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씨는 “조모에게 들은 바로는, 조부께서는 자신이 죽더라도 한국에 남아 자식들을 키우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많이 하도록 각별히 당부했다”며 “어린 시절 조모는 늘 한복차림으로 손자들을 돌보고, 직접 농사를 짓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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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가 직접 자기 부인 11년 조선살아도 조선말 아예 못한다 함
자식들도 단속해서 집밖으로 안내보내고 거의 딴세상 (조선속 일본)같이 산다 자랑

방문한 기자가 “혹시 시골에서 일가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십니까?”라고 묻자
안상호는 “나는 고독한 사람이 되어서 찾아올 일가가 없어요. 가족이 단출하지요.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어요.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지요.”라고 대답한다.
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1년 동안을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해요.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아이들이 많아서 출입도 잘 못해요. 한 달에 진고개나 한 번씩 갈 뿐이고 아이들도 집 앞에 바로 전찻길이기 때문에 단속하여 내보내지 아니하므로 우리 식구들은 딴 세상에 사는 셈이지요.
매일신보에서도:
조선인(朝鮮人)으로 내지(內地) 부인(夫人)을 얻은 선구자(先驅者)로 내외(內外)가 한결갓치 일본(日本) 풍속(風俗)을 숭상(崇尙)하야 가내(家內)의 언어(言語)는 전연(全然) 내지어(內地語)를 사용(使用)하며 조선인(朝鮮人)과의 교제(交際)를 기피(忌避)하야 일즉이 조선(朝鮮) 옷을 입어본 일이 안슨 즉(卽) 씨(氏)의 가가(家家)는 내선융화(內鮮融和)의 표본(標本)으로 사회(社會)의 칭송(稱號)을 밧든 터이라 하더라.
해석: 안상호 씨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인 아내를 맞이한 선구자였으며, 부부가 한결같이 일본 풍속을 숭상하여 집안에서는 온통 일본어만 사용했습니다. 조선인과의 교제를 피하고 일찍이 조선 옷(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집안은 '내선융화(일본과 조선의 동화)'의 표본으로 당시 사회(친일 세력 및 일제 지배층)의 칭송을 받아왔습니다.
2. A씨는 “안상호의 부인이자 저의 조모가 일본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덧붙이자면 ‘조부께서 일본인 여성과 혼인하게 된 배경’은 의친왕께서 일본 동경에 머물 때 그곳에서 시무를 보던 여성을 소개해주어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안다”면서도 ”일본 여성과의 혼인 자체를 친일과 연결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토로했다.
???? 그 의친왕 아버지 살해한 사람으로 황실가와 심지어 일왕가까지 지목하는게 누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