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원이 12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에서 급수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길어지는 폭염과 물 부족을 겪는 경남에 용수공급을 하고자 전날 오후 8시를 기해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전국 소방력을 투입했다. 2026.8.12. 이창언 기자
“수압 너무 올리지 마. 논 망가진다.”
12일 오전 11시 20분께 경남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의 한 논. 소방호스를 잡은 대원들이 목소리를 맞췄다.
화재 현장이라면 더 강한 압력이 필요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벼가 쓰러지지 않도록 물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야 했다.
강원 홍천소방서 물탱크차 홍천2호와 소방대원들은 이날 새벽 5시 홍천을 출발해 밀양까지 달려왔다.
폭염에 이은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경남지역 용수 부족이 심화하자, 지역 소방력만으로는 원활한 급수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정부가 전날 오후 8시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서다. 가뭄으로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된 것은 지난해 8월 강릉에 이어 두 번째다.
전국 16개 시·도 소방본부에서 물탱크차 200대와 소방인력 400명이 이날 오전 9시까지 경남에 집결했다. 이들은 14개 소방서 관할에 배치돼 오는 13일까지 농업용수 급수 지원을 이어간다.
밀양에 배치된 홍천2호는 6000ℓ가량의 물을 실을 수 있다. 평소에는 5~5.5kgf/㎠ 수준의 수압으로 물을 방수하지만 이날은 2.5kgf/㎠까지 낮췄다. 벼를 살리려면 힘보다 섬세함이 먼저였다.
김명학 소방장과 정병재 소방교는 호스 방향을 조금씩 바꿔가며 2479㎡ 규모 논에 물이 고르게 퍼지도록 조절했다. 20분 남짓 물을 모두 쏟아낸 뒤에는 대용량 배수펌프 시스템이 마련된 밀양강 둔치로 다시 향했다.
청운리 일대에서는 이틀 동안 물탱크차 2대가 총 1만630㎡ 규모 논에 물을 댈 예정이다. 밀양 전체로 보면 경남에서 가장 많은 물탱크차 40대가 움직이고 있다.
김 소방장은 “홍천에서 밀양까지 먼 거리지만 대민 지원도 소방관의 중요한 업무인 만큼 맡은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부북면 운전리에서도 1322㎡ 규모 논에 소방차가 물을 댔다. 1만2000ℓ 이상을 실을 수 있는 대형 물탱크차를 몰고 온 경기 이천소방서 장호원119안전센터 소속 방재호 소방위 역시 벼가 눕지 않도록 수압을 최대한 낮춰 물을 공급했다.
방 소방위는 “10년 전쯤 경기 안성에서 가뭄이 심했을 때 현장에 나가 급수를 지원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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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가뭄관리시스템 기준 이날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밀양시와 거제시, 함안군은 농업용수 가뭄이 가장 심한 ‘심각’ 단계다. 농업용수 가뭄 심각 단계가 내려진 시·군은 전국에서 경남 3곳뿐이다.
가뭄이 가장 심한 밀양의 농업용수 저수율은 25.7%로 평년 74.5%의 34.4%에 불과했다. 통영시 등 10곳은 ‘경계’, 사천시 등 4곳은 ‘주의’ 단계다. 경남에서 함양군만 농업용수 가뭄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다.
일부 상수도 미보급 도서 지역과 소규모 수도시설 마을 등을 제외하면 생활·공업용수는 대체로 정상 공급되고 있지만 농작물 피해는 확산하고 있다.
경남도는 지금까지 벼를 비롯해 단감·배·사과 등 과수와 콩·깨·고추 등 밭작물을 중심으로 5703농가, 2121㏊에서 가뭄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김태용(64) 밀양시 부북면 청운마을 이장은 “작년에는 수해를 입었는데 올해는 가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며 “부북면 일대 벼 잎을 보면 말라가고 있어 수확량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저수지 하류에서 벼농사를 짓는 곳은 반포기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한평생 밀양에서만 살았는데 비가 이렇게 안 오는 것도 처음이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처음”이라며 “하늘이 야속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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