여러 개가 막혀 있고 어쩔수 없이 가슴을 열고 (개흉술) 
  
팔다리의 혈관을 떼어 새 혈관을 만들어 우회로를 확보해주는 
  
(Cardic artery bypass graft: CABG) 수술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대부분 혈관 조영술 / 혈관 성형술은 심장내과에서, CABG는 흉부외과에서 합니다. 
  
  
  
두 시술/수술 모두 술기 자체의 수가는 한국에서는 100만원 안팎이며, 
  
필리핀이나 태국, 인도의 1/5,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의 1/10-1/12 정도의 수가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수술 자체로는 대표적으로 병원에 이득이 남지 않는 수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종합병원도 이걸 메꾸기 위해 감기, 미용, 통증을 봐야 하고 개원가는 새우등이 터지고 있습니다) 
  
스텐트는 대부분 메드트로닉, 박스터, 애보트 등의 다국적 의료기기회사 제품으로  
  
성능은 눈부시게 개선되어 다시 좁아지는 재협착 등의 합병증 발생률이 극적으로 줄었고 
  
장기 추적 연구에서 생존율에 긍정적인 면이 증거로 나오고 있어 
  
요즘은 넓히기만 하고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스텐트를 넣습니다. 
  
개당 가격은 수백만원 정도고 한국의 건강보험에서는 3개까지만 급여 대상으로 해 주었었습니다만 
  
최근 의사, 환자들의 요구로 갯수 제한을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경과> 
  
  
  
전날 무리해서 일을 하고, 술도 어느 정도 마시고 장거리 운전도 하고... 잠이 들었었습니다. 
  
저는 약간의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데, 피곤하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면 무호흡증은 자는 중간에 (코를 골다가) 숨이 잠깐 멎었다가, 컥.. 소리와 함께 
  
기도를 여는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호흡이 회복되는 증상을 반복하게 되는 병입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비만과 흡연, 피로, 코와 인후두의 폐쇄성 질환 등이 가장 위험한 요인들로 알려져 있고 
  
전체적으로 저산소증을 가져오기 때문에 정도에 따라 협심증의 위험인자가 됩니다. 
  
심장이 원래 좋지 않은게 겹쳐 있다면, 코골다가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 진단할 수 있는데, 하루 휴가 내서 검사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것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시쯤 일어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들은 학생때 가슴의 통증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배우는데, 
  
통증의 양상만으로도 이게 심장에서 온 통증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통증은 딱 그대로였습니다. 
  
  
  
쑤신다 누른다 으깬다 찌른다 여러가지 표현으로 환자들이 호소한다고 책에는 쓰여 있었고 
  
실제로 제가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도 그랬지만 표현 중에 가장 와 닿는 건 
  
‘살면서 전혀 겪어 본 적이 없는 통증’ 입니다. 
  
책에 나온 표현중에 굳이 찾자면 '왼쪽 가슴만 바이스에 물려놓고 서서히 조여서 부수는 듯한’ 이 가장 비슷했습니다. 
  
2-3분쯤 계속되자 초코파이 같은 것도 계속 조이면 다른데로 속이 삐져 나가는 것처럼 
  
통증이 턱과 어깨, 왼팔로 퍼져 나갑니다. 사랑니와 목디스크에서 나오는 통증이 겹치는 것 같습니다. 
  
이런걸 방사통(radiation pain)이라고 합니다. 
  
이 쯤 되면 이게 심장에서 오는 통증이다 라는 감이 확실히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는 생애 첫 흉통 증상이었기 때문에, 뭔가 이상했습니다. 
  
보통은 서서히 혈관이 좁아지면서 그에 따라 안정형 협심증 - 불안정형 협심증 의 테크트리를 타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는 바로 굳이 따지자면 불안정형 협심증의 증세가 바로 나타난 것이었거든요. 
  
거기다... 뭐지? 하는 동안 통증이 10분만에 저절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일을 드라마틱하게 만든 단초가 되었습니다만. 
  
나름 진단을 내려보려 했는데, 꼬여버린거죠. 
  
  
  
변이형 협심증 (Variant angina)라는 것이 있습니다. 
  
증상은 협심증인데 주로 술먹고 다음날 새벽에 발생하고 (운동과 무관하게) 
  
아시아인, 특히 한국 일본 극동아시아인에 좀 더 흔합니다. 
  
혈관이 안에 동맥경화가 생겨서 좁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관상동맥이 쫙 수축하거나 덜덜 떨려서 생깁니다. 
  
요인은 피로… 등이 있지만 원인은 보통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증상이 있다 없다 5분에서 10분 있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럽니다. 
  
더우기 심전도도 정상, 운동유발검사에서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확진을 하려면 혈관촬영술을 하면서 표준 유발 약물을 넣어서 수축을 일으켜 봐야 진단이 됩니다. 
  
진단 방법 자체의 위험성이 큰 병입니다. 
  
  
  
아뭏든, 증상 자체로는 변이형과도 겹칩니다. 
  
증상은 사라졌는데, 고민에 빠집니다. 
  
이걸 지금 병원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아는게 병이라고, 증상이 없을 때 병원에 가면 응급실에서 외래로 또 검사실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그 시간이… 부담이 되더군요. 
  
  
  
공교롭게 다음날 열흘 정도의 외국 출장이 잡혀 있었고, 중요한 행사들이 연이어 준비가 되어 있어서 
  
취소될 경우 손해가 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증상이 없어졌는데 검사 때문에 출장을 취소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야 건강 먼저라고 하시겠지만 
  
자기 일이라면 나름 진퇴양난이죠. 
  
출장 전 일정으로 몰아놔서, 기다리는 환자들 생각도 나고... 
  
  
  
  
일단 출근을 합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내 몸 아픈거랑 상관 없이 예약된 환자는 열심히 봅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고 넘어가나 보다 했습니다. 
  
만약을 위해서 nitroglycerin이라는 혈관 확장제 처방도 준비합니다. 
  
  
  
그런데 2시간 후, 2차 통증이 옵니다. 
  
비슷한 양상인데 강도, 지속 시간이 2배쯤 됩니다. 
  
이쯤 되니 고민할 여유가 없습니다. 
  
완전히 막히지 않았더라도 뭔가 해야겠다, 
  
그냥 좋아질 통증이 아니라는 감이 확실히 옵니다. 
  
왼팔에 힘을 주기도 어려울 지경이라  
  
겨우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환자들, 직원들 있는데 앰뷸런스 부르고 난리 치면 큰 문제다 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조용히 움직여 보려 했습니다. 
  
  
  
근데 걸을 수가 없습니다. 걸을 때마다 계단 올라가듯 
  
통증의 강도가 한 단계씩 더해집니다. 머리가 멍합니다. 
  
  
  
부들부들 떨며 핸드폰으로 119를 부릅니다.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걸을 수가 없다. 앰뷸런스를 부탁한다. 
  
전화를 받으시는 구급대원의 목소리도 같이 다급해집니다. 
  
근데, 주소를 말하자마자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무정한 박대리 퇴근.  
  
어제 피곤해서 충전하는 걸 깜빡했습니다. 
  
어쨌든 주소는 다행히 또박또박 불러줬으니, 
  
  
  
기다립니다. 
  
  
  
응급구조사나 응급실에서 가장 먼저 우선순위를 확보할 수 있는 증상이 두 가지 있습니다. 
  
가슴의 통증, 그리고 의식의 소실. 
  
감기로 갔더라도 이 두 가지 증상을 호소하면 의사들이 떼로 달려오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들키면 그 다음부터는 개무시입니다만 
  
요점은 그만큼 중한 증상이라는 것이죠. 
  
  
앰뷸런스가 도착했습니다. 바람같이 빨리 와 주셨습니다. 
  
화장도 안하고 떡진 머리의 여성 구조사 분이신데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약간 안심됩니다. 
  
그런데 혈압을 재고 구조사 분이 무전기에다 얘기하는 혈압이 85/55입니다. 
  
평소 피를 내보내는 압력의 60% 수준... 
  
쇼크로 빠지고 있습니다. 멀쩡했던 의식이 흐려지려 합니다. 
  
왼팔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차고, 저리다 못해 쑤십니다. 
  
가슴은 이제 거의 뭉개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구조사분이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물어봅니다. 
  
아니 죽어가는데 식당도 아니고 알아서 데려다줘야 하는 거 아냐?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원래 다니던 병원이 있을 수도 있고,  
  
워낙 자기가 진단 내리고 병원 택하고 나중에 왜 이리로 왔냐 
  
살려놨는데도 보따리 물어내라는 분들이 많으므로, 
  
방어적으로 그러시려니 이해합니다. 
  
가장 가까운 거리의 종합병원은 10분 정도. 
  
세브란스병원이 40분, 일산에 있는 다른 종합병원들이 20분 거리. 
  
혈관촬영술이나 개흉술이 되기만 한다면, 무조건 빨리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 주실 것을 부탁하고  
  
가능한 스트레스가 될 생각을 안 하려 노력합니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기까지 5분, 병원으로 이동하는데 10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통증은 줄어들 기색이 없습니다. 
  
  
  
응급의학과 선생님과 인턴선생님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할 일을 합니다. 
  
의식과 호흡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옷을 갈아 입히고, 
  
모니터용 심전도 전극과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붙입니다. 
  
동맥혈과 정맥혈 채혈을 하고 
  
능숙한 간호사 선생님이 아주 굵은 바늘로 더 늦기 전에 팔의 정맥을 찾아 
  
쇼크에 빠지게 되면 바로 생명줄인 수액선을 확보합니다. 
  
  
  
저는 보통 병원에 가더라도 의사인 것을 밝히지 않습니다만 
  
(봐주시는 의사분이 부담 때문에 제대로 못 보실까봐 그렇기도 하고,  
  
제가 뭔가 특혜를 받으면 다른 환자분들이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손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번만은 의사 소통이 촉박하다는 판단 하에 
  
의사임을 밝히고, 심장이 원인인 통증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알아들으신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여러가지 피 검사와 지시를 합니다. 
  
5분 후, 다행히 별도로 바로 촬영한 12극 심전도에는 
  
심장 근육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 징조는 없습니다. 
  
통증도 조금은 잦아드는 것 같습니다. 
  
  
  
보통 이 정도 협심증이라면, 심근효소 (심장 근육 안에 있는 효소로, 
  
손상을 많이 받을 수록 혈액으로 많이 빠져나와 수치가 높아집니다) 등의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 심혈관 CT등의 덜 침습적 (invasive)인 검사로 
  
상태를 판단하는 것을 먼저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서상 그게 경제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진단 목적의 혈관조영술도 그 자체로 여러가지로 부담이 가는 시술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있습니다. 
  
보호자가 알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조용히 해결하는 건 글렀지만, 
  
괜찮으니 걱정말라고 전화할 참입니다. 
  
  
  
  
그때 바로 
  
  
생각하기 싫은 3차 통증이 옵니다. 
  
  
  
아까까지의 강도가 1에서 10까지 중 8이었다면 이번엔 10입니다. 
  
그리고, 제 눈에 심전도 모니터 그래프가 바뀌는 것이 보입니다. 
  
심장이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급히 혈압을 다시 재고, 12극 심전도를 다시 찍습니다. 
  
급성 심근경색. 가역적인 상태에서 비가역적인 상태로 넘어간 것입니다. 


  
아내에게 직접 걱정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하다가 바로 들어가야 된다고 말을 바꾸는 인턴 선생님 전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듭니다. 
  
  
  
  
죽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혈압은 상승제를 급히 투여하고, 수액을 콸콸 붓고 있음에도 
  
다시 쇼크 근접 수치로 내려갑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보이고 들리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기운이 없습니다. 
  
어린 아들과 친구들, 환자들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심장이 완전히 멎진 않았으므로 임사체험같은거야 아니었겠지만 
  
비스무리한 것 같습니다. 
  
침대가 혈관촬영실(심도자실)로 달립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팔과 턱은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혈관촬영실에 도착하자, 심장내과 선생님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처치를 이어갑니다. 
  
와이어가 동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 팔의 요골동맥 (보통 맥 짚는 손목의 동맥) 
  
또는 대퇴동맥 (사타구니의 더 큰 동맥)으로 들어갑니다. 
  
요골동맥으로 들어가면 팔을 한 동안 제대로 쓸 수 없겠지만, 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률은 대퇴동맥보다 낮습니다. 
  
다행히 성공한 것 같습니다. 이제 통증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라는 교수님 지시가 마지막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잠시 약기운 때문인지 낮아진 혈압 때문인지,  
  
  
  
아득한 기분이 듭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심혈관 촬영 영상이 보입니다. 
  
‘보이시죠?  RCA (우선회동맥: 관상동맥 분지의 하나)가 막혀있어서 넓히고, 스텐트를 넣었습니다. 
  
다행히 잘 되었습니다’ 하는 말씀이 들립니다. 
  
모래시계 허리처럼 끊겨있던 혈관이, 시술 후 잘 통하는 것이 보입니다. 
  
진행 양상이 아주 특이한 편인데, 아마도 RCA가 막혔을 때의 양상이 
  
다른 가지가 막혔을 때와 다르고 
  
경화된 파편이 몸에 무리가 가면서 떨어져 나와 들려서 막혀서, 
  
급히 진행되었던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통증은 이제 5 정도로 낮아졌고, 
  
약기운 때문인지 심장이 손상을 많이 안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응급실로 다시 실려와서 아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납니다. 
  
추워서 나는 눈물인지, 
  
부모님과 가족들이 걱정하실게 미안해서 나는 눈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운 걸 들키면 가족들은 더 슬퍼할 것이므로, 오기 전에 눈물은 닦습니다. 
  
  
  
걱정하게 한 게 너무 미안합니다. 
  
괜찮다고 걱정말라는 말밖엔 그래도 할 말이 없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져 하루를 보냅니다. 
  
  
중환자실은 24시간 옆에 사람이 붙어 있어야 숨이 붙어 있는 분들이 있는 곳입니다. 
  
반 쯤은 의식이 없으시고, 깨어 있는 분들 중에 제정신인 환자는 저 밖에 없습니다. 
  
생명유지장치들이 삑삑거리는 소리와 
  
환자들이 내는 소리에 묻혀 하루가 지나갑니다. 
  
여기서 일할 때는 환자로 중환자실에 들어오는 건 절대 원하지 않았었지만 
  
힘들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는 살았고 저 분들은... 하는 생각에 
  
마음은 복잡합니다. 
  
  
  
와이어를 넣기 위해 손목 동맥을 뚫은 자리에는 압박대가 감겨 있습니다. 
  
피가 굳지 않는 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몇 시간동안 눌러 놓아야 합니다. 저립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일반 병실로 나와 심장 외의 다른 혈관에는 문제가 없는지 검사를 받습니다. 
  
  
이건 왜 그런지 몰라도 보험이 안됩니다. 
  
심장 고치고 나가다가 중풍을 맞아도 나몰라라인지 화가 납니다. 
  
운동선수가 팔다리 근육을 다치면 재활을 해야하는 것처럼,  
  
심장 근육이 손상을 많이 받으면 다른 곳의 근육이 다친 것처럼 재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심초음파와 심근효소검사(피검사 중 하나)는 이 것을 추적하기 위한 검사입니다.  
  
또, 전기가 흐르는 근육 주머니인 심장은 손상을 받게 되면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합병증인 부정맥이 생길 수 있어 
  
24시간동안 심전도를 모니터링하는 홀터 검사를 받습니다. 
  
  
  
이 검사들에서 이상이 있으면 퇴원이 늦어질 수도 있고 
  
병원에 자주 들려야 할 것이고 
  
예전과 같은 생활은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근데 다행히, 정말 다행히  
  
  
  
합병증의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도 동맥경화는 약간 있지만, 의미있게 좁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그리고 4일 후, 저는 축하 속에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비용은 대략 300만원 정도의 자기 부담금이 나왔습니다. 
  
300만원이면 백 하나 카메라 한 대 값입니다. 
  
목숨값으로는… 
  
  
음. 촌지를 드리거나,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분간은 혈관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 항혈전제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피가 잘 멎지 않습니다. 
  
여드름 짜면 한참을 눌러야 할 것이고, 
  
피부를 심하게 긁으면 멍이 듭니다. 
  
재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혈관확장제를 쓰고 있어 
  
가볍게 두통이 있습니다만, 보통 1-2주 안에 없어진다고 합니다. 
  
또, 혈관조영술을 한 오른팔은 때때로 저리고,  
  
한 두달은 힘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감수를 해야 할 부분입니다. 
  
열심히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야 하고,  
  
체중도 줄여야겠습니다. 
  
어쩌면 10년동안 실패했던 다이어트를  
  
성공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 
  
  
  
비록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안 좋은 일을 겪었고,  
  
병의 진행 양상도 매우 전격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운이 좋았던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전체 심근경색 환자 중 1/3이 결국 수년 내 사망하며, 
  
합병증이 저처럼 없는 환자는 0.1%도 되지 않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일이 생겼더라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병원에 들어간 후 심근경색으로 진행된 탓에 빠른 조치가 가능했고, 
  
덕분에 합병증도 최소화했습니다. 
  
혈관조영술이 가능했기에 빠른 회복이 가능했습니다. 
  
개흉술을 할 상황이었다면, 지금도 병원에... 아마도 중환자실에 있겠지요. 
  
또 혈관조영술이 팔의 동맥으로 가능했어서 
  
(혈관의 모양이 사람마다 달라 안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찍 걸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까운 곳에 헌신적이고 우수한 구조 인력과 의료진이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행운을 모든 분들께도 기대합니다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몸 상태가 병원에 가기 전의 제 상태와 비슷하고 
  
비슷한 위험 인자를 가지고 계신 클리앙 분들은 
  
미리미리 체크하셔서 겪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긴 글을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빼먹을 뻔 했습니다만,  
  
투철한 직업 정신과 지식으로 힘든 격무 중에도 침착하게 
  
떠나는 저를 다시 데려와 주신 영웅들,  
  
명지병원 심장내과, 응급실, 중환자실 선생님들과 
  
고양행신소방서 119대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곧 건강히 다시 찾아 뵙고 
  

감사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차ㅊㅊ 클리앙
2차ㅊㅊ 펨코

알고보니 집근처로 실려간 병원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심장내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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