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수천년간 이어지던 '정숙한 여성상'과 복식사,
나아가 미의 기준까지 통째로 뒤집어엎은
역사상 가장 유쾌하고도 파급력이 엄청났던 ‘일상 혁명’이 바로
19세기 말,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이나 미국을 중심으로
사회현상 수준의 광풍으로 불어닥쳤던
1890년대의 자전거 열풍(Bicycle Craze)이었음



물론 1890년대 이전에도 자전거는 있었지만, 아직 '안전 자전거'가 개발되기 전이라
치마 입은 여자들은 근처에도 못 갔고, 돈 많고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들의 익스트림 스포츠에 불과했음.
그러다 뒷바퀴에 체인을 연결한 현대식 '안전 자전거'가 등장하고
치마를 입은 여성도 다리를 높이 들지 않고 쉽게 올라탈 수 있도록 프레임이 개량되었으며
당시 산업혁명에 따른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이런 '안전 자전거'들이 저렴한 가격에 뿌려지기 시작하면서
교사, 타이피스트, 백화점 점원, 방직공장 여공들까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내 소유의 탈것’을 장만할 수 있게 됨.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자유로운 발'이 생겨나자
이 자전거는 그동안 여자들을 얽어맸던 온갖 사회적 관습과 금기들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박살내기 시작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혼자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
또한 당시 젊은 여성이 남성과 단둘이 응접실에 있거나 산책을 하는 건
곧바로 가문의 불명예이자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간주됐기 때문에,
보통 어머니나 미혼 이모같은 중년 여성 보호자인 샤프롱(Chaperone)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야 했음.


이런 느낌....
하지만 자전거 열풍으로 젊은 여성들이 너도나도 자전거를 소유하게 되자
이 감시 체계는 아주 어이없고도 명쾌한 이유로 붕괴했는데
샤프롱이 자전거 속도를 물리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페달을 밟으면 시속 15~20km로 쌩쌩 달렸고
일단 동네 어귀만 벗어나면 부모도, 이웃의 감시 눈길도 없는 완벽한 해방구였기 때문에
남녀가 나란히 페달을 밟으며 10~20km 떨어진 숲속이나 교외 찻집으로 소풍을 떠났고,
이는 자유연애의 폭발로 이어지게 됨

실제로 영국의 인구통계 기록을 보면 1890년대 자전거 붐 이후
다른 마을출신의 남녀가 연애하고 결혼하는 비율(통혼권의 지리적 반경)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
당시 의사들도 야외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운동 자체는 권장했기 때문에,
부모들도 “친구들과 교외로 라이딩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막기 어려웠다고 함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유연애를 즐기는 풍조가 대유행하자
당시 가부장제 사회와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막으려고
온갖 유사과학과 공포 마케팅을 동원했는데 지금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음.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이런 못생긴 얼굴이 된다는 악성 프레임이었던
일명 자전거 얼굴(Bicycle Face)
당시 의학계와 언론이 유포한 대표적 괴담이 바로 ‘자전거 얼굴(Bicycle Face)’이었는데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눈이 튀어나오고 턱이 꽉 다물어지며 주름이 영구적으로 박혀서
평생 시집을 못 가는 추녀가 된다는 해괴한 논리였음
또한 페달을 밟는 하체 운동이 골반과 자궁에 무리를 주어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다고 협박한다거나,
자전거 안장이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성적 순결’을 잃게 만든다며
안장 각도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진지하게 신문 사설에 실리던 사회분위기였다고 함(...)
하지만 실제로 자전거를 타본 여성들은 창백하던 안색이 발그레해지고,
소화불량과 만성 두통, 우울증(당시 여성을 집 안에 가둬놓고 병 주고 약 주듯 진단하던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이 씻은 듯이
나아서 없어지는걸 여성들 스스로가 체감했음.

자전거가 가져온 가장 시각적인 충격은 여성 복식의 대격변이었음
빅토리아 시대 여성 복장을 보면 고래수염과 강철 살로 만든 코르셋으로 허리를 18~20인치까지 졸라매고
그 위에 버슬(엉덩이 패드)과 대여섯 겹의 속치마(페티코트), 바닥을 쓸고 다니는 무거운 겉치마까지 합치면
옷 무게만 5~10kg에 달했다고 함.
이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자전거가 사회현상 수준으로 여성들에게 대유행이 되면서
수백년간 여성들을 옭아매왔던 복식에도 '합리적 복장 운동(Rational Dress Movement)'이 불어
남성용 와이셔츠 디자인을 여성용으로 개량한 블라우스에
발목이 보이는 A라인 스커트, 그리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납작한 밀짚모자인 보터햇(Boater hat) 조합이
19세기 말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 복식으로 유행하고 자리잡게 됨

세탁하기 쉽고 팔을 움직이기 편해서 타이피스트나 여교사들이 출퇴근할 때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었음.
이 자전거 복장은 오늘날 여성 투피스 정장(블라우스+스커트/슬랙스)의
직계 조상으로서 오늘까지 이어지게 됨


자전거가 바꾼 이 모든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하나로 응축해
당대 최고의 문화 아이콘으로 빚어낸 것이
바로 미국의 삽화가 찰스 데이나 깁슨(Charles Dana Gibson)이 창조한
‘깁슨 걸(Gibson Girl)’ 신드롬임
그동안 서구 사회가 찬양하던 이상적인 미인상은
‘창백하고 가냘프며 남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수동적인 요조숙녀’였음.
하지만 1890년대에 등장한 깁슨 걸은 키가 크고 건강미가 넘치며,
움직이기 편한 활동적인 스커트를 입고,
두 다리를 움직여 당시 서양에서 금기시되던 여성의 발목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달렸음



깁슨 걸들은 자전거를 타고 교외를 질주하고 골프와 테니스를 치며,
대학 교육을 받고 도시의 고층빌딩으로 출근하며 남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음.

이런 깁슨걸들은 주로 타이피스트나 전화교환원, 또는 교사와 같은 자신만의 직업이 있었기에
응접실에서 수를 놓으며 남자의 청혼을 기다리는 기존 요조숙녀상과는 새로운 신인류였다고 할 수 있음
일러스트 속에서 깁슨 걸은 남성들보다 키가 크거나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키 작은 남성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주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음
백화점마다 깁슨 걸 블라우스, 깁슨 걸 자전거 복장, 깁슨 걸 모자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수많은 1020 여성들이 깁슨 걸을 롤모델 삼아 거리낌 없이 거리와 직장으로 쏟아져 나왔음.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이 가장 매력적이고 세련된 현대 미인’이라는 인식이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앞둔 서구권의 대중문화 속에 각인되었다고 할 수 있음

수전 B. 앤서니가 1896년 인터뷰에서
“자전거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여성을 해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라고 극찬한 건
결코 비유나 과장이 아니었음.
여성에게 ‘스스로 페달을 밟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물리적 이동권’이 주어지자,
가부장제의 빗장이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렸기 때문.
이후 자전거로 거리의 자유를 맛본 바로 이 세대의 젊은 여성들은
새롭게 맞이하는 새 시대인 20세기의 극초반
즉, 1900~1910년대에
한창 미국과 영국 사회를 들불처럼 휩쓸었던
여성참정권 운동의 핵심 주력군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됨.

서구권에서는 여성 권리나 여성운동 역사를 다룰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꼭 항상 언급되는게 '자전거'일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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