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김라경이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 개막전의 첫 공을 던졌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로빈 로버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하이츠와 LA 퀸즈의 경기였다. 99세의 여자야구 원로 메이벨 블레어가 시구한 뒤 뉴욕 선발투수 김라경이 마운드에 올랐다. 1954년 막을 내린 전미여자프로야구리그(AAGPBL)의 역사를 잇는 새 리그가 한국 선수의 투구로 출발했다.
김라경은 4이닝 동안 삼진 4개를 잡았다. 팀은 막판 역전패했지만, 첫 선발 등판에서 제 몫을 했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한글 응원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누군가 선수에게 "예쁘다"고 쓰자 곧바로 "얼평 말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진행자와 해설자, 심판도 여성이었다. 여자들이 야구를 하고 판정하고 설명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경기장은 외야 관중석도 없는 소박한 규모였고, 올 시즌 모든 경기가 이곳에서 열린다. 미국 여자야구의 기반도 아직은 작다. 그러나 입장권은 매진됐고 굿즈 판매 줄은 외야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네 팀을 꾸리고 선수들과 계약해 프로리그를 출범시켰다.
한국에는 프로선수가 설 자리가 없다
이번 WPBL에는 김라경 외에도 보스턴 헌터스의 포수 김현아,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의 내야수 박주아가 원년 멤버로 뛴다. 한국 선수 세 명이 미국에서 프로가 됐다는 사실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프로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까지 자랑스러울 수는 없다.
한국 대표팀은 최근 여자야구월드컵에서 세계 4위 멕시코를 꺾었고, 박주아는 한국 여자야구의 월드컵 첫 홈런을 쳤다. 그러나 리틀야구 이후 학교팀과 실업팀으로 이어지는 길은 사실상 없다. 국가대표가 돼도 야구를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
여자야구 선수들은 현실에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성장해왔다.
여성신문은 그 고군분투를 오래 기록했다. 2007년 보도한 국내 최초 여자야구 선수 안향미는 받아주는 대학과 프로팀이 없어 일본으로 갔고, 귀국해 여자야구팀을 만들었다. 2019년 여성체육대상 꿈나무상을 받은 박민서도 리틀야구 최초의 여자 초등학생 홈런 기록을 세웠지만 계속 뛸 팀을 찾지 못해 한때 골프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WPBL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됐지만 아직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뛰어난 선수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진로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정부와 야구계는 적어도 리틀야구를 마친 소녀가 계속 뛸 팀, 국가대표가 생계 때문에 야구를 접지 않을 기반, 여자야구 선수를 위한 상시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김라경이 던진 첫 공은 WPBL의 시작을 알렸다. 그 공은 한국 여자야구의 현실을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이 답할 차례다. 없는 길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선수들의 몫이 아니라 정부와 야구계의 몫이다.
김효선 발행인 hskim@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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