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하영이 여러 매체에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소개한 증조부 안상호가 독립운동가 이재명 습격으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에도 포함돼 있었다.
이완용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것으로 남아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92년 공개된 박영석 당시 건국대 사학과 교수의 ‘이완용 연구’에 실린 논문에는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을 습격한 사건을 설명하면서 안상호를 당시 치료에 참여한 의사들 가운데 한 명으로 명시했다.
논문에는 이완용이 병원으로 옮겨진 뒤 한성병원과 대한의원 의료진, 전의 박종환을 비롯해 안상호 등 당시 의사들의 치료로 “목숨을 구하게 됐다”고 적시했다.이에 생존한 이완용은 8개월 뒤인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의 전권위원으로 조약을 체결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재명 의사는 거사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됐고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1927년 김명수가 편찬한 이완용 추모록 ‘일당기사’에는 “안상호와 전의 박종환이 이완용이 완쾌할 때까지 날마다 찾아와 진료했다”고 기록돼 있다.
안상호는 최근 하영이 KBS2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4대째 이어진 의사 집안임을 강조하면서 그가 하영의 증조부임이 알려졌다. 하영은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양의원을 열었다고 설명하며 “고종 황제까지 진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상호가 1916년 반민족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알린 기록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외에도 안상호는 일본인 부인과 가정을 꾸린 성공한 의사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에 ‘일선동화’ 모델의 사례로 꼽혔다.
안상호는 1918년 12월 10일자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고 했다. 일본인 부인 이소코도 “11년 동안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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