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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오디세우스 : "아 여신님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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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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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영웅이고, 오디세우스도 그것을 기꺼워하지만 둘의 관계가 항상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음. 얼마 전 글에도 썼지만 오디세우스의 방랑은 아테나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이들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임.

 

  일단 비극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아킬레우스 사후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음.

 

  아킬레우스가 전사하자 대 아이아스(이하 아이아스)는 그의 시신을 들쳐메고 후퇴했고,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인들과 맞서 싸우며 아이아스를 엄호했음. 이 때문에 아킬레우스의 장례식 직후 아킬레우스의 사용하던 무기와 갑옷의 소유권 논쟁이 시작됨. 가장 큰 지분이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저 둘이었지만 그 중 누구의 공이 더 큰지 결정하는게 어려웠기 때문임. 

 

Ajax_Achil.jpg 오디세우스 : "아 여신님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건 좀;;"
<전사한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지키는 아이아스. Fight over the Body of Achilles. Chalcidian black-figure amphora, ca. 540–530 BCE, attributed to the Inscription Painter. Formerly Deepdene, Pembroke Collection (lost). LIMC I, s.v. "Achilleus," no. 850.>
 

  과연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게 맞을까? 시신을 들쳐메고 온 아이아스일까? 아니면 그가 안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엄호한 오디세우스?

 

  여러 전승에 의하면 이는 결국 투표로 결정되었는데, 오디세우스를 총애하는 아테나 여신의 계략으로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가고 둘은 원수가 되어버림.

 


 

  비극 아이아스에서 아이아스는 이 문제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여기며 대단히 빡친 상태로 등장함. 그는 오디세우스에게 투표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를 죽이고 오디세우스에게도 복수하려고 몸이 달아있음. 그러나 아테나 여신이 아이아스를 미치게 만들어 아이아스는 가축을 도살하면서 자신이 그리스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착각함.

 

  아테나는 총애하는 오디세우스를 불러 이 광경을 함께 보면서 "적들을 향해 터뜨리는 웃음이 가장 달콤한 웃음"이지 않냐고 물으며 아이아스를 비웃고, 그에게 신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았냐고 으시댐.

  

아테네 : "보고 있느냐, 오뒷세우스, 신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자보다 더 사려 깊은 사람, 시의적절한 일들을

더 낫게 해내는 사람이 나타난 적이 있긴 하던가?"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118-120

 

 

athen_od.jpg 오디세우스 : "아 여신님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건 좀;;"
<오디세우스에게 고향인 이타카를 보여주는 아테나.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누구보다도 총애하지만 둘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Athena Appearing to Odysseus to Reveal the Island of Ithaca. Oil on canvas, 18th century, by Giuseppe Bottani>
 

  그러나 아테나의 예상과 다르게 오디세우스는 당혹감을 느낌. 물론 아이아스는 그의 원수이고 서로가 서로의 적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인간이 신의 장난감처럼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 결국 자신도 별다를 바 없는 인간임을 자각했기 때문임. 

 

  아이러니하게도 오디세우스는 아테나가 총애하는 그를 위해 마련한 복수를 보면서, 신의 분노를 사면 언제든 추락해버릴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임을 깨닫게 된 것임. 그는 방금까지 적이었지만, 동시에 같은 인간인 아이아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낌.

 

오뒷세우스: "저는 그런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그럼에도, 저 불운한 이가

비록 제 적이긴 하지만, 저는 저이가 가엾습니다.

저이는 가혹한 맹목의 멍에에 묶여 있으니까요.

저이의 몫이 제 것보다 더 심해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야 살아 있을 때조차도 그저 허상에,

아니 텅 빈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저도 보고 있으니까요."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121-126

 

 

  예상과 달리 분위기가 싸해지자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인간 조건에 대해 잘 생각해 보라고 충고하고 사라짐. 신들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에 관계없이 그를 순식간에 땅바닥에 쳐박아버릴 수 있으니 앞으로 주제넘는 짓 하지 말라고 하며.

 

아테네 : "그러니 네가 그만한 것을 직시하고 있다면 신들에게 감히

주제넘은 말을 뱉는 일 결코 없도록 하여라.

결코 잘난 체 굴어서도 안 된다. 설령 네 주먹이 다른 자들보다

더 묵직하다 해도, 엄청난 재산이 깊숙이 쌓여 있다 해도.

하루가 저물면, 또 하루가 솟아오르니 무릇 인간의 만사가

그런 법이다. 다만 신들은 현명한 자들을 아끼고

몹쓸 자들을 증오하지."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127-132

 

 


 

  여기서 잠시 아테나가 왜 그리 아이아스를 싫어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음. 

 

  아이아스는 대단한 전사였음. 호메로스는 그를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으뜸가는 인물(일리아스 2.777), 다른 모든 다나오스인보다 외모와 행동이 출중했던 이(오뒷세이아 11.470)로 평하고, 트로이 왕인 프리아모스에게 그리스 영웅들을 소개하는 헬레네의 평가는 아카이아인들의 압도적인 방벽(일리아스 3.229)이었음.

 

  다만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문제였음. 트로이로 출전하기 전 '신들의 도움을 구하여 승리하라' 라고 조언하는 아버지에게 아이아스는 신들이 도와주면 겁쟁이들조차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신들의 도움 없이도 영광을 얻을 수 있다(소포클레스, 아이아스)고 답하며 자신의 방패에 그려진 아테나의 상징 올빼미를 지워버림(아이아스의 고대 주석). 

 

  또 트로이에서 아이아스를 도와주기 위해 전장에 강림한 아테나 여신에게 "여신이시여, 가서 다른 아르고스인들이나 도와드리세요. 내가 싸우는 곳에서 전열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아이아스)라는 기막힌 대답을 하며 여신을 자신의 전차에서 내쫓아냄(아이아스의 고대 주석).

 

  아테나의 "신들에게 주제넘는 말을 하지 말고, 잘난체 하지도 말라"는 말은 이 에피소드들을 향하고 있음. 그리스 신들의 성격을 생각했을때 이 정도면 죽음을 자초한 수준이기는 함😨

 


 

Exekias_Suicide_d_Ajax_01.jpg 오디세우스 : "아 여신님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건 좀;;"
<아이아스의 자살. 아이아스는 땅에 칼을 꽂은 뒤 거기에 엎어지는 식으로 자살했다. Suicide of Ajax. Attic black-figure neck amphora, ca. 530 BCE, attributed to Exekias. Boulogne-sur-Mer, Château-Musée, inv. 558.>
 

  결국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달은 아이아스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함. 그리고 사건을 파악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군대를 이끌고 아이아스의 진영으로 찾아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아이아스의 장례식을 금지함. 아이아스는 친구가 아닌 적이라며.

 

  그리스인들에게 장례는 중대한 문제였음. 제대로 장례가 치러지지 않으면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임. 이 관념은 일리아스에서도 나타나고(장례를 치러달라는 파트로클로스의 혼백),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의 주된 주제이며, 실제 역사에서도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승리한 아테네 제독들이 폭풍에 휘말린 난파한 선원들을 구하지 못해 적절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는 죄명으로 사형당하기도 했음.

 

  아이아스의 유족들을 돕는 것은 다름 아닌 오디세우스임. 그는 직전까지 원수였던 아이아스를 위해 아가멤논에 맞서고, 반드시 아이아스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응수함. 적이라도 해도 장례를 금하는 것은 신들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고, 아이아스가 적이었기는 해도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훌륭한 전사였던 것도 맞기에 명예를 존중해야 하고, 적과 친구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게 된다는 것임.

 

아가멤논: "기억하시오, 그대가 과연 어떤 인간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지를."

오뒷세우스: "이 사람은 적이었지만, 전에는 고귀한 사람이었다오."

아가멤논: "당신 도대체 무슨 수작이오? 원수의 송장을 이렇게나 어려워하다니!"

오뒷세우스: "적개심보다는 그의 탁월함이 나를 훨씬 더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오."

아가멤논: "인간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두고 변덕쟁이라고 하지."

오뒷세우스: "진실을 말해두오, 지금은 친구들이지만 나중에 쓰라린 사이가 되는 일도 허다하오."

아가멤논: "그대는 나더러 그따위들을 친구로 얻으라고 권하는 거요?"

오뒷세우스: "나로서는 가혹한 영혼을 칭찬하는 것이 꺼림칙하오."

아가멤논: "그대가 오늘 우리를 겁쟁이로 보이게 할 거요."

오뒷세우스: "천만에, 모든 희랍인에게 정의로운 사람들로 보이게 될 거요."

아가멤논: "그러니까 이 송장에게 장례를 치르게 놔두라고 명령하는 거요?"

오뒷세우스: "바로 그거요. 나 자신도 결국 그리로 들어가야 할 테니까."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1353-1365

 

 

  아가멤논은 결국 자신의 친구인 오디세우스의 말빨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맘대로 하라며 돌아감.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의 장례를 성심껏 돕겠다고 약속하며 비극은 막을 내림.

 


 

  이 비극에서 가장 인상깊은 지점은 적에 대한 연민이 발생하는 방식임. 다름아닌 초월적인 신에 의한 보복이 오디세우스에게 (신에 비해) 인간은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임. 극 후반부에 적의 장례를 치러야 할 이유로 신들의 법도, 명예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오디세우스의 저 인간 조건에 대한 깨달음임.

 

  아이아스는 자신의 적이었고, 동시에 신의 적이었지만 그래도 장례는 치러야 함. 왜일까? 오디세우스는 인간 조건에 대해 숙고하라는 아테나의 경고에서 조금 다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임.

 

  아테나의 경고(127-132)는 분명 신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경계를 깨달으라는 말이었음.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진실로 깨달은 것은 인간들 사이의 수평적 연대감임. 지위든 상태든 성격이든 그 무엇과도 관계없이 인간은 모두 신들의 변덕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임. 신에게 버림받아 텅 빈 그림자가 된 아이아스, 그리고 신의 총애를 받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음. 자신 역시 신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는 인간에 불과하니까(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기나긴 방랑에서 자신 역시 정확히 그렇게 되었음).

 

  즉 오디세우스가 아이아스의 몰락에서 보았던 것은 원수의 죽음이 아니라 같은 인간의 죽음이었던 것임.

 

 

참고자료

 

소포클레스. (2025). 소포클레스 전집 (이준석 역). 아카넷.

Gantz, T. (1993). Early Greek myth: A guide to literary and artistic source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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