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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역사를 피고인석에 세운 영국의 한 히틀러사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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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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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2026년…

무수한 가짜뉴스와 가짜가짜뉴스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가끔 지 혼자 지어낸 얘기를 하는 AI들

계속 관심 있는 정보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탈권위를 넘어선 반지성주의 등등 수많은 요소가 환장의 시너지를 일으켜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협상 대상이 되어버린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대 음모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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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우려한 바 있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건 진짜냐고? 사진이 있는데 진짜겠지 그럼

 

 

이런 음모론이 건전한 토론과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현대 문명은 주장하는 쪽이 증명의 책임을 진다는 국룰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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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가 이런 사진을 가져오며

투명한 분홍색 유니콘의 존재를 주장한다고 했을 때, 내가

이 신비로운 동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가져와!

사하라 사막은 찾아봤어? 마리아나 해구는? 달 뒷면이나 태양 흑점은?

우리 집 책상 서랍은 뒤져봤어? 아니지? 그럼 없다는 증거를 못가져온거네?

없다는 증거가 없으니, 따라서 투명 유니콘은 있다!

이딴식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투명한 분홍색 유니콘의 존재를 주장하는 건 나이기 때문에,

내가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그런 유니콘은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요즘 들어 이게 참 안 지켜지는 것 같기는 한데,

하여튼 일반적인 국룰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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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음모론에 맞서 상식이 증명의 책임을 지게 됐던 사건이 있으니,

단순한 명예훼손 분쟁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존재론적 사투로 번진,

2000년 1월에 있었던 데이비드 어빙 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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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다지 말이 잘 통할 것 같지 않게 생긴 남자가 데이비드 어빙이다.

1938년 영국 에식스 태생으로, 2차 대전을 직빵으로 맞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독일에 굉장히 우호적이었으며,

학생 시절부터 히틀러를 칭송하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런 양반이 1960년에 갑자기 독일로 건너가 살더니,

1963년에 <드레스덴의 파괴The Destruction of Dresden>이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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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은 2차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가장 파괴적이었던 폭격을 맞고

일반적으로 2만여 명, 어빙의 주장(나치 측 주장을 그대로 따온)으로는 20만여 명의 희생자와 함께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으며,

민간인 거주지를 폭격한 것 때문에 승전국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독일의 가해자 이미지가 강했던 1960년대에

독일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을 서술한 이 책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이후로도 독일군 평전, 나치 고관의 전기 등 독일에 관한 책을 계속 썼고,

어빙은 비록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였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역사… 스토리?텔러?로서 승승장구했다.

‘남들이 쉬쉬하는 역사적 진실을 용감하게 말하는 나’에 취해 뇌절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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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어빙은 문제작 <히틀러의 전쟁Hitler’s War>에서

홀로코스트는 하인리히 힘러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고,

히틀러는 적어도 1943년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오히려 사실을 알게 되자 유대인 학살을 막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폭탄 같은 주장의 근거로 어빙은

히틀러가 직접 서명한 유대인 학살 지시 문서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나치 독일 같은 독재국가에서 독재자의 눈을 피해 국가적 규모의 학살을 하기 힘들다거나,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숨기기 위해 국가 주도로 병사들의 편지를 검열했다거나, 패전을 앞두고 마지막 학살과 증거 인멸 작전에 친위대가 투입되었다는 것 같은,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지시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정황 증거들은

어빙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말을 부정할 증거가 없으니 내 말이 맞다는 논리를 내세워

투명한 분홍색 히틀러를 창조해내고야 만 것이다.

이미 충분히 충격적인 주장이지만, 어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예 홀로코스트는 날조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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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어빙은 자신이 세운 출판사에서 <로이히터 보고서The Leuchter Reports>를 출간했다.

나치 수용소에서 독가스의 흔적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 보고서를 본 어빙은

스스로 ‘계몽’되었다고 여기며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되어,

그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절멸 수용소로 알려진 시설들은 강제 노동 시설일 뿐이며,

유대인 학살은 영국이 독일을 음해하기 위해 날조한 선전선동이고,

나아가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90년대에 접어들자 어빙은 독일에서 퍼지기 시작한

네오나치와 극우 정당들의 집회를 돌며 연설했고,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으며

자신을 ‘진실을 위해 외로운 성전을 치르는’ 마지막 양심적 지식인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가 말하는 역사 이외에 너는 역사를 가지지 마라’ 따위로 말할 정도로 우쭐대지 않는다. ‘내가 제시한 역사만이 올바른 역사이고, 다른 버전은 모두 틀렸다고 하면서 다른 역사상을 확산하게 하면 안 된다’ 따위로 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것이 내가 <히틀러의 전쟁>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본문 213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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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활개에 혈압이 오른 진짜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는

1993년 <홀로코스트의 진실Denying the Holocaust>이라는 책에서

‘홀로코스트 부정론’ 자체를 총망라해 다루면서

그러한 주장들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도적인 사실 왜곡임을 밝혔고,

데이비드 어빙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의 중심 인물로 지목하고 철저히 비판했다.

어빙은 아마추어이지만 역사 사료에 아주 정통해서

원하는 자료를 자유자재로 취사선택하고 교묘하게 해석하는 등

사료에서 ‘내가 원하는 역사’를 끌어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뇌 빼고 사는 다른 네오나치들보다 더욱 악질적이라는 것이다.

 

감히 유대인딥스테이트프리미이슨일루미나티마징가제트의 앞잡이인

강단사학자 따위가 진리의 십자군이자 재야사학자인 이몸을 비판한 것이

상당히 긁혔던지, 어빙은 립스타트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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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 법에 따르면, 고소를 당한 쪽이 자신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이 재판은 ‘홀로코스트가 재판을 받는다’며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립스타트 측의 논점은 두 가지였다.

1. 어빙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없는 인물로, 의도적으로 사료를 왜곡하고 있다.

2. 그 의도는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기인한 악의이다.

 

2는 그동안 어빙이 한 발언들(수용소에서 새긴 문신을 보여주며 피해를 호소하는 생존자에게 ‘그 문신으로 전후에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고 물은 발언, ‘나는 인종주의자다’라고 대놓고 말한 발언,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 계속 집착하는 이유는 그게 3000년 동안 유대인에게 일어났던 일 중 유일하게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발언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 간단히 입증할 수 있었지만,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1을 증명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사료를 읽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고도의 훈련을 요하는 전문 영역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어떤 사료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는지, 어느 문장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사료를 다루는 역사학자 외에는 없다.

따라서 어빙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면

그의 모든 책과 그가 인용한 모든 사료를 비교 검증하고,

그 해석 및 서술 방식을 설명하고,

그게 학계의 과학적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생각만 해도 번거롭다.

어지간히 독한 놈이 아니고서야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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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독한 놈이 있었다.

어빙 못지않게 어지간히도 쉽지 않은 관상을 한 이 남자는

리처드 에반스라는 역사학자로, 유사역사학을 패는 데 일생을 건 사람이었다.

 

어빙이 히틀러가 뮌헨 폭동 당시 질서를 어지럽힌 당 간부를 제명하는 모습을 보고

괴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고 쓴 대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당대 재판 기록을 보면 괴링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으며,

설령 있었다 해도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는지 세모나게 떴는지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따졌고,

어빙으로부터 ‘독자의 재미를 위해 그렇게 썼다’라는 발언을 이끌어냈다.

 

이외에도 에반스는 진위가 의심스러운 로이히터 보고서만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로이히터 보고서에 따르면 수용소에 독가스 투입 구멍이 없으니

학살도 없었다는 주장을

어빙이 주목하지 않았던 건축계획 도면으로 반박하고,

가스실이 시신의 이나 벼룩을 제거하기 위한 훈증실이었다는 주장을

곧 화장할 시체를 소독하는 건 이상하지 않느냐고

차례로 어빙의 주장들을 반박했다. (자세한 내용은 출처 참조)

 

이에 재판부는 2000년 4월, 3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어빙이 사이비 역사학자이자 인종주의자라는 것은 모두 사실이므로

명예훼손도 없었다고 판결했다.

어빙은 패소로 인해 거액의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되어 파산했으며,

문필가로서의 경력 또한 끊기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입국 금지를, 오스트리아에서는 1년의 징역을 살았고,

이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입국 금지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립스타트가 유대계 혈통을 지녔다는 점, 유대인 커뮤니티로부터

어빙의 주장을 반박할 전문가 팀을 구성할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점 등등 때문에

재판의 판결을 거부하고 어빙을 순교자로 여기는 네오나치들 또한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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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피고인석에 선’ 이 세기의 재판에서 사실 새로 밝혀진 것은 없다.

이미 알려져 있던 것, 입증되어 있었던 것을 반복했을 뿐이었고,

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무익한 논쟁이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전문 역사학자가 생각하는 역사와 대중이 받아들이는 역사에

차이가 쉽게 생길 수 있음을,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유사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수준 미달이라며 무시로 일관하다가는

그 차이가 돌이킬 수 없이 커질 수 있음을 드러냈다.

어빙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는 데는 수십 개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반박할 준비가 되었을 때는 대중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라는 익히 알려진 괴벨스의 말이 더욱 사무치게 와닿는다.

실제로는 괴벨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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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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