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 친일 행적 논란에 가족 대표로 해명…"망언 얹은 꼴" 역풍
"겸손하게 살겠다" 사과에도…"반성하며 살아가라" 비난 쏟아져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인 딸 배우 하영을 대변하기 위해 가족을 대표해 해명에 나선 아버지의 입에서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등장했다.
국가보훈부는 '한일합방'이나 '한일합병'과 같은 단어를 "일본이 국권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라고 정의한다. 마찬가지로 하영의 부친 A 씨가 '한일합방'이라고 언급한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이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공포해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은 날로, '경술국치', '국권피탈' 또는 '한일경제병합' 등으로 쓰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11일 일간스포츠에 하영의 부친 A 씨는 조부의 친일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많은 분에게 불편함을 끼쳐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며 "겸손하게 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서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대정친목회는 경제인과 관료,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이 참여했으며 을사오적인 '매국노' 이완용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에 A 씨는 "조부의 이름이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역사적으로 엄중한 문제와 관련해 이러한 기록이 있다는 점에서 후손으로서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하면서도 당초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던 배경에 대해서는 안상호와 의친왕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고 해명했다.
A 씨는 자신이 보유한 서적 '한국 의학의 개척자'를 근거로 안상호가 일본에서 의친왕의 진료를 맡았고, 의친왕으로부터 조선을 위해 봉사해달라는 권유를 받아 귀국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친왕은 항일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역사적 인물로 알고 있다"며 "의친왕을 늘 가까이에서 모셨기에 조부께서 친일 논란에 연루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안상호의 의료계 활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A 씨는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A 씨는 "한일합방이 된 후 일본인들이 경성의사회를 조직하여 단체행동을 하므로 안상호는 1915년 한국인 의사들을 규합하여 독자적으로 한성의사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 단체는 오늘날 대한의사협회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한일합방'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역사적 사건을 양국의 대등한 결합처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표현이다.
"겸손하게 살겠다" 사과에도…"반성하며 살아가라" 비난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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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인 딸 배우 하영을 대변하기 위해 가족을 대표해 해명에 나선 아버지의 입에서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등장했다.
국가보훈부는 '한일합방'이나 '한일합병'과 같은 단어를 "일본이 국권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라고 정의한다. 마찬가지로 하영의 부친 A 씨가 '한일합방'이라고 언급한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이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공포해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은 날로, '경술국치', '국권피탈' 또는 '한일경제병합' 등으로 쓰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11일 일간스포츠에 하영의 부친 A 씨는 조부의 친일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많은 분에게 불편함을 끼쳐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며 "겸손하게 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서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대정친목회는 경제인과 관료,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이 참여했으며 을사오적인 '매국노' 이완용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에 A 씨는 "조부의 이름이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역사적으로 엄중한 문제와 관련해 이러한 기록이 있다는 점에서 후손으로서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하면서도 당초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던 배경에 대해서는 안상호와 의친왕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고 해명했다.
A 씨는 자신이 보유한 서적 '한국 의학의 개척자'를 근거로 안상호가 일본에서 의친왕의 진료를 맡았고, 의친왕으로부터 조선을 위해 봉사해달라는 권유를 받아 귀국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친왕은 항일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역사적 인물로 알고 있다"며 "의친왕을 늘 가까이에서 모셨기에 조부께서 친일 논란에 연루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안상호의 의료계 활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A 씨는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A 씨는 "한일합방이 된 후 일본인들이 경성의사회를 조직하여 단체행동을 하므로 안상호는 1915년 한국인 의사들을 규합하여 독자적으로 한성의사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 단체는 오늘날 대한의사협회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한일합방'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역사적 사건을 양국의 대등한 결합처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표현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9109384?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