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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유부녀 킬러》, K액션 히어로는 거창한 슈트를 입지 않는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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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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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는 주먹, 무너진 정의의 빈자리를 겨눴다
워킹맘·샐러리맨의 불안이 사적 처단의 카타르시스로 


최근 신드롬급 인기를 끈 드라마 《김부장》에 이어 새로 시작한 《유부녀 킬러》에 대한 반응 역시 심상찮다. 서구의 액션 히어로들과는 사뭇 다른 이들의 어떤 면이 지금 대중의 갈증을 풀어내고 있는 걸까.

《슈퍼맨》에서 클락은 평상시 데일리 플래닛 기자다. 하지만 도시에 위기가 발생하면 셔츠와 안경을 벗고 슈트를 입은 채 하늘로 날아오른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 역시 평범한 시민이지만 범죄가 발생하면 슈트로 갈아입고 거미줄을 쏘아대며 도시를 날아다닌다. 슈퍼히어로들은 이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 초능력을 발휘하는 변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한국의 액션 히어로들도 이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최근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종영한 《김부장》에서 평상시 저축은행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이었던 김부장(소지섭)이 딸이 납치당하자, 자신의 진짜 정체인 전직 요원의 능력을 꺼내놓듯이 말이다. 새로 시작하면서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는 MBC 금토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도 이 살벌한 킬러는 평소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어린 딸의 엄마이자 자상한 남편의 아내다.


엄마가 킬러의 정체성을 오가며 드러내는 극적 대비

하지만 서구의 슈퍼히어로들과 한국의 액션 히어로들이 갈라지는 지점은 이들이 구하려는 대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슈퍼히어로들은 도시 전체를 구하거나 지구를, 나아가 우주를 구하려 한다. 반면 한국의 액션 히어로들에게는 가족이 최우선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굳이 정체를 드러내고 숨겨둔 능력을 꺼내지 않을 정도다.

제목에서 쉽게 드러나듯 《유부녀 킬러》는 킬러와 주부 사이를 오가는 유보나(공효진)를 액션 히어로로 내세운다. 겉보기에는 두루미전자 영업3팀 부장이자, 시어머니의 핀잔을 견디며 유치원생 딸 율이의 육아에 전념하는 지극히 평범한 유부녀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흉악범들을 단죄하는 비밀 암살 조직의 전설적인 저격수, 코드네임 '킹피셔(물총새)'다. 주부와 킬러라는 양극단의 위치가 말해 주듯, 이 액션 히어로는 생명을 잉태하고 돌보는 엄마라는 정체성과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킬러라는 정체성을 오가며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낸다.

이 인물은 또한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녀에게 암살 타깃을 처리하는 일은 거창한 정의 실현이라기보다 퇴근 전에 완수해야 하는 업무처럼 그려진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3년 만에 복귀한 날, 클라이언트 미팅을 빙자해 건너편 건물의 타깃을 저격해야 하는 임무를 그녀가 밤이 아닌 한낮에 하겠다고 하는 이유도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서다.


타깃을 암살하는 일이 퇴근 전에 완수해야 하는 업무처럼 그려지긴 하지만, 《유부녀 킬러》가 그리는 사적 처단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유보나가 처단하는 타깃들의 파렴치한 면면에서 드러난다. 첫 시퀀스에서 유보나의 총격에 쓰러진 타깃은 아내를 죽이고 복역한 후 돌아와 딸마저 살해하려던 패륜적인 범죄자다. 복직한 날 맡게 된 임무의 타깃 역시 임신 중인 아내를 차 사고로 위장해 죽게 하고도 법망을 피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나온 파렴치범이다. 이들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범우주적이고 비현실적인 빌런이 아니라, 현실에서 뉴스를 통해 접하곤 하던 공분의 대상들이다.

이 파렴치범들은 그에 합당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조리한 시스템에 의해 다시 사회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현실은 특히 아이를 가진 엄마들에게 극심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유보나가 타깃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건 그래서 '사적 처단'이긴 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정의 시스템을 겨냥한 타격이 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치워져야 할 쓰레기들을 치우려는 엄마들의 본능이 그 안에 깃드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최근 방영됐던 《김부장》에도 똑같이 들어가 있다. 저축은행에서 존재감 없는 만년 부장으로 소시민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가던 김부장이 숨겨뒀던 전직 특수요원의 능력을 다시 꺼내게 된 계기는 딸에게 가해진 극심한 학교폭력이다. 물론 처음에는 가해자의 아버지가 거대 기업 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누명을 쓴 딸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딸이 납치까지 당하고 죽을 위기에 몰리자, 김부장은 거칠 것 없는 살인 병기로 변신한다.

여기서 김부장이 맞서는 건 심지어 자본의 힘으로 좌지우지되는 국가권력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특임국까지 자본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김부장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 그들의 견고한 고리를 박살 낸다. 즉, 김부장의 액션에는 돈과 권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부조리, 그리고 그로 인해 아이들까지 위험에 빠지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드리워 있다. 이들 액션 히어로들의 일격은 그렇게 가장 가까운 가족을 위험에서 구해 내면서 동시에 부조리한 세상을 부수는 힘을 발휘한다.

슈퍼맨보다 절박한 생활형 히어로들

사실 한국인들은 범우주적 구원 같은 것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바로 우리 눈앞에 놓인 위험과 위기 상황들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샐러리맨들이 느끼는 무력감이나 워킹맘들이 육아와 일터를 오가며 겪는 고단함은 범우주적 차원의 서사를 너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들이 꿈꾸는 소망은 그래서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평범하게, 그래도 행복하게 지내는 일에 가깝다.

또한 한국의 액션 히어로들에게 국가나 정부는 돕고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때로는 싸워야 할 대상으로 그려진다. 국가와 정부의 시스템이 개인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때로는 착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빙》에서 초능력자들이 정체를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건 국가가 그들을 소모품처럼 이용했기 때문이다.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정교사가 되기 위해 본성을 숨기던 기간제 교사가 결국 주먹을 들게 되는 건 끔찍한 학교폭력에도 손 놓는 학교 측의 부조리함 때문이다.

《캐셔로》에서 초능력을 쓰면 자기 재산이 깎여나가 가난해진다는 걸 알게 된 초능력자가 그럼에도 초능력을 쓰게 되는 건 눈앞에서 벌어진 참사 앞에 무력한 안전 시스템 때문이다. 특히 《김부장》이나 《유부녀 킬러》처럼 '사적 처단'이 등장한다는 건, 정반대로 말해 사법 정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전제한다는 뜻이다. 그 부조리한 시스템에 주먹을 날리는 것. 그것이 한국의 액션 히어로들이 보이는 특징이다.

좀 더 범주를 넓혀 보면 《모범택시》 《더 글로리》 《비질란테》 같은 사적 복수극과도 이러한 한국의 액션 히어로들의 경향은 맞닿아 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법적 불신을 사적 정의라는 판타지를 통해 구현해낸 작품들이 한국형 액션 히어로들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눈앞의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액션 판타지가 좀 더 복잡한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중이 일상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피로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작품을 통한 작은 숨통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 한국적인 액션 히어로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진짜 힘이 워킹맘과 샐러리맨 가장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치열하고 위대한 삶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킬러나 요원보다 그들의 삶이 더 위대하다고.   




정덕현 문화 평론가


https://naver.me/FFqycV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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