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적맛 쿠키>
욕심쟁이 쿠키들이여, 긴장하라! 짙은 눈썹에 패랭이갓 눌러 쓴 쿠키가 담장을 넘고 있으니까! 올바른 유기농 농법으로 지은 햅쌀을 넣어,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의적맛 쿠키. 스스로 뛰어난 도술을 터득해서 탐관오리가 있다는 말만 들으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구름 타고 바람 타고 거침없이 찾아가 곳간을 턴다고 한다. 군졸들이 잡아 가둬도 눈 깜빡할 새 볏짚 인형으로 변해버리고 진짜는 이미 도망친 지 오래! 훔친 젤리는 공평하게 나눠주니, 가는 마을마다 환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매작과맛 쿠키>
약과마을에서 태평하기로는 제일인 이 쿠키는, 추수하는 시기에도 평상에서 뒹굴다 저잣거리나 돌아다닌다. 가판대에 먹음직스러운 젤리가 있으면 일단 먹고 보고, 피곤하면 길 한가운데라도 드러누워 버린다고. 일 좀 하라고 잔소리 하던 마을 쿠키도 매작과맛 쿠키가 부채 척 펼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반짝이니 타고난 재주꾼이다. 매작과맛 쿠키가 어깨춤 추면서 노래 한 곡조 뽑으니 따라나서는 쿠키들이 긴 행렬을 이루어 한바탕 축제가 벌어지는구나! 얼씨구나, 좋다!


<김맛 쿠키>
백귀의 주인도 벌벌 떨게 만든다는 퇴마술사 김맛 쿠키. 오곡마을을 휩쓸었던 못된 먹보 도깨비와 어둠 속에서 덩치를 불린다는 그슨대를 퇴치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쿠키는 양기가 제일 강하다는 한낮에 해초를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구워 반죽에 올리느라 영력이 높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굽고 말리는 과정이 길고 느긋해서였을까. 요괴가 달려들어도 하품을 하며 딴청을 부리기 일쑤! 걸핏하면 싸우기 귀찮다며 털썩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는데…!


<옥춘맛 쿠키>
갓 수확한 햅쌀 가루에 알록달록 시럽을 넣어 동글납작하게 꼬았더니 고운 댕기머리를 갖게 되었다는 옥춘맛 쿠키. 대대로 총명한 관리를 배출해 온 옥춘 가문에서도 가장 영민하다고 한다. 반죽 안을 채운 단단한 엿 때문일까,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줄 아는 소신과 쉽게 부서지지 않는 강단을 갖고 관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도맡고 있다.


<유과맛 쿠키>
무도한 무리가 활개치면 슬그머니 일어나 옷섶에 숨겨두었던 호패를 꺼내든다는 유과맛 쿠키. 뽀얗고 고운 찹쌀가루로 만들어진 이 쿠키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일까? 태생과는 달리 누구보다 백성의 고충을 잘 이해한다고 한다. 부드럽게 쪄낸 반죽을 거친 바람에 말리기를 여러 날! 뜨거운 기름물에도 퐁당 담그고, 달콤한 조청옷을 입혀 고소한 쌀고물에도 한바탕 굴리니 커진 부피만큼 정의감도 날로 커졌다는 암행어사 쿠키. 오직 임금님께 신뢰받는 어사만이 가진다는 호패를 꺼내 들면 호랑이도 부릴 재주를 얻는다는데...


<방울엿맛 쿠키>
저잣거리에 엿가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온 동네 쿠키와 떠도는 소문들이 한자리에! 아랫마을 쑥떡맛 쿠키네 집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다는 방울엿맛 쿠키는 제 몸보다 커다란 봇짐에서 엿을 꺼내 잘라준다고 한다. 소박하고 친근한 미소로 건넨 먹음직스러운 엿 하나를 받으면 어느새 딱 달라붙어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고. 덕분에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고, 듣지 못할 이야기가 없다는 쿠키. 그러나 숨겨진 진짜 정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암행어사 쿠키를 보필하는 든든한 정보원이라는 사실!

<파김치맛 쿠키>
하늘만 바라보며 쑥쑥 자라던 쪽파가 있었다. 분명 모시는 분 만날 날을 그리며 파릇파릇했는데, 정작 하늘의 부름으로 수행을 다녀온 뒤로는 폭삭 익어버렸다는 파김치맛 쿠키. 마늘이며 고춧가루, 멸치 액젓까지... 얼마나 진한 양념을 묻히고 쭉 익히는 수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난 신기를 갖게 된 것은 확실하다. 기운이 빠져 핼쑥한 얼굴을 보면 지나가던 잡귀한테도 꼼짝없이 당할 것 같은데… 손에 쥔날 선 칼이 번뜩이는 순간, 누구보다 매콤한 굿판을 펼치는 쿠키!


<백김치맛 쿠키>
맑고 담백한 맛이 깃든 승무로 영혼을 달래주는 백김치맛 쿠키. 햇살 듬뿍 머금은 배추를 천일염으로 절였다가 씻어내는 긴 수행을 반복하더니, 티끌 하나 없는 정순한 신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개운하고 서늘한 국물이 메마른 속을 풀어준 덕분일까? 쿠키가 굿판에 들어서면 구천을 또돌며 뒤엉켜 있던 원망과 슬픔도 절로 잦아든다는데… 그저 내쫓기 위한 굿은 이제 그만! 차곡차곡 눌러 담은 김칫독 속 묵은 한이 톡톡 발효되듯, 길 잃은 넋들이 못다 한 미련을 풀어놓을 때마다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는 쿠키.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장삼 잎사귀가 나비처럼 흩날릴 제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잔잔히 허물어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