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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8년만에 고시 수석 합격한 사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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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시 : 2011년 12월 23일 11시 44분
<행시 국제통상 수석 합격기> ‘7전8기’의 근성으로 합격수기 쓰는 날 고대

황소현 제55회 행시 국제통상 수석?연세대 중어중문학 졸업

Ⅰ. 들어가며

‘나도 언젠가는 합격수기를 쓰게 되는 날이 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시간도 훌쩍 흘렀고, ‘내가 합격수기를 쓰게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몰라.’ 라며 한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던 시간도 지났습니다. 그리고 꿈을 향해 투쟁하고 계신 여러분과 지면으로 만날 수 있게 된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합격수기를 쓰고 있는 저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공부를 처음 시작한 지 만 8년이 넘었고, 학교를 다니거나 쉬면서 책을 손에서 놓았던 시기를 제외해도 6년이 넘는 기간을 공부했으며, 6번의 2차 시험을 치르는 동안 언제나 컷과 넉넉한 점수 차이로 떨어졌기 때문에 제 인생에 이런 영광스러운 순간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아 합격에 더해 수석이라는 영광을 안았음에도 저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길고 고통스러운 수험기간을 보내면서 합격생들의 작은 말 한마디에서 큰 힘을 얻고 다시 용기를 내었듯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저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수험생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미력하나마 저의 수험생활 전반과 공부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공부 방법은 특히나 100명이 있으면 100가지의 공부 방법이 있듯이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다르고, 저의 수험기간이 워낙 길어 백지상태에서 지식이 쌓이기까지의 과정이 선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제 수기를 읽고 희망을 얻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부끄럽지만 가감없이 써내려가겠습니다.

Ⅱ. 수험생활

1. 2003년 9월 ~ 2005년 8월

고시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3학년 1학기를 마친 후 휴학을 했습니다. 다음해인 2004년 2월은 1차가 암기과목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유예가 가능했던 마지막 해였습니다. PSAT가 도입되기 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휴학을 한 후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방대한 양에 눌려 공부를 등한시하기 일쑤였고, 내년에 꼭 붙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없었던 어리석은 초시생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1차를 떨어졌고 복학을 한 후 그 해 겨울방학 때 신림동으로 들어와 다시 1차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차를 치르고 학교를 다녔고, 모의고사 한 번 쳐보지 않고 2차 시험장에 들어갔으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합격수기를 쓰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어리석고 아까운 초반 2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2. 2005년 9월 ~ 2006년 10월

2005년 여름,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 안에 합격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휴학을 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사람들이 모두 보는 책을 보고 시간을 보내면 합격을 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학원 스케줄을 충실히 따라가며 강의를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진도스터디, 어학스터디에도 참여했습니다. 학원 강의와 진도스터디를 병행하면서 양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당시의 저는 답안의 질을 높이는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실력의 올리는 것보다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보이는 저에게 더 치중했던 당시에는 어떻게든 스케줄을 소화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왔고, 아직 1차 과목에 남아있었던 헌법의 도움을 받아 1차 평균점수를 안정권으로 만든 후 2차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4순환까지 수강했던 저는 강사들이 준 자료의 내용을 숙지하고는 있었지만 논리와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제가 그러한 상황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2차 시험장에 들어갔고,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는 지식을 쓰고 나왔고, 제가 과연 답안을 잘 쓴 것인지 여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2차 시험을 치르고 복학하여 마지막 학기를 불성실하게 다니던 도중, 찬바람과 함께 불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3. 2006년 11월 ~ 2008년 10월

2차에서 떨어진 후 약간의 방황을 하다가 다시 1차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1차에서 암기 과목이 사라지고 오로지 PSAT 세 과목만 남았지만 선례를 비추어 제가 1차에 떨어질 리가 없다는 자만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지라, 신림동에 들어가지 않고 1차 모강 문제를 구해다 집에서 대충 풀었고, 익숙했던 2차 또한 교과서와 서브를 무신경하게 넘기면서 방만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1차에서 참담한 점수를 받고 학교를 졸업한 저는 소위 ‘백수’가 되었습니다.
졸업한 해의 봄과 여름에는 지금보다 생각도 얕고 공부에 대한 절박함도 여전히 부족했던 제가 제 몸뚱이 하나 감당하지 못해서 허우적거리며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한심하게 보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르는, 학생이라는 안심할 수 있는 신분이 사라지고 낯익은 이름들이 1차 합격자 명단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고 저는 2차 시험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습니다.


그 해 9월, 짐을 싸서 다시 신림동으로 들어갔습니다. 내년에는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고, 2순환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지식을 익히고 정리하면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는 집에서 공부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엉덩이를 떼지 않는 생활을 하는 성실함을 보였고, 내년에 합격할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1차도 9월부터 시작하여 시중에 나온 모든 문제를 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차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한 결과 예상 컷과 안정적으로 차이나는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2차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이번에는 합격하겠다는 각오로 2차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붙을 것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저도 탄력을 받아 하루 목표량을 흐트러짐 없이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5월과 6월에 장염, 위염, 감기몸살이 차례차례 찾아와 공부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재시 때보다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는 생각과 모의고사 점수로 나타난 결과, 이제 붙을 때가 되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험장에서는 국제법 문제를 잘못 읽어 전혀 틀린 답안을 적어냈습니다. 그럼에도 전 과목 열장 꽉꽉 채웠다는 것, 공부 기간, 성실성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막연하게 합격 소식을 기다렸고, 여름과 가을을 생활비를 벌면서 얼렁뚱땅 보냈으며, 합격선과 넉넉하게 차이나는 평균점수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4. 2008년 11월 ~ 2009년 10월

한다고 했는데 형편없는 점수를 받은 후, 무엇이 문제인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국제법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긴 했지만, 다른 과목 또한 높지 않았고, 결국 1년 동안의 공부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지가 꺾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친구의 추천으로 학교 고시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같은 심정으로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장소나 환경을 옮기는 것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얻긴 했지만, 저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고칠 수는 있으며 고칠 수 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스스로가 알아내야 할 문제였고, 저는 스스로에게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지 못한 채 다시 시간에 쫓겨 PSAT 모의고사와 함께하는 겨울을 지냈고, 1차시험 후 신림동에 들어와서는 만들어놓은 서브를 가지고 잊어버린 지식을 되살리는 데에만 급급한 채 상반기를 보냈으며 경제적인 압박으로 지난 강의를 빌려 듣거나 자료만 참조하는 등 철저하지 못한 공부상태에서 찝찝한 마음으로 2차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2차를 친 직후 올해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빨리 손에 잡지 않은 당시의 저에게는 곤장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혹시 기적이 일어나 합격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를 안은 채, 나이도 많고 부모님을 자꾸 힘들게 한다는 핑계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사기업 여기저기에 원서를 쓰면서 허송세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월, 언제나와 같이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5. 2009년 11월 ~ 2011년 10월

1년을 통으로 날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시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림동으로 거처를 옮겼고 공부 장소도 방에서 독서실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기본서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가지고 있던 서브에 새로운 지식을 효율적으로 추가했습니다. 어학도 전문 강사에게 첨삭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평균 2점 차로 불합격했습니다.
2010년 가을에는 정말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부모님과 오랜 시간 상의도 했습니다. 너무 하고 싶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합격하는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한 것은 맞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두 합격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온 세상이 외치고 있는 긍정의 힘, 시크릿 같은 것들은 전부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려니 나중에 분명히 제가 20대 초반부터 30을 넘긴 지금까지 청춘을 바친 이 시험이 아쉬움과 미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한평생 한으로 남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 나라면 한 번 더 도전해도 된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내년에 다른 길로 돌아섰을 때 제 실력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고시와 공직에 결코 미련을 두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한 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방법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수험생활 내내 저를 괴롭혔던 만성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2년 연속 면과락이었던 국제경제학을 위해 경제학 기본강의를 다시 들었습니다. 합격생에게 부탁해 국제경제학 기출문제를 모두 풀고 첨삭을 받았습니다. 행정법 기본서와 서브, 강사를 바꾸어 새로 시작하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국제법의 두 대세 강사 강의를 모두 듣고 자료를 취합하여 나름대로의 서브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국제통상직렬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를 작아지게 만들었던 어학의 경쟁력을 조금이나마 키우기 위해 6개월 이상 영어강의를 듣고 첨삭을 받았고 중국어 첨삭 과외를 구해 꾸준히 첨삭을 받았습니다.


지칠 때면 2010년 겨울의 각오를 되새겼습니다. 여기서 쉬면 2차 결과를 현재의 휴식 탓으로 돌릴 것이고 그것은 평생 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2차시험을 치른 후,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항상 2차 평균 하락에 기여했던 국제경제학은 미시에서 문제가 나와 당혹스러웠고, 행정법 1문을 잘 쓰지 못했으며 국제법 3문 또한 불의타였습니다. 영어는 여전히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았고 중국어도 낯선 분야에서 문제가 나와 걱정스러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5번 2차를 보는 동안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었기에 올해도 제 이름이 없는 것이 순리고 이치인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실력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 쳐도 모르는 문제는 반드시 나올 것이며, 모르는 문제에 최선으로 대처했고, 더 이상 잘 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 고시계를 떠나도, 함께 공부하고 합격한 사람들이 공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부러움과는 별개로, 스스로에 대한 질책은 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차가 끝난 후 바로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 합격 문자를 받은 것은, 공기업을 준비하다가 휴식을 위해 본가인 대구에 내려가 있을 때였습니다. 발표날 아침부터 숨죽이고 기다렸고, 2분 정도 빨리 문자가 온 순간 아파트가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며 어머니와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 합격 소식을 알리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거시는 어머니와 함께 문자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이 문자 하나를 받기 위해 저와 가족들과 지인들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웠던 지난 8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저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꿈같았습니다.

Ⅲ. 공부방법

1. 1차시험

저는 2007년 평락, 그것도 60점과 한참 차이나는 참담한 점수로 1차를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PAST이 쉬운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논리력을 기르는 데에 좋다는 책 몇 권을 추천받아 9월 신림동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읽었습니다. 9월부터는 각 과목별로 괜찮다는 기본서 한 권씩 선택하여 2회독씩 했고, 암기해두면 좋을 것 같은 논리 법칙이나 암산 스킬을 외웠습니다. 모의고사가 시작된 겨울에는 대세 강사들의 모의고사 해설 강의를 모두 들었고, 강의를 듣지 않은 강사들의 문제도 모두 구해서 풀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PAST문제를 많이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저에게 맞는 풀이 방식을 찾았습니다. 유형에 따른 접근 방법을 다양화하려고 노력했고, 과목에 따라 방법을 달리 접근했습니다. 그렇게 모의고사 강의를 푼 후 기출문제를 풀었습니다. 모의고사와 기출문제의 오답노트를 작성했고 마지막까지 4~5번 반복해서 익히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언어논리는 보기가 아니라 지문을 먼저 읽되, 두 번 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되도록 꼼꼼히 읽었고, 이렇게 연습을 한 결과 한 번 꼼꼼하게 읽는 시간이 두 번 급하게 읽는 시간보다 덜 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언어논리의 논리나 퀴즈 문제를 흥미롭게 접근하려고 노력했고 긴 지문이 없어 시간이 덜 걸릴 것이라는 암시를 주어 안정감을 높였습니다. 자료해석은 실전에서 40번 문제까지 푼 적이 없었기 때문에 33번까지는 ‘제대로’ 푼다는 생각으로 연습했고, 푼 문제의 정답률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리고 자료해석의 특성상 사소한 계산 실수가 문제의 정답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계산을 하면서 숫자를 시험지에 적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 외에는 수험생 모두가 하는 선지 플레이 방식을 제외하고 특별한 스킬이 없었고 점수도 들쭉날쭉했습니다. 상황판단은 법 문제에 취약했고 상황판단에 나오는 퀴즈 접근 능력도 때에 따라 달라서 항상 점수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해에도 상황판단에서 거의 15문제는 풀지 못했고 점수도 그게 상응하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상황판단에 대해서는 특별히 해드릴 말이 없습니다. 저는 순전히 언어논리 덕분에 점수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도 PSAT형 인간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PSAT에 대해서는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지만, 제가 50점대 초반에서 70~80점대까지 올린 경험이 있기에 PSAT도 하면 오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지 사람에 따라 양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면 점수가 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더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기출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방법까지 이르러서야 점수가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행히 전자의 방법만으로 점수가 올랐기 때문에 2차 공부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은 많이 걸리는데 점수가 오르는 정도가 더디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2차 시험장에 들어가셨으면 합니다. 2차 시험장을 경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다음 2차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에서 확연한 차이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힘든 과정을 거쳐 점수가 올라가면 그 다음에는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점수는 안정적으로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2. 2차시험

1) 전체적인 마음가짐

6번의 2차를 치르면서 2차 시험장에 들어가는 마음가짐은 매년 비슷하면서도 달랐습니다. 늘 주어진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올해에는 합격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절박함의 정도는 10년까지와 11년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매년 성실하게 공부했고 학원에서 치른 모의고사를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고 그래서 5번 2차를 떨어지면서도 정확한 불합격 요인을 찾지 못해 단지 내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그만두려고 했으나, 평생 미련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딱 한 번만 더 하자고 결심한 순간, 정말 평생의 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써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여러분들은 저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지 않으시겠지만, 지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합격하지 못하고 그만둘 때 뒤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그래서 소중한 청춘을 공부에 쏟아야 했지만 저보다 똑똑한 분들이 훨씬 많을 테니 수험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 행정법

마지막 해 전까지도 홍정선 교수님의 책을 기본서로 했으나 계속되는 불합격 후, 너무 그 패턴에 매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해에 정하중 교수님의 책으로 바꾸고 정선균 강사님의 강의를 따라갔습니다. 2순환은 스터디를 구해 vod룸에서 함께 모의고사를 풀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고 3순환은 실강을 들었는데,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뭔가를 부탁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음에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선생님께 부탁하여 주말마다 제 답안지를 전부 개인적으로 첨삭받았습니다. 첨삭을 받고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강약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가 놓치고 있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내용의 숙지는 2순환 때에는 주요 내용을, 3순환 때에는 놓치고 있는 세부 내용을 숙지했고, 정의와 주요 판례 문구는 철저하게 암기했습니다. 4순환은 듣지 않았으나 모의고사 문제를 모두 구해서 실전처럼 답안작성을 했습니다. 과거 모든 강사 문제를 다 구해서 짧은 시간동안 문제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부는 답안을 쓰고 일부는 목차만이라도 잡던 방법을 과감히 버리고, 다른 강사 문제 하나만 구해서 모두 답안작성을 했습니다. 두 방법 모두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전자의 방법은 목차를 잡으면서 자신이 부실하게 알고 있는 내용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답안을 충실하게 쓰는 것이 저에게는 더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대한 양을 모두 건드리려고 욕심부리던 과거의 스타일을 버리고 콤팩트하게 압축된 자료의 내용만 철저하게 숙지하고 들어갔고, 그 결과 좋은 답안을 쓸 수 있었습니다.

3) 국제법

국제법은 늘 점수가 어느 정도 나오던 과목이었지만 재시 때를 제외하고는 고득점이 나오지 않았고, 암기할 내용이 굉장히 많아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과목이기도 했습니다. 김대순 교수님의 책을 기본서로 하고 정성주 강사님의 강의를 따라갔으나, 자료가 너무 많고 흐름이 조금 매끄럽지 않아 마지막 해에는 2순환은 정성주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3순환은 백승호 강사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백승호 강사님의 강의는 처음 들었는데, 국제법과 국제경제법의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을 잡아주셔서 흐름을 잡는 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승호 강사님의 자료를 기본으로 하고 그 자료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정성주 강사님의 자료로 보충하여 단권화를 했고, 단권화 과정에서 여러 번 반복된 중요한 조문의 회독 수를 늘려가며 조문을 숙지했으며, 단권화 후 자료를 반복하면서 놓친 조문들도 철저하게 숙지했습니다.

4) 국제경제학

국제경제학은 수험기간 내내 제 발목을 잡고 저를 괴롭힌 과목입니다. 처음에는 백지 상태에서부터 앎의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했던 것 같은데, 모의고사 점수나 실제 점수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바닥을 치고 그것이 몇 년간 계속되면서 국제경제학 자체에 공포를 느끼고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당연히 제가 못 풀 것이라고 생각하고 경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국제경제학을 강의하는 모든 강사의 강의를 다 들었고 책도 다 보았지만 그때뿐이었고, 김인준 저 국제경제론의 연습문제는 재시 때나 5시 때나 손도 못 댈 정도인 문제가 많았습니다. 2008년인가를 제외하고 모두 40점대 초중반의 점수를 기록하던 저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고, 결국 장수생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심리적 경제적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합격생에게 과외를 받기로 했습니다. 한 번에 기출문제 10~15개씩 8번, 국제경제학 3순환 모의고사 8회 한 번, 총 9번을 첨삭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보다 5살 정도 어린 분이었는데 굉장히 열심히 첨삭해주셨고 여러 가지 공부 팁도 가르쳐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며 다른 많은 과목들을 외면하고 하루종일 국제경제학만 쳐다보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던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습니다.

5) 영어

저는 국제통상직렬을 준비한다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영어와 제2외국어에서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미련하게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했고, 스스로의 영어실력이 너무 취약하다는 자괴감에 첨삭받는 것 자체를 의미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첨삭도 받지 않고 통번역학원을 다니며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문장암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문장암기 자체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첨삭을 전혀 받지 않은 어리석음이 시종일관 낮은 영어점수로 나타났고, 더욱 영어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지인의 충고로 뒤늦게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꾸준히 첨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5~6월 정영한 강사님의 모의고사 강의만 듣다가 마지막 해에는 안수진 강사님의 독해 작문 강의를 6개월 넘게 꾸준히 수강했습니다. 초여름까지도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아 고민을 거듭했었는데 마지막에 결국 excellent를 받고 마무리를 하게 되어 자신감을 얻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통상직을 준비하는 분들은 모두 영어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어학 실력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꿈 하나만 보고 덤벼도 꾸준한 연습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옳은 방법을 늦게 알고 시작했지만 이것은 제가 감수해야 할 몫이고, 저의 시행착오가 다른 수험생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6) 중국어
저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실력과 별개로 중국어를 재미있어했기 때문에 공부 자체는 즐겁게 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어도 공부하면 할수록 어려운 과목이었지만 공부한 만큼 점수가 나와서 중국어를 가장 자신있어했습니다. 시사중국어 책을 가지고 스터디를 했는데 책에 나오는 구문과 주요 시사 단어를 외워서 시험을 쳤습니다. 그 후에는 학원을 다니며 첨삭을 받았는데, 제2외국어 첨삭강의는 외무고시 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3~4월에 첨삭을 받고 5~6월에는 정리를 하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마지막 해에는 첨삭 과외를 구하여 마지막까지 첨삭을 받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Ⅳ. 기타 수험생활

1. 스케줄 관리

1차시험을 기준으로 그 전 반년은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독서실에 앉아있었고, 일요일은 책을 보지 않고 쉬었습니다. 1차시험을 친 후에는 8시부터 12시까지 앉아있었고, 일요일 오후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서 10분 정도 산책을 했고, 낮잠은 점심 먹고 한 번 30분 정도 잤습니다. 운동은 일주일에 3일 정도 했는데 운동하는 날에는 11시에 독서실에서 일어났고, 나중에 시간이 부족할 때에는 집에서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휴식을 취할 때에는 만화책을 빌려 보거나 TV로 축구나 야구를 시청했습니다. 가끔 야구장에 가서 응원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있었습니다. 평일에 이러한 것들의 유혹이 들 때에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며 공부를 했고 무사히 하루를 넘기며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몸이 아파서 쉴 때가 있었는데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쉬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는 경우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것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 마인드 컨트롤

오랜 기간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점점 형편없어지는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과 늦게 들어온 후배들이 하나둘 합격하는 것,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 취직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것, 저 때문에 병까지 얻으신 부모님께 꼬박꼬박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소모적인 생활을 하는 것, 공부 기간이 늘어나도 좁혀지지 않는 합격 컷과의 차이, 보잘것없는 현재의 저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미래. 이 모든 것이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자격지심으로 가득차서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제가 지키고 싶었던 삶의 자세나 신념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고 저는 더욱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지만 마음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저를 질책하는 만큼 타인은 저를 질책하지 않으며 오히려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힘들어하는 저를 보며 눈물을 흘리셨을 부모님께서 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공부를 마치고 되고 싶던 좋은 공직자로서의 가치와 신념을 지금의 고통 때문에 놓아버린다면 이렇게 힘들어하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에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힘겹게 추스른 마음이 낮은 모의고사 점수 한 번에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수험기간동안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마인드 컨트롤인 것 같습니다. 미래에 원하는 대로의 사무관이 된 스스로를 그리며 사소하나마 좋은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Ⅴ. 나가며

수험기간이 유난히 길어지게 된 이유를 말하고자 하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들은 저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제들이기에, 제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합격한 것이 제 그릇의 크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보면 좌절과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좀 더 성숙하여 미래를 볼 때 과거를 생각하고 큰 것을 그리면서도 주변을 돌아보는 공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한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수험기간이 길어 감사할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기나긴 기간 동안 나와 함께 싸우신, 한없이 죄송하고 한없이 감사한 부모님, 못난 누나 챙기느라 고생하는 동생, 타향 서울에서 가장 든든한 가족이었던 사촌언니에게 감사드립니다. 8년간 변함없이 나를 격려해준 친구들, 남주와 목윤이를 비롯한 연세대학교 만화사랑 동기들(문수, 왕수, 태수, 민우, 동걸, 강훈, 주현, 용호, 승현, 지현, 성환, 영도, 인이), 고마운 고등학교 친구들(미영이, 정옥이, 유미, 영주, 은미, 유진이, 미영이, 은정이, 문희, 덕우), 저와 함께 신림동에서 고생했고, 마지막 시험을 적극적으로 권해준 영림이, 상호, 고시반 오빠 동생들, 중국어 스터디 선생님과 동생들(선화쌤, 수경쌤, 아라, 지혜, 인선이), 한 달간 함께하면서 부족한 저를 많이 도와준 면접스터디원들(한빛, 희경이, 명재, 현주, 경미, 예원이)과 통상직 2차 합격생들, 정 많은 승은이, 민선이, 이재, 정태선배, 정준오빠, 수연언니, 인선이, 제 국제경제학 점수에 지대한 공을 세운 연수원 동기 낙현씨, 저에게 많은 충고와 격려, 지지를 해준, 2012년에는 성공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경남이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와 부모님이 함께 원망하고 사죄하고 간구했던 야훼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미련하고 답답하고 순발력도 없는 저도 이렇게 합격합니다. 스스로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시고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합격소식 부분에서 내가 다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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