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귀비 엄씨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생모
20세기까지도 살아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명성황후와 달리 사진도 많이 남겼던 편
원래 명성황후 처소에서 일했다가 고종의 승은을 입음
이를 알게된 명성황후가 격노해서 그녀를 궁에서 내쫓아버림
그 후 명성황후가 일본에 시해당한 뒤에야
엄상궁은 다시 궁으로 돌아올 수 있게되고
그 후 고종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여인이 됨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때에도
엄상궁은 일본의 눈을 속이며 고종을 성공적으로 빼돌리는 공을 세웠는데
늘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던 고종은
똑똑하고 대담한 깡을 가진 엄상궁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함
솔직히 누가봐도 막 엄청 미모가 뛰어나거나 이런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명성황후 사후에 본인이 그 다음 차례가 될까봐 벌벌 떨던 고종에게
똑똑하고 담대하고 강인한 엄상궁의 모습이
고종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음...

일개 상궁이었던 그녀는 순귀인 - 순빈 - 순비 - 순귀비 - 황귀비까지 출세가도를 달리고
말이 후궁이지 사실상 내명부를 통솔하며 중전이나 다름없는 권세를 누렸다고 함
특히 황태자를 낳은 뒤로는 아들을 어떻게든 황제로 만들어보려고
심지어 일제와 손을 잡기까지 하는 기회주의적 행보마저 보이지만
결국 일제가 아들(영친왕)을 일본으로 인질로 데려가셔
모자 사이를 생이별시키며 그 한에 사무쳐 고통스럽게 죽음
엄귀비의 집안은 원래 평민 집안이었으나
딸이 큰 총애를 받으며 내명부를 주관하는 황귀비가 된 덕분에
일약 권세가가 되어 온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됨
특히 엄귀비와 그녀의 집안은 여성교육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똑똑하고 총명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배우지 못했던 한이 많았던것으로 보임
숙명여고, 진명여고 등 여자들을 위한 근대적인 교육기관과 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사비와 집안 재산을 털어 이화학당을 후원하기도 했음
숙명여대 앞에 그녀의 이름을 딴 도로(순헌황귀비길)도 있을 정도라고...


귀인 양씨
덕혜옹주의 생모
원래 세수간에서 일하던 나인이었다고 함
그러다 고종이 덕수궁에 유폐되었을때 고종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조선의 마지막 왕녀인 덕혜옹주를 낳아 귀인에 봉해짐
다만 이 모녀는 정식후궁과 옹주로 인정받지는 못했기때문에
양귀인은 '복녕당'으로 불리고
덕혜옹주도 '복녕당 애기씨'로 불렸다고 함
양귀인도 엄귀비처럼 평범한 평민 집안이었으나
고종이 덕혜옹주를 너무 이뻐하고 총애했기 때문에
그녀의 친정은 불같이 가세가 일어나고 정육점을 하던 오빠는 관복을 입고 조정에 출입하게 됨
(다만 양귀인이 승은을 입고 옹주를 낳은건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라
대한제국 시절의 엄귀비만큼의 권세를 누리지는 못한듯....)

하지만 곧 고종이 승하하면서 모녀만이 남겨지게 되고
그녀의 유일한 딸 덕혜옹주도 일본으로 보내져 생이별을 당하게 됨
그녀는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다 암으로 사망
딸이 일본으로 떠난 후 1926년 조선으로 잠시 왔을때 단 한번 만난것이
곧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