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사의 난 (755~763)
1. 당나라 정부군 : 관중·하남의 중앙군과 곽자의·이광필의 삭방군, 안서·북정군 등을 동원한 진압 주체.
위구르 (회흘 카간국): 몽골고원의 당 동맹국으로, 757년과 762년 정예기병을 보내 장안·낙양 수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함.
우전국(호탄): 타림분지 남부의 오아시스 왕국으로, 우전왕 위지승이 병력 5천을 직접 이끌고 당을 지원함.
안서·북정의 서역군: 구자·우전·소륵 등 서역 주둔지에서 차출된 당군으로, 한인과 서역·돌궐계 병력이 섞인 다민족 부대.
아바스 왕조 (흑의대식군): 양경 수복전에 사용되었다고 기록된 서방 아랍 원군. 아바스의 국가적 공식 군사지원보다는 당에 유입된 아랍계 병사·용병으로 보긴하지만, 사병이든 용병이든 참전한 기록은 분명함.
발한나·석국 등 서역 소국 병력: 페르가나·소그디아계 소국들이 당을 돕기 위해 보낸 원군 (국가별 규모와 전투 참여 범위는 불분명함)
2. 연나라 반란군: 안녹산의 범양·평로·하동 3진 병력을 중심으로 봉기했으며, 최초 서진 병력은 사료상 약 10만 명 규모.
동라족: 몽골고원 철륵계 부족으로, 일부가 안녹산에게 흡수되어 반란군 기병의 핵심 전력이 됨
예락하: 통라·거란·해·실위계 병사 등을 선발한 안녹산의 정예 친위·돌격부대 8천명
거란족: 유주·영주 동북방의 거란 포로·귀순병이 반란군과 예락하에 편입됨. 거란 전체의 참전은 아니나, 당의 기미지배에 상당한 불만이 쌓여 주기적으로 반란 일으키던 애들이라 안록산쪽에 붙은거로 보임
해족: 유주 북방의 해족 귀순 병력, 포로가 안녹산의 친위군과 기병대로 편성됨. 얘네도 그동안 당의 기미지배에 불만을 품던 친구들
실위 (몽골): 만주·몽골 동부 출신 병사 일부가 동북 번병 또는 예락하 계통으로 반란 초기에 참가함
아사나종례의 돌궐족: 처음에는 안녹산 진영에 속했으나 장안에서 기병 5천기를 이끌고 이탈한 뒤 삭방에서 사실상 독자 세력화함. 당나라 입장에선 동돌궐, 서돌궐, 후돌궐까지 멸망시켰는데 또 부흥돌궐군이랍시고 들어와서 싸우고 있으면 질리긴 했을거임
3. 난을 틈타 신나서 들어온 세력
토번 제국: 당 서부군이 내지로 빠진 틈에 농우·하서회랑을 잠식하고, 763년에는 아예 본토로 쳐들어와 장안을 일시 점령했으나 곽자의에 의해 격퇴됨.
남조국: 반란 직전까지 당나라 원정군이랑 싸우고 있었고, 안사의 난이 터지자 토번과 연계해 당의 검남·서남 변경을 압박하고 세력을 확대했지만 양경 수복전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음
성당시절 마찰이 없던 국가가 없을 정도고, 기미지배하던 부족들도 많아서 엄청나게 규모가 커짐. 당과 국경 마주한 국가 중 발해 정도가 유일하게 참전 안함. 안사의 난은 발해 서남쪽의 평로·영주·요서 일대에서 시작됐고, 발해가 마음만 먹으면 당의 동북 변경을 공격하거나 안사 세력과 연계할 여지가 있었음.
그런데 발해 문왕은 적극 참전하지 않고 당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음. 당 입장에서는 주력군을 내지로 돌린 상황에서 발해가 동북쪽을 건드리지 않은 것 자체가 상당한 전략적 이익이었음. 속일본기에선 반란군 측이 발해에게 당 조정을 참칭해 지원군을 요청하지만, 발해가 눈치까고 사신 억류시키면서 거절했다고 나옴.
난 진압 이후 당–발해 관계가 눈에 띄게 개선됐고, 762년 당은 문왕 대흠무를 종전의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격상해 책봉했고, 건국 후 처음으로 국가로서 인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