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니트 칸토로비치.
그는 단순히 대학에서 글자만 파던 학자가 아니라, 세계사의 주요 국면에서 이름을 비친 명사기도 하다.
그의 연구 결과가 조국을 구하는 데 크게 일조했기 때문이다.
1941년의 일이다.

나치 독일은 1941년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무장 침공을 감행한다.
양측 병력을 합치면 대략 5천만을 넘게 되는, 역사상 최대의 전역이 개막한 것이다.

나치 독일의 목표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군대를 3개의 사령부로 나눠서 각각 남부집단군, 중부집단군, 북부집단군으로 편성하였다.
남부는 돈강의 요지이자 수운 허브, 주요 공업지대에 이름에서 오는 상징성이 있는 '스탈린그라드'로.
중부는 당연히 소련의 수도이자, 시베리아에서 서부러시아로 이어지는 최대의 철도 허브인 '모스크바'로.
북부는 옛 제국 시절의 수도이자, 소련 발트함대의 모항, 주요 공업지대이자 혁명의 발상지였던 '레닌그라드'로.

전쟁 초기, 나치 독일 북부집단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레닌그라드에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도달'에만 성공했다.
왜냐고? 소련이 이 거대한 도시에 군인 수십만 명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오만 수단을 동원한 독일은 겨우겨우 레닌그라드를 포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이 도시를 함락시킬 상황은 안 보였다.
하지만 독일군 사령부의 답은 간단했다.

(빌헬름 리터 폰 레프 나치 독일 북부집단군 사령관)
그 도시에 아무리 군인 수십만 명을 둬봐야 한 1년간 계속 포위하면 배고파서 두손 들게 돼 있다.
니들이 도시에서 밀을 재배할래? 소를 키울래?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족치는데는 별 문제없거든?
소련 지도부도 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오시프 스탈린)
아 시발 ㅈ됨.
어떻게 물자 보급만 계속 된다면 나치 새끼들 족치는데 참 도움이 될 텐데.
좋은 방법 없나?

있다니까? 보급 된다고

??? 진짜 전쟁 중인데 경제학자가 나대고 있네

포위는 시발 ㅋㅋ
뜷려있는 곳이 많구만...

육지는 다 막혔지만 요 옆에 호수가 있네

거긴 호수인데? 그리고 큰 배도 별로 없는데?
통통배로 수십만 명을 먹여살릴 물자를 옮기라고?
독일군 견제를 피해서?

ㄴㄴ
트럭으로 물자 옮기면 되지
여기는 '호수'고 호수는 민물이지? 민물은 얼지?
그리고 여기는 존나 추운 북쪽이잖아
호수의 일부분은 얼었을 테니 거기로 트럭이 다니면 되지 않냐?

당연히 말이 쉽지 이건 수학을 동원한 서커스에 가까웠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먼저 얼음은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
그런데 날씨에 따라 언 곳이 녹기도 하고, 얇은 얼음이 두꺼워지기도 하므로
얼음의 두께에 따라 길은 실시간 수정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트럭 수십 대가 자살쇼를 펼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트럭이 너무 자주 다녀도 안된다.
트럭의 무게와 진동으로 정확히 계산된 간격과 수의 수송대가 정확히 알맞은 루트를 통해 계획대로만 움직여야 한다.

이 모든 길은 나치 독일 공군의 폭격을 피해서 정밀하게, 심지어 때로 야간에 움직여야 한다.
당연히 밤에 라이트를 끄고 대형을 맞춰서 운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폭격 맞아서 얼음 터지면 ㅈ됨.
중간에 어떤 물자가 남는다고 쌓아둘 수도, 부족하다고 중간에 돌아갈 수도 없으므로
각 수송대는 정확하게 '최적화된' 물건 종류와 수량을 날라야 한다.

호수의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수송대는 수시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비가 내려 미끄럽든 우박이 내리든 간격은 일정해야 하며 속도 또한 유지되어야 한다.
게다가 '호수'이므로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길을 잃는다면 그때부터는 트럭 아래의 얼음이 깨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계산은 경제학자와 수학자들이 직접 짱구를 굴려서 해야 한다.
그야 아직 소련에는 컴퓨터란 게 없었거든...

이 수많은 역경과 고초를 겪어 완성된 것이 바로 '생명의 길(Дорога жизни)'.
이 길을 통해 거대한 수량의 물자가 필사의 항전을 벌이는 레닌그라드로 유입되며 소련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식량 27만 톤, 군수품 3만2천 톤, 연료 3만7천 톤...
또한 5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을 피해 대피할 수 있었다.
소련 전역에서 긁어모은 수천 대의 트럭이 끊임없이 호수를 누비기 시작했고
1,000km가 넘는 도로에는 끊임없이 눈이 쌓였으므로 반복적인 제설이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것은 칸토로비치와 동료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레오니드 칸토로비치.
유일한 공산권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선형 계획법과 자원 배분 최적화의 거장.
그의 업적은 쉽게 말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빠르게, 값싸게 물자를 운반-수송-배송하여 경제를 운용할지에 대한 것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던 공산주의 사회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그의 업적은 너무나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깡촌에 있는 삼각김밥 공장에서 어떻게 무묭이의 집앞 편의점으로 매일 맛있는 삼각김밥이 수송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바로 이러한 학자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소련의 해체와 공산주의 경제학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그의 노력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