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보나는 법이 처단하지 못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원샷 원킬’의 능력으로 제거하는 전설적인 킬러다. 물총새처럼 높은 곳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총알처럼 돌진한다고 해서 ‘킹피셔’라고 불린다. 상사로부터 한 인물을 사살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답한다. “낮에 하죠.” 처리 대상의 행동 패턴을 면밀히 분석한 프로다운 판단인가 싶지만, 뜻밖의 이유가 따라 붙는다. “애 데리러 가야 해서요.”
드라마 속 킬러의 모습이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킬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최근 공개된 드라마 속 킬러들은 주어진 임무만큼이나 육아와 살림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달 31일 첫 방송을 한 문화방송(MBC) 드라마 ‘유부녀 킬러’는 동명 웹툰이 원작으로, 워킹맘이자 킬러인 유보나(공효진)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사수기를 그린다. 유보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처단하는 킬러이지만, 동시에 언론사 기자인 남편 권태성(정준원), 세살 딸 권율(황봄이)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중이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은 그가 선풍기 회사 ‘두루미 전자’의 영업직 사원인 줄 알지만, 두루미 전자는 선풍기 회사로 둔갑한 킬러 조직이다. 그는 일터에서는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완벽주의자로,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과 딸을 둔 평범한 아내로 살아간다.
닐슨코리아 집계를 보면, ‘유부녀 킬러’는 지난달 31일 7.4% 시청률로 출발해 지난 8일 9.4%로 상승하며 10%대 시청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아내 유보나와 진실을 추적하는 남편 권태성의 관계가 긴장감을 불어넣고, 일과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킬러의 모습이 흥미를 자아낸다는 평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킬러라는 소재를 활용해 사적 복수 코드를 넣어 카타르시스를 주고, 동시에 워킹맘 유보나가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있을 수 없어 불안감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다”며 “킬러가 주인공인 드라마임에도 ‘시월드’가 등장하는 등 일상성이 강조되며 시청자 입장에선 무겁지만은 않게 드라마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2’는 킬러의 감정과 성장에 주목했다. ‘킬러들의 쇼핑몰’은 전직 용병이자 킬러들을 위한 비밀 무기 쇼핑몰 ‘머더헬프’를 운영하는 삼촌 진만(이동욱)과 삼촌의 유산 때문에 수상한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조카 지안(김혜준)의 생존기를 그린 액션 드라마다.
2024년 1월 시즌1 공개 이후 2년 6개월 만에 시즌2를 공개했다. 주인공 지안은 강인하기만 한 킬러의 기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지안은 킬러들의 표적이 됐던 과거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한 섬으로 잠적하지만, 그곳에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주변인을 경계한다. 더는 숨어있을 수만은 없다고 마음 먹은 그는 훈련을 통해 ‘머더헬프’의 대표로 성장한다. 시즌1에서 흔들림 없는 보호자처럼 보였던 진만은 시즌2에서 조카 지안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등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지난달 25일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김부장’의 주인공 김부장(소지섭) 또한 무자비한 킬러의 모습과 소시민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는 국가의 지시를 받고 북한의 고위급 인사를 처단해온 공작원이지만, 평소에는 평범한 은행원이자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학부모로 살아간다. 유행하는 티셔츠를 선물해 사춘기 딸과 서먹해진 관계를 풀어보려 하기도 하고, 직장 상사의 꾸중에 풀이 죽기도 한다. 국가에 위협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해결사의 얼굴과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의 얼굴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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