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일본의 이웃으로,
오랫동안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다.”
일본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미국에 이 말을 전하며 중재를 제안했다.
1867년 5월 10일.
막부의 대신 두 사람이 그의 뜻을 담아
주일 미국 공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 해 전 평양에서는 제너럴셔먼호가 불탔고,
승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군도 강화도를 침공했다가 물러났다.
요시노부는 조선에 사절을 보내
화해를 권하겠다고 했다.
조선이 잘못을 돌아보고 화평을 청하면,
미국도 보복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 공사는 본국에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친선 사절을 보낸다는 소식은
조선을 침공한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홍콩의 한 일본인이 신문에 퍼뜨린 날조였다.
청을 통해 이를 전해 들은 조선은
해명을 요구하며 사절을 거부했다.
중재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해 요시노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주었다.
서한은 이타쿠라 가쓰키요·오가사와라 나가미치 명의로 남아 있다. 요시노부의 바람과 달리 4년 뒤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그때는 이미 막부가 무너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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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도막파와의 보신전쟁에서 싸울만한 여력이 있었음에도 싸우지도 않고 도망친 겁쟁이 vs 현실을 받아들여 불필요한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정권을 넘겨줬다 복합적 평가를 받는 인물
다이쇼 시대에는 전자의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현대에는 후자로, 근대의 군주가 아닌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군주로 꽤 재평가를 받음
한마디로 권력보다는 정치적 처신과 생존을 우선시한 인물로, 메이지 유신에서 요시노부를 죽이려 한 유신삼걸은 비참하게 요절했지만 본인은 유유자적 생을 살다 오래오래 장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