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것은 금명지(金明池)로 북송의 수도 동경(东京) 개봉부(开封府)의 황실 수상 정원으로서, 동경성의 서쪽 교외에 위치했으며, 송 태종 조광의의 태평흥국 원년부터 3년(976~979년) 사이에 조성되었음.
(일단 감상하시져)
금명지는 송 태종이 기초부터 만든 건 아니고 오대십국시대 후주 현덕 4년(957년)에 처음 조성되어, 후주 세종이 남당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무려 수군 훈련용으로 써먹기도 했었던 인공 호수임.
이를 태종게이가 기존의 기반 위에 개축 및 확장을 시작하면서 주위가 약 9리(약 4.5km)에 달하였으며, 저수량이 매우 풍부한 대규모 원림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음.
이럴 때 빠지지 않는 북송 휘종(정강의 변)이 칙령을 내려 수많은 정자와 누각, 화목, 가산(인위적인 산)을 조성하게 하였는 데, 그 모습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였으며, 북송 황실의 봄철 유랑 및 수상 놀이, 용선 경기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함.
또한 금명지 연안에는 버드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동쪽 기슭에 임시 관람석을 배치해 당시 백성들이 용선 경기를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함.
물론 북송 왕조의 지배층은 유학을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금명지의 건축물들은 장식적으로 치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화려했던 당나라에 비해 검약과 절제(??)가 어느정도 이뤄졌다고 보는 편임
본 영상의 사진들은 북송 장택단의 [금명지쟁표도]와 원나라 왕진붕의 [용주탈표도] 두 회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간 축적되어온 송대 건축 양식에 대한 자료도 반영되었고, 최종적으로 각색 및 재구성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고 함.
3D 기술을 통해 송대 금명지의 전체적인 배치와 구조를 재현하였고, 궁전과 누각, 붉은 계단, 석단, 겹처마, 담장과 화목 등이 상세히 구현되는 등, 건축적 디테일이 훌륭하기에 여러분에게 소개해봤음.
유교적으로 검약한 게 이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