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집을 샀을 때
오랜 친구 한 명이 최근에 집을 샀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기도 비슷했고, 직장생활의 애환도 함께 나눴다. 집값 이야기, 전세 이야기, 대출 이야기 역시 수없이 해왔다.
그런 친구가 얼마 전 30평형대 아파트를 매수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오랜 기간 모은 종잣돈에 대출까지 더해 어렵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그런데 집을 사고 난 뒤부터 친구들의 반응이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지금 집을 사는 게 맞아?"
"괜히 무리한 것 아니야?"
"앞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물론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서운함을 느꼈다고 했다.
축하를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컸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비슷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믿고 싶어 한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란다.
집을 산 사람은 집을 산 결정이 옳았기를 바라고,
집을 사지 않은 사람 역시 사지 않은 결정이 옳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마음은 복잡해진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이면 더욱 그렇다.
상대방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의 선택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의 선택도 함께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축하보다 불편함이 먼저 나타난다.
어쩌면 매우 인간적인 감정이다.
노동소득과 자산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번다.
시간을 쓰고, 능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소득을 얻는다.
문제는 노동소득만으로는 시간이 멈추는 순간 소득도 멈춘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근로소득의 일부를 자산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부동산일 수도 있고,
주식일 수도 있고,
사업일 수도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현재의 소득을 미래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의 선택권을 늘리기 위해서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는 커진다
젊을 때는 자산의 중요성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체력도 있고,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예전만큼 일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생활비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얼마나 많이 버는가보다
얼마나 안정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결국 자산을 만든다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한 욕심이라기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과정에 가깝다.
주변 사람의 성장을 바라보는 태도
친구가 좋은 집을 샀다고 해서 나의 삶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승진했다고 해서 내 기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비교를 한다.
그리고 비교는 종종 부러움을 넘어 불편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어떤 사람은 시선을 자신에게 돌린다.
밖으로 향한 시선은 불만을 만들고,
안으로 향한 시선은 성장을 만든다.
나는 후자가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의 성공을 불편하게 바라보기보다,
나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계기로 삼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집을 샀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집이 없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소득을 자산으로 바꾸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친구의 집 구매 소식을 들으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단순히 집 한 채를 샀기 때문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성장을 시기하기보다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왕이면 서로의 발목을 잡는 관계보다,
서로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관계가 많아졌으면 한다.
인생은 결국 비교의 결과가 아니라 축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