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매일신보
무려 "쇼와 3년"으로 일왕놈 연호 찍혀 나오던 시절


"내지인 부인과 자녀 거느린 안상호 씨"
내지인* = 왜놈을 일제강점기에 내지인이라 함 (우리가 외지인이라는 거임 ㅅㅂ)
내선일체* =

"내지인 (일본인) 부인과 재미스럽게 살던 안상호씨 세상을 떠나니
안양에는 송덕비가 서 있다."
"시흥군 안양리(현 안양시)에는 그가 소유한 토지를 소작하는 소작인들이 세워준 돌로 만든 송덕비가 있습니다."
실화냐
*안양에 안상호 송덕비까지 세워줌
안상호 전의 송덕비로 서이면 안양리 시장일대에 아직도 있다는 듯함
https://memory.library.kr/konan-search
그의 가정생활을 살펴보면, 22년 전에 도쿄에서 결혼한 일본인 아내 '이소(磯)' 여사 (川口 磯子) 는 부덕(여성의 미덕)을 갖춘 인물로, 슬하에 4남 3녀의 7남매를 두었습니다. 안상호 씨는 조선인으로서 가장 먼저 일본인 부인을 맞이한 선구자였습니다.

방문한 기자가 “혹시 시골에서 일가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십니까?”라고 묻자
안상호는 “나는 고독한 사람이 되어서 찾아올 일가가 없어요. 가족이 단출하지요.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어요.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지요.”라고 대답한다.
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1년 동안을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해요.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아이들이 많아서 출입도 잘 못해요. 한 달에 진고개나 한 번씩 갈 뿐이고 아이들도 집 앞에 바로 전찻길이기 때문에 단속하여 내보내지 아니하므로 우리 식구들은 딴 세상에 사는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