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한국인 호주 이민자는 존 코리아다. 그는 1876년 중국 상하이와 호주를 오가며 차를 나르던 무역선 로키엘호(Lochiel)를 타고 호주에 도착 했다.
일단 존 코리아라는 이름 발견 당시 조선출신이라는 증거가 처음엔 없어서 이탈리아 꼬레아인지 조선인지 밝히는게 중요했는데 아래의 귀화 자료가 발견 되면서 조선 출신임이 밝혀 졌다.
한국 이름은 알수 없지만 1894년 그의 귀화 자료에 따르면 존 코리아(John Corea)라는 이름을 썼으며 NSW주 골골(Gol Gol)이란 지역에서 양털깎이로 일을 했던 것으로 기록된다. 당시 그는 35세의 ‘코리아 출신자 (native of Corea)’로 명시돼 있다.

그는 양털깍이 외에 1879년과 1895년에 광산업을 하기 위해 광선권을 신청했으나, 1895년에 WA주 광산권 신청은 NSW주 귀화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하지만 결국 NSW주로 돌아가 1903년에 광산권을 획득한다.
뜬금 없이 그의 이름을 지역 신문 기사에서 찾을수 있었다. 기사 제목은 “미스테리 수표 분실 사건”.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관람 하던중 150 파운드에 달하는 수표를 잃어버렸다는 내용이다.
존 코리아는 말년에 결핵에 걸렸고 애들레이드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있다. 병원 기록엔 출생지가 Japan으로 나온다. 당시 한국은 일제 치하에 주권을 잃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는 1924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그의 장례식은 이웃주민이거나 동료로 예측되는 이블린과 리처드 로버트슨 부부에 의해 치러졌다. 이블린은 1924년 8월 6일 지역 신문에 존 코리아의 장례식을 위한 광고를 냈다. 그는 밀두라에 있는 니콜스 포인트 묘지에 묻혔다.
그가 사망한 후 남긴 재산은 니켈 시계와 전쟁 채권을 포함한 425 파운드 (현재 시가 호주달러로 대략 3만8천불 가량)의 저축이 전부였으며 안타깝게도 그의 사진은 발견 되지 않았다.
호주 최초의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존 코리아를 기억하며, 그가 편히 잠들어 계시길 기원한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자마자 나가셨나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