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비라는 호칭은 ( 살아있는 선왕의 왕비를 가르키는 호칭임 )
먼저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왕대비 = 바로 전 왕의 부인. 대체로 왕의 어머니뻘인 경우가 많았음
대왕대비 = 전 전 왕의 부인. 대체로 왕의 조모뻘이 많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되려면 반드시 선대 국왕 재임 시절 왕비였어야 자리에 오를수 있었어
청나라같은 경우 왕의 모친이 후궁이더라도
황제의 친모는 " 성모황태후 ". 선황제의 정실황후는 "모후황태후 " 로 불리었고
단 둘의 직위에 있어서는 선황제의 정실부인이 더 윗급이였음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이전에는 왕대비는 왕태후.
대왕대비는 대왕태후로 호칭했고
고려시대 같은 경우 왕의 정실과 후궁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서 살아생전에는 죄다 궁주라는 호칭으로 불리다가
왕이 죽고 궁주들 소생 중 한명이 왕이 되면 왕태후가 되고 사후에 선왕의 정실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어
그리고 집안 빽이 짱짱하면 사후에 왕후로 추존되는 경우도 많고 후임국왕과 관계가 돈독한경우
" 태비 " 라는 호칭으로 불리다가 사후 왕후로 추존되는 경우도 있었음
그러다보니 고려시대의 경우 한 국왕당 왕후가 최소 2명이상인 경우가 많음
조선시대의 경우 3대왕을 거침에도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거나 호적이 꼬인경우를 소개할께
http://img.theqoo.net/kNcdu
숙종의 어머니이자 현종의 부인 명성왕후 김씨
http://img.theqoo.net/sZzzY
인조의 두번째 정실부인이자 숙종의 의붓 증조할머니 장렬왕후 조씨
여기서 장렬왕후는 인조의 두번째 정실왕후로
효종에게는 새어머니. 현종에게는 의붓할머니. 숙종에게는 증조할머니뻘이야
덬들 생각에
" 증조할머니면 왕의 조모뻘인 대왕대비보다 높은 직위여야 하는거 아니야?. 4대왕을 거쳤는데 ? "
라고 생각할꺼임.
중국같은 경우 태황태후 위에 황제의 증조모뻘이나 4대황제를 거친 경우 "태상황태후 " 라는 호칭이 있었음
왜 장렬왕후가 손자뻘인 현종때도 대왕대비였고 증손자뻘인 숙종때도 대왕대비였냐면
자기보다 6살이나 많은 의붓며느리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는 아들 현종의 재임중이던 1674년 56세에 뇌졸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남
만일 숙종때 인조 비 장렬왕후 - 효종 비 - 인선왕후 - 현종 비 명성왕후
이렇게 숙종의 어머니. 할머니. 의붓증조할머니
죄다 살아있으면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였을꺼임
장렬왕후는 남편 인조보다 29살이나 어렸고
의붓아들 효종보다도 5살 어리고
손자뻘인 현종과는 18살 많은 나이였음
증손자뻘인 숙종보다도 불과 37살 많은 나이였음
장렬왕후는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져서 평생 거동이 불편한 뒷방신세였고
궁의 가장큰 어른이지만 자식도 없어서 늘 쓸쓸했다고 해
그래서 궁녀 하나를 들이는데 이 궁녀가 바로 장희빈이야
장렬왕후는 1688년 6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어쨋든
이런경우 굳이 대왕대비 윗급의 작위를 만들지 않았을꺼라고 추측하는건
후대에 무려 3명의 대비가 살아있는 상황이 오게 되었음
http://img.theqoo.net/bDGtL
순조의 부인. 정조의 며느리
순원왕후 김씨 (1789 ~ 1857. 68세 사망)
http://img.theqoo.net/fiuYN
순조의 아들. 익종의 부인 신정왕후 조씨
(1808 ~ 1890. 82세 사망. 최장수 왕후)
http://img.theqoo.net/AgiYS
순조의 손자이자 익종의 아들 헌종의 두번째 왕후
효정왕후 홍씨 (1831 ~ 1903. 72세 사망)
대한제국 시절 황제국이 되면서 명헌태후로 불림
자 먼저 순조에게는 아들이 순원왕후와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
"효명세자" 가 있어
이 효명세자가 10대 초반 어린나이에 결혼한게
신정왕후 조씨. 효명세자보다 1살 어린 1808년생 ( 효명세자는 1807년생)
이둘은 금술이 좋아서 1827년 아들을 낳는데 바로 헌종임
그런데 1830년 효명세자가 23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남
이럴경우 과부가 된 며느리이자 순조의 뒤를 이을 손자 헌종의 어머니 세자빈 조씨는
사가에 나가 살다가 1834년 시아버지 순조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헌종이 8살에 왕이 되면서
선왕의 왕비이자 국왕 헌종의 조모 순원왕후가 섭정을 하게됨
순원왕후는 일찍 죽은 아들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존 국왕 익종의 부인
신정왕후는 왕대비. 순원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었어
여기서 문제가 생겨
헌종에게는 두 왕후가 있는데
첫 왕비 효헌왕후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13세에 병으로 죽고
두번째 왕비 효정왕후는 헌종보다 4살어린 1831년생임
그런데 헌종이 후사없이 23세이던 1849년 세상을 떠남
그래서 그당시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일명 강화도령이자 먼 왕실후손인 철종을
순조와 자신의 양아들로 입적시키고 임금으로 만들어
이때 문제가 생긴거임
대비가 3명임
과부가 된 이제 겨우 19살 손주며느리 효정왕후
남편이어 아들까지 먼저보낸 신정왕후
그리고 대왕대비 순원왕후
그래서 효정왕후는 대비. 신정왕후는 왕대비. 순원왕후는 그대로 대왕대비가 됨
굳이 대왕대비 윗급의 작위를 만들지 않고 그냥 왕대비 아래에 대비라는 작위를 만든거야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아들인 철종에게
헌종과 그 부인 효정왕후는 조카와 조카며느리뻘이나 전 국왕과 그 부인이기에
이제 겨우 19세인 대비 효정왕후에게 철종은 왕실어른 대접으로 매일 문안인사를 가야했음
http://img.theqoo.net/omcTD
그러던중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그 해 1월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69세로 세상을 떠남
그러다보니 왕실에 대비들은 익종비 신정왕후.
효종비 효정왕후 단 둘이야.
익종 부인 신정왕후는 왕비가 된 적 없고
세자빈 출신임에도 선왕 헌종의 어머니. 추존 왕 익종의 부인이였기에
대왕대비. 효정왕후는 대비에서 왕대비로 승격
http://img.theqoo.net/utcIO
그러던 중 1864년 철종이 3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남
철종에게 딸은 있으나 아들은 없고 철종에게
6살 어린 부인
겨우 28세에 과부가 된
http://img.theqoo.net/cGfCs
철인왕후 김씨 (1837 ~ 1878) 이 있을뿐이야
이후 알다시피 대왕대비 신정왕후는 종친 흥선대원군의 둘째 고종을 왕으로 만들고 수렴청정을 함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김
왕실에 과부가 3명임
순조의 친아들 익종의 부인 신정왕후
순조의 양아들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
순조의 손자 헌종의 부인 효정왕후
명목상 효정왕후가 철인왕후보다 과부선배여도
철인왕후에게 효정왕후는 조카며느리임
그래서 법도대로라면
철인왕후가 바로 전 왕 철종의 부인여도
철종과 익종은 형제지간이니
철인왕후와 신정왕후 둘다 대왕대비로 세우고
헌종 비 효정왕후를 왕대비로 세우자는 여론이 있었음
하지만 안동김씨를 끔찍히 싫어하는 대왕대비 신정왕후와 철인왕후가 대왕대비가 된다면 안동김씨가 설치는걸 싫어할 흥선대원군의 목적에 따라서
대왕대비 신정왕후. 헌종부인 효정왕후는 왕대비. 철종비 철인왕후는 대비가 됨
촌수는 철인왕후가 높아도 효정왕후는 헌종. 철종. 고종을 거첬기 때문에 더 과부선배인게 이유임
그 뒤 신정왕후는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효도를 받으면서 장수하다가 1890년 82세에 노환으로 인생을 마감. 워낙 오래살아서 1882년 임오군란 때는 내시등에 업혀서 피난갔다는 기록이 있음
겨우 19세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 대비가 된 효정왕후는 시어머니 신정왕후의 딸노릇을 하면서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효도를 받다가
그뒤 을미사변까지 격고 1903년 72세로 생을 마감해
법도대로 신정왕후가 죽은 1890년 효정왕후는
헌종. 철종. 고종 3대왕을 격어서 대왕대비가 맞지만 고종은 익종의 양아들로 입적한 경우임. 그러니깐 효정왕후는 고종보다 22살 많은. 엄마뻘이지만 법도대로는 형수님이야
. 그래서 왕대비 신분으로 있다가 대한제국 선포이후 명헌태후로 책봉. 덕수궁에서 살다가 1903년 72세로 세상을 떠남
뒷방신세 철종부인 철인왕후는 친정이 눈엣가시 같은 안동김씨 이기에 평생 뒷방신세로 살았어
의붓동서뻘인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눈치를 보고 푸대접 받으면서 살았고
촌수대로 따지면 익종의 양아들 고종. 그러니깐 남편 철종에게는 조카뻘인 고종도 그녀에게 잘 문안오지 않았고 쓸쓸히 살다가 1878년 42세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남
또다른 경우를 소개할께
http://img.theqoo.net/tCrya
성종시대에는 대왕대비 1명. 왕대비 2명이 생기는데
왼쪽부터 대왕대비.
그러니깐 성종의 조부이자 전전왕의 부인. 그러니깐 친할머니 정희왕후 (1418 ~ 1483)
그리고 성종의 친모이자 의경세자 덕종의 부인 소혜왕후 한씨 (1437 ~ 1504)
그리고 파란당의를 입은 성종의 작은어머니 예종부인 안순왕후 (1445 ~ 1498)
세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음
큰아들 의경세자 (1437 ~ 1457)
둘째아들 예종 ( 1450 ~ 1469 )
인데 세조가 왕이 되고 장남 의경세자는 아들 성종이 태어나고 2달만에 세상을 떠남
그래서 그당시 세자빈 한씨는 수빈한씨로 책봉되고 큰아들 월산대군과 갓 2달 넘은 둘째아들 성종이랑 사저에 나가 살고
세조의 차남 예종이 왕이 되고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데 1469년 예종도 어린나이에 죽고
그당시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이제 겨우 4살 너무 어림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대군은 15살 . 권력욕 많은 정희왕후에게는 너무 많아보임
그래서 성종이 12살 나이에 임금이 되고
성종의 조모이자 세조.예종.성종까지 3대왕 거친 정희왕후는 대왕대비
예종의 부인 안순왕후는 왕대비
그리고 일찍 죽은 덕종비 수빈한씨는 남편이 의경세자에서 덕종으로 추존이 되면서 왕대비가 되었음
단 정희왕후는 왕대비 한씨가 안순왕후보다 서열이 높은걸로 하였는데
국왕의 친모인데다가 예종의 형이 의경세자여서였음
그리고 1483년 온천에 요양하러간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66세로 죽고
두 왕대비 안순왕후와 소혜왕후 (인수대비) 는 왕실의 어른이됨
연산군이 즉위하고 두 왕대비는 대왕대비가 되고
1498년 안순왕후는 5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1504년 인수대왕대비 소혜왕후는 68세에 손자 연산군의 폐륜에 세상을 떠남
http://img.theqoo.net/PHVcH
성종에게는 3명의 왕비가 있음
공혜왕후 (1456 ~ 1474)
폐비윤씨 (1455 ~ 1482)
정현왕후 윤씨 (1462 ~ 1530)
사진 속 핑클 이진이 왕과나에서 맡은 역할이 정현왕후 윤씨임
공혜왕후는 일찍 죽고 폐비 윤씨가 왕비가 되어 아들 연산군을 낳고 중전이 되나 투기로 폐위 밎 사사되었고
그자리를 정현왕후가 앉게 됨
정현왕후에게는 아들 진성대군 ( 훗날 중종)
그리고 원래 세자 연산군
알다시피 연산이 왕이 되나 폐륜과 실정으로 쫒겨남
그때 연산군의 왕비 신씨도 같이 폐위되었음
http://img.theqoo.net/rzcDJ
그래서 정현왕후는
성종 - 연산군 - 중종 3대왕을 거첬음에도 중간에 왕대비가 될 신씨가 폐위되어서
그대로 그냥 왕대비가 된 경우임.
하지만 이런경우가 있음
http://img.theqoo.net/Dyqsc
선조보다 32세 어린 부인 인목왕후
(1584 ~ 1632.)
알다시피 선조의 정실 의인왕후는 불임이여서 후궁의 아들 광해군이 왕이 되었음
그런데 의인왕후가 죽고 새 중전이 된 인목왕후가 각각 정명공주와 영청대군을 출산
그래서 광해군은 선조 사후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 새엄마 인목왕후는 대비에서 폐위
그러다가 광해군이 조카인 인조에 의해 폐위됨
그리고 인조는 왕이 되자 아버지 정원군 (선조 후궁의 아들)을 왕으로 추존시킴
그래서 인목왕후는 인조의 조모뻘이고 폐위된 왕까지 3대왕을 거첬기에 대왕대비가 된 경우임
정현왕후는 의붓아들이 폐위 후 친아들이 왕이 된경우
인목왕후는 의붓아들이 폐위되고 의붓손자가 왕이 된 경우임
그 외 특이 케이스로는
http://img.theqoo.net/iCIyF
영조보다 무려 51세 어린 정순왕후가 있는데
영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음
첫 아들 (1719 ~ 1728) 효장세자 ( 진종으로 추존)
둘째 아들 사도세자 ( 1735 ~ 1762.)
그런데
정조는 영조의 손자고 정순왕후는 의붓할머니임
그럼에도 정순왕후는 대왕대비가 아닌 왕대비인데 그 이유는
사도세자가 죽고 영조는 정조를 첫 아들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시킴
효장세자에게는 8살에 결혼한 부인 효순왕후가 있는데 이부인은 과부가 되고 궁에서 살다가 1752년 37세로 사망
정조는 왕이 되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왕과 왕후로 추존시키나 둘다 이미 고인임
그래서 살아있다면 왕대비가 될 효순왕후가 죽었기에 정순왕후는 그대로 왕대비가 됨
혜경궁 홍씨가 대비가 못 된 이유도 친아들 정조가 남편의 일찍 죽은 형 진종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서임
정조가 1800년 49세로 죽자 의붓할머니 정순왕후는 의붓증손자 순조를 대신에 섭정을 함
이때 정조의 부인 효의왕후는 왕대비. 정순왕후는 대왕대비가 됨
만일 효장세자 부인 효순왕후가 30대에 안죽고 신정왕후처럼 장수했다면
정조때에는
대왕대비 정순왕후. 왕대비 효순왕후
순조때에
대왕대비 정순왕후. 왕대비 효순왕후. 대비 효의왕후가 되었을것임
대왕대비가 되지 못한 또다른 인물은
http://img.theqoo.net/xiBwO
인종의 부인 인성왕후 박씨 (1514 ~ 1578)
이 있음
중종에게는 요절부인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 그후들인 왕비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있음
그런데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에 이어 명종이 왕이 되고 인성왕후는 왕대비가 되었으나
시어머니 대왕대비 문정 왕후의 눈쌀에 제대로 책봉이 안됨
그러다가 문정왕후와 명종이 죽고 비로소 선조 때에야 왕대비로 정식 인정받음
그래서 선조 때에는 인종 비 인성왕후. 명종 비 인순왕후 두 왕대비가 있음
문정왕후의 경우
의붓아들 인종이 왕이 되고 친아들 명종이 왕이 되나
인종의 재임기간이 짧다고 정식 국왕으로 인정 안하려고 함. 그런데 명목상 3대왕을 거쳐서 대왕대비가 됨
숙종의 마지막 왕비 인원왕후도
영조시절 영조의 어머니뻘이나 경종의 부인 선의왕후가 왕대비로 살아있어서 대왕대비가 된 경우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 송씨는
남편이 상왕이 되고 의덕왕대비가 되나 남편이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같이 강등된 경우
먼저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왕대비 = 바로 전 왕의 부인. 대체로 왕의 어머니뻘인 경우가 많았음
대왕대비 = 전 전 왕의 부인. 대체로 왕의 조모뻘이 많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되려면 반드시 선대 국왕 재임 시절 왕비였어야 자리에 오를수 있었어
청나라같은 경우 왕의 모친이 후궁이더라도
황제의 친모는 " 성모황태후 ". 선황제의 정실황후는 "모후황태후 " 로 불리었고
단 둘의 직위에 있어서는 선황제의 정실부인이 더 윗급이였음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이전에는 왕대비는 왕태후.
대왕대비는 대왕태후로 호칭했고
고려시대 같은 경우 왕의 정실과 후궁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서 살아생전에는 죄다 궁주라는 호칭으로 불리다가
왕이 죽고 궁주들 소생 중 한명이 왕이 되면 왕태후가 되고 사후에 선왕의 정실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어
그리고 집안 빽이 짱짱하면 사후에 왕후로 추존되는 경우도 많고 후임국왕과 관계가 돈독한경우
" 태비 " 라는 호칭으로 불리다가 사후 왕후로 추존되는 경우도 있었음
그러다보니 고려시대의 경우 한 국왕당 왕후가 최소 2명이상인 경우가 많음
조선시대의 경우 3대왕을 거침에도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거나 호적이 꼬인경우를 소개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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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어머니이자 현종의 부인 명성왕후 김씨
http://img.theqoo.net/sZzzY
인조의 두번째 정실부인이자 숙종의 의붓 증조할머니 장렬왕후 조씨
여기서 장렬왕후는 인조의 두번째 정실왕후로
효종에게는 새어머니. 현종에게는 의붓할머니. 숙종에게는 증조할머니뻘이야
덬들 생각에
" 증조할머니면 왕의 조모뻘인 대왕대비보다 높은 직위여야 하는거 아니야?. 4대왕을 거쳤는데 ? "
라고 생각할꺼임.
중국같은 경우 태황태후 위에 황제의 증조모뻘이나 4대황제를 거친 경우 "태상황태후 " 라는 호칭이 있었음
왜 장렬왕후가 손자뻘인 현종때도 대왕대비였고 증손자뻘인 숙종때도 대왕대비였냐면
자기보다 6살이나 많은 의붓며느리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는 아들 현종의 재임중이던 1674년 56세에 뇌졸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남
만일 숙종때 인조 비 장렬왕후 - 효종 비 - 인선왕후 - 현종 비 명성왕후
이렇게 숙종의 어머니. 할머니. 의붓증조할머니
죄다 살아있으면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였을꺼임
장렬왕후는 남편 인조보다 29살이나 어렸고
의붓아들 효종보다도 5살 어리고
손자뻘인 현종과는 18살 많은 나이였음
증손자뻘인 숙종보다도 불과 37살 많은 나이였음
장렬왕후는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져서 평생 거동이 불편한 뒷방신세였고
궁의 가장큰 어른이지만 자식도 없어서 늘 쓸쓸했다고 해
그래서 궁녀 하나를 들이는데 이 궁녀가 바로 장희빈이야
장렬왕후는 1688년 6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어쨋든
이런경우 굳이 대왕대비 윗급의 작위를 만들지 않았을꺼라고 추측하는건
후대에 무려 3명의 대비가 살아있는 상황이 오게 되었음
http://img.theqoo.net/bDGtL
순조의 부인. 정조의 며느리
순원왕후 김씨 (1789 ~ 1857. 68세 사망)
http://img.theqoo.net/fiuYN
순조의 아들. 익종의 부인 신정왕후 조씨
(1808 ~ 1890. 82세 사망. 최장수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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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의 손자이자 익종의 아들 헌종의 두번째 왕후
효정왕후 홍씨 (1831 ~ 1903. 72세 사망)
대한제국 시절 황제국이 되면서 명헌태후로 불림
자 먼저 순조에게는 아들이 순원왕후와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
"효명세자" 가 있어
이 효명세자가 10대 초반 어린나이에 결혼한게
신정왕후 조씨. 효명세자보다 1살 어린 1808년생 ( 효명세자는 1807년생)
이둘은 금술이 좋아서 1827년 아들을 낳는데 바로 헌종임
그런데 1830년 효명세자가 23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남
이럴경우 과부가 된 며느리이자 순조의 뒤를 이을 손자 헌종의 어머니 세자빈 조씨는
사가에 나가 살다가 1834년 시아버지 순조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헌종이 8살에 왕이 되면서
선왕의 왕비이자 국왕 헌종의 조모 순원왕후가 섭정을 하게됨
순원왕후는 일찍 죽은 아들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존 국왕 익종의 부인
신정왕후는 왕대비. 순원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었어
여기서 문제가 생겨
헌종에게는 두 왕후가 있는데
첫 왕비 효헌왕후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13세에 병으로 죽고
두번째 왕비 효정왕후는 헌종보다 4살어린 1831년생임
그런데 헌종이 후사없이 23세이던 1849년 세상을 떠남
그래서 그당시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일명 강화도령이자 먼 왕실후손인 철종을
순조와 자신의 양아들로 입적시키고 임금으로 만들어
이때 문제가 생긴거임
대비가 3명임
과부가 된 이제 겨우 19살 손주며느리 효정왕후
남편이어 아들까지 먼저보낸 신정왕후
그리고 대왕대비 순원왕후
그래서 효정왕후는 대비. 신정왕후는 왕대비. 순원왕후는 그대로 대왕대비가 됨
굳이 대왕대비 윗급의 작위를 만들지 않고 그냥 왕대비 아래에 대비라는 작위를 만든거야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아들인 철종에게
헌종과 그 부인 효정왕후는 조카와 조카며느리뻘이나 전 국왕과 그 부인이기에
이제 겨우 19세인 대비 효정왕후에게 철종은 왕실어른 대접으로 매일 문안인사를 가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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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중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그 해 1월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69세로 세상을 떠남
그러다보니 왕실에 대비들은 익종비 신정왕후.
효종비 효정왕후 단 둘이야.
익종 부인 신정왕후는 왕비가 된 적 없고
세자빈 출신임에도 선왕 헌종의 어머니. 추존 왕 익종의 부인이였기에
대왕대비. 효정왕후는 대비에서 왕대비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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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864년 철종이 3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남
철종에게 딸은 있으나 아들은 없고 철종에게
6살 어린 부인
겨우 28세에 과부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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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 김씨 (1837 ~ 1878) 이 있을뿐이야
이후 알다시피 대왕대비 신정왕후는 종친 흥선대원군의 둘째 고종을 왕으로 만들고 수렴청정을 함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김
왕실에 과부가 3명임
순조의 친아들 익종의 부인 신정왕후
순조의 양아들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
순조의 손자 헌종의 부인 효정왕후
명목상 효정왕후가 철인왕후보다 과부선배여도
철인왕후에게 효정왕후는 조카며느리임
그래서 법도대로라면
철인왕후가 바로 전 왕 철종의 부인여도
철종과 익종은 형제지간이니
철인왕후와 신정왕후 둘다 대왕대비로 세우고
헌종 비 효정왕후를 왕대비로 세우자는 여론이 있었음
하지만 안동김씨를 끔찍히 싫어하는 대왕대비 신정왕후와 철인왕후가 대왕대비가 된다면 안동김씨가 설치는걸 싫어할 흥선대원군의 목적에 따라서
대왕대비 신정왕후. 헌종부인 효정왕후는 왕대비. 철종비 철인왕후는 대비가 됨
촌수는 철인왕후가 높아도 효정왕후는 헌종. 철종. 고종을 거첬기 때문에 더 과부선배인게 이유임
그 뒤 신정왕후는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효도를 받으면서 장수하다가 1890년 82세에 노환으로 인생을 마감. 워낙 오래살아서 1882년 임오군란 때는 내시등에 업혀서 피난갔다는 기록이 있음
겨우 19세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 대비가 된 효정왕후는 시어머니 신정왕후의 딸노릇을 하면서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효도를 받다가
그뒤 을미사변까지 격고 1903년 72세로 생을 마감해
법도대로 신정왕후가 죽은 1890년 효정왕후는
헌종. 철종. 고종 3대왕을 격어서 대왕대비가 맞지만 고종은 익종의 양아들로 입적한 경우임. 그러니깐 효정왕후는 고종보다 22살 많은. 엄마뻘이지만 법도대로는 형수님이야
. 그래서 왕대비 신분으로 있다가 대한제국 선포이후 명헌태후로 책봉. 덕수궁에서 살다가 1903년 72세로 세상을 떠남
뒷방신세 철종부인 철인왕후는 친정이 눈엣가시 같은 안동김씨 이기에 평생 뒷방신세로 살았어
의붓동서뻘인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눈치를 보고 푸대접 받으면서 살았고
촌수대로 따지면 익종의 양아들 고종. 그러니깐 남편 철종에게는 조카뻘인 고종도 그녀에게 잘 문안오지 않았고 쓸쓸히 살다가 1878년 42세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남
또다른 경우를 소개할께
http://img.theqoo.net/tCrya
성종시대에는 대왕대비 1명. 왕대비 2명이 생기는데
왼쪽부터 대왕대비.
그러니깐 성종의 조부이자 전전왕의 부인. 그러니깐 친할머니 정희왕후 (1418 ~ 1483)
그리고 성종의 친모이자 의경세자 덕종의 부인 소혜왕후 한씨 (1437 ~ 1504)
그리고 파란당의를 입은 성종의 작은어머니 예종부인 안순왕후 (1445 ~ 1498)
세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음
큰아들 의경세자 (1437 ~ 1457)
둘째아들 예종 ( 1450 ~ 1469 )
인데 세조가 왕이 되고 장남 의경세자는 아들 성종이 태어나고 2달만에 세상을 떠남
그래서 그당시 세자빈 한씨는 수빈한씨로 책봉되고 큰아들 월산대군과 갓 2달 넘은 둘째아들 성종이랑 사저에 나가 살고
세조의 차남 예종이 왕이 되고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데 1469년 예종도 어린나이에 죽고
그당시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이제 겨우 4살 너무 어림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대군은 15살 . 권력욕 많은 정희왕후에게는 너무 많아보임
그래서 성종이 12살 나이에 임금이 되고
성종의 조모이자 세조.예종.성종까지 3대왕 거친 정희왕후는 대왕대비
예종의 부인 안순왕후는 왕대비
그리고 일찍 죽은 덕종비 수빈한씨는 남편이 의경세자에서 덕종으로 추존이 되면서 왕대비가 되었음
단 정희왕후는 왕대비 한씨가 안순왕후보다 서열이 높은걸로 하였는데
국왕의 친모인데다가 예종의 형이 의경세자여서였음
그리고 1483년 온천에 요양하러간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66세로 죽고
두 왕대비 안순왕후와 소혜왕후 (인수대비) 는 왕실의 어른이됨
연산군이 즉위하고 두 왕대비는 대왕대비가 되고
1498년 안순왕후는 5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1504년 인수대왕대비 소혜왕후는 68세에 손자 연산군의 폐륜에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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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에게는 3명의 왕비가 있음
공혜왕후 (1456 ~ 1474)
폐비윤씨 (1455 ~ 1482)
정현왕후 윤씨 (1462 ~ 1530)
사진 속 핑클 이진이 왕과나에서 맡은 역할이 정현왕후 윤씨임
공혜왕후는 일찍 죽고 폐비 윤씨가 왕비가 되어 아들 연산군을 낳고 중전이 되나 투기로 폐위 밎 사사되었고
그자리를 정현왕후가 앉게 됨
정현왕후에게는 아들 진성대군 ( 훗날 중종)
그리고 원래 세자 연산군
알다시피 연산이 왕이 되나 폐륜과 실정으로 쫒겨남
그때 연산군의 왕비 신씨도 같이 폐위되었음
http://img.theqoo.net/rzcDJ
그래서 정현왕후는
성종 - 연산군 - 중종 3대왕을 거첬음에도 중간에 왕대비가 될 신씨가 폐위되어서
그대로 그냥 왕대비가 된 경우임.
하지만 이런경우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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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보다 32세 어린 부인 인목왕후
(1584 ~ 1632.)
알다시피 선조의 정실 의인왕후는 불임이여서 후궁의 아들 광해군이 왕이 되었음
그런데 의인왕후가 죽고 새 중전이 된 인목왕후가 각각 정명공주와 영청대군을 출산
그래서 광해군은 선조 사후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 새엄마 인목왕후는 대비에서 폐위
그러다가 광해군이 조카인 인조에 의해 폐위됨
그리고 인조는 왕이 되자 아버지 정원군 (선조 후궁의 아들)을 왕으로 추존시킴
그래서 인목왕후는 인조의 조모뻘이고 폐위된 왕까지 3대왕을 거첬기에 대왕대비가 된 경우임
정현왕후는 의붓아들이 폐위 후 친아들이 왕이 된경우
인목왕후는 의붓아들이 폐위되고 의붓손자가 왕이 된 경우임
그 외 특이 케이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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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보다 무려 51세 어린 정순왕후가 있는데
영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음
첫 아들 (1719 ~ 1728) 효장세자 ( 진종으로 추존)
둘째 아들 사도세자 ( 1735 ~ 1762.)
그런데
정조는 영조의 손자고 정순왕후는 의붓할머니임
그럼에도 정순왕후는 대왕대비가 아닌 왕대비인데 그 이유는
사도세자가 죽고 영조는 정조를 첫 아들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시킴
효장세자에게는 8살에 결혼한 부인 효순왕후가 있는데 이부인은 과부가 되고 궁에서 살다가 1752년 37세로 사망
정조는 왕이 되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왕과 왕후로 추존시키나 둘다 이미 고인임
그래서 살아있다면 왕대비가 될 효순왕후가 죽었기에 정순왕후는 그대로 왕대비가 됨
혜경궁 홍씨가 대비가 못 된 이유도 친아들 정조가 남편의 일찍 죽은 형 진종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서임
정조가 1800년 49세로 죽자 의붓할머니 정순왕후는 의붓증손자 순조를 대신에 섭정을 함
이때 정조의 부인 효의왕후는 왕대비. 정순왕후는 대왕대비가 됨
만일 효장세자 부인 효순왕후가 30대에 안죽고 신정왕후처럼 장수했다면
정조때에는
대왕대비 정순왕후. 왕대비 효순왕후
순조때에
대왕대비 정순왕후. 왕대비 효순왕후. 대비 효의왕후가 되었을것임
대왕대비가 되지 못한 또다른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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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의 부인 인성왕후 박씨 (1514 ~ 1578)
이 있음
중종에게는 요절부인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 그후들인 왕비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있음
그런데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에 이어 명종이 왕이 되고 인성왕후는 왕대비가 되었으나
시어머니 대왕대비 문정 왕후의 눈쌀에 제대로 책봉이 안됨
그러다가 문정왕후와 명종이 죽고 비로소 선조 때에야 왕대비로 정식 인정받음
그래서 선조 때에는 인종 비 인성왕후. 명종 비 인순왕후 두 왕대비가 있음
문정왕후의 경우
의붓아들 인종이 왕이 되고 친아들 명종이 왕이 되나
인종의 재임기간이 짧다고 정식 국왕으로 인정 안하려고 함. 그런데 명목상 3대왕을 거쳐서 대왕대비가 됨
숙종의 마지막 왕비 인원왕후도
영조시절 영조의 어머니뻘이나 경종의 부인 선의왕후가 왕대비로 살아있어서 대왕대비가 된 경우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 송씨는
남편이 상왕이 되고 의덕왕대비가 되나 남편이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같이 강등된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