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지만 정확하다.
하멜은 조선의 인구가 매우 많다고 느꼈다.
남자는 이미 아이를 몇 낳은 아내라도 내보내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취할 수 있다.
처첩을 몇이라도 거느릴 수 있으며 그래도 남에게 흠 잡히지 않는다.
자기 여인을 여종보다 별로 나을 게 없이 취급한다.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아내를 내보낼 수 있으며 남자가 아이를 원치 않으면 쫓겨난 여자는 그 애들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
https://www.mk.co.kr/news/culture/7428787
하멜의 눈에 비친 조선 여인은 ‘사실상 노비와 비슷’하였으며, ‘조그만 잘못이나 사소한 구실로 내쫓김을 당하는’ 존재였다.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30_0060_0020_0020
하멜은 “부모의 장례식이 끝나면 아들들이 유산을 나누어 가지는데, 특히 맏아들이 집과 집에 딸린 모든 것을 물려받아 차지하게 되고, 토지나 물건 등 다른 재산은 다른 아들들과 나누어 가진” 반면, 딸들은 “유산을 분배하라는 유언이 없으면 자신들의 옷가지만 가져갈 수 있었다.”라고 서술하였다.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30_0060_0020_0020
초기 내한 선교사였던 게일(James S. Gale)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소개하고 있다. 게일은 몇몇 일행과 함께 시가지 돌담 옆을 걷다가 돌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는 마치 땅이 꺼져 버릴 듯이 처절하게 통곡하고 있었다. 이에 게일은 그에게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 사연인즉 아내가 자기를 두고 떠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 중의 한 여자가 “그렇게 슬피 우는 것을 보니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을까!”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정색을 하고“그 여자를 사랑한다구요? 나는 결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가 내 옷을 짓고 내 음식을 만들었지요. 이제 나는 어떻게 살지. … 어이구 어이구” 하면서 더 크고 처절하게 울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외국인들의 눈에 조선의 여성들은 남성의 편의물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53361
이사벨라 비숍

“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냄새 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어떤 빨래감은 실을 뽑아 다시 꿰매야 하며, 또 어떤 빨래감은 부뚜막에서 적어도 세 번은 삶아야 한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나무판(빨래판)에 억척스럽게 문지르거나, 판판한 돌 위에 놓고 무거운 방망이로 힘겹게 두드려야 한다. (중략) 빨래가 다 마르고 난 뒤에는 다시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둥근 나무방망이로 두꺼운 공단(새틴)처럼 광택이 날 때까지 한없이 두드린다.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 "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여러 선교사는 조선 여성들이 온종일 남편과 가족의 옷을 만들고, 무거운 빨래를 하며, 밤새 다듬이질을 하는 등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고 기록
고종의 어진을 그린 영국의 화가이자 여행가인 아놀드 새비지-랜더
“조선에서 여성은 노예와 같다.
그는 쾌락과 노역을 위해 이용된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신의 어떠한 견해도 표명할 수 없으며, 자신의 남편 외에 다른 남성을 쳐다볼 수도 없다.”
또한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느질, 빨래 등 고된 일과 잡일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노예처럼 비하되고 남성에게 충절(忠節)을 바치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30_0070_0030_0050&whereSt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