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18년 12월10일자에 ‘완전히 내지화(內地化)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인물이다. 이후 귀국해 순종 전의(典醫)와 이왕직 촉탁의 등을 지내며 국내 1호 양의원을 개원했다.
특히 그가 당시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상호는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인과 같아 옷도 일본 의복을 입고 아내도 일본 여자”라며 “집안의 규율이나 음식, 생활을 다 일본식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또 집안에서 조선어를 쓰지 않아 자녀들이 조선어를 모르고, 조선인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총독부는 이를 성공한 조선인 지식인의 일상적 ‘내선일체’ 표본으로 삼아 식민 통치 정당화에 적극 활용했다.
내선일체는 ‘내지(內地, 일본 본토)’와 ‘조선(鮮)’이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이 조선을 일본과 완전히 하나로 동화시키기 위해 내세운 식민 통치 구호다.이와 함께 안상호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다수 참여했던 실업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에 이름을 올렸다. 대정친목회는 1916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기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가 회장을 맡아 설립한 실업인 단체로, 이완용을 비롯해 조중응, 송병준, 이윤용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고종 독살설 관련 기록에도 언급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비였던 이방자 여사는 수기를 통해 “뜻밖의 소문을 들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시의(侍醫) 안상호에게 독살할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궁내부 사무관이었던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 ‘이왕궁비사’에서도 “전하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민병석 및 윤덕영이 총독부 대관과 모의해 안상호에게 명하여 독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다만,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안상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법적·학술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최종 규정된 명확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하영의 조부 고(故) 안부호 가톨릭대 의대 주임교수가 1949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을 연구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는 소록도 내에서 강제 정관수술(단종)과 낙태, 강제 노동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되던 시기다.
다만, 안 교수가 해당 인권유린 행위에 직접 가담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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