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안 원년(196년)에 원술은 기령에게 보병과 기병을 합쳐 3만 명의 군대를 주어 당시 소패성에 주둔해 있던 유비를 쳤다. 이때 유비는 여포에게 도움을 청했고, 여포는 이에 보병 1천 명과 기병 2백 명을 이끌고 가서 기령과 유비 사이를 중재했다. 이때 기령을 말리면서 여포는 군영의 입구를 지키는 무관더러 극을 세우게 시킨 뒤 활을 쏘아 극의 옆에 달린 날(小支)를 맞추는 묘기를 선보였다. 일종의 무력 시위였던 셈이다.

원문사극
활을 쏘아 방천화극의 날끝을 맞추는 묘기를 보여줌
여포는 기병대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명궁으로도 유명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