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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살아남아서 강하고, 강해서 살아남은…여성 중식 셰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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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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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숙·정지선·박은영·이문정  셰프. jbtc ‘냉장고를 부탁해’, 유튜브 ‘정지선의 칼있으마’, 유튜브 ‘중식마녀 이문정 TV’

 

“중식계는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방송계에서 활약하는 여성 중식 셰프들의 영상에 빠짐없이 달리는 댓글이다. 특히 박은영 셰프가 <냉장고를 부탁해>(JTBC, 이하 ‘냉부’)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를 뽐내며 좀 더 널리 쓰이는 일종의 ‘밈’이다. 비슷한 계열로 “중식계 벽 높다”도 있다. 여기에 <흑백요리사 2>(넷플릭스)에 ‘중식마녀’로 출연했던 이문정 셰프가 최근 냉부에 합류하면서 중식계의 매력이 재차 회자되는 중이다. 중식은 호방한 요리다. 커다란 칼과 센 불을 쓰며, 속도와 힘이 관건이다. 그래서인지 주방은 기본적으로 전쟁터라지만, 중식 셰프들은 유난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느낌이다. ‘웍질’이나 불 쇼처럼 화려한 퍼포먼스, 다른 음식과 경쟁하는 요리 서바이벌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극적인 맛만큼이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셰프들의 기세다. 요리 서바이벌에서는 다른 장르의 셰프들이 중식 셰프의 과감함에 탄복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하여 예능적인 재미까지 쏠쏠하게 챙기니, 박은영과 이문정에게 쏟아지는 반응은 나름의 존경과 찬사를 담은 호들갑이다. 동시에 되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중식계가 어떤 곳이길래 여성 셰프들이 이렇게 ‘돌아있’냐고?…아니 근데,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여성 중식 셰프들에게 웹소설 캐릭터처럼 해시태그를 붙인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능력여주 #광기여주 #철벽여주 내키지 않지만, 대중적이라서 직관적인 표현을 하나 더 붙이자면 #테토녀 도 있으시겠다. 신계숙, 정지선, 박은영, 이문정, Let’s go. 여성 중식 셰프들은, 그렇다, 씩씩하다. 저돌적이고 거침없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식이 씩씩한 요리니까 여성 셰프들도 씩씩하다.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처럼 인과관계가 알쏭달쏭하다. 씩씩하기에 살아남았는지, 살아남기 위해 씩씩해져야만 했는지. 중식계가 보수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사실은 여성, 화교 출신 셰프들의 폭로로 이제 널리 알려졌다. 중식계 여성 셰프 비율은 정지선이 “10%도 안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할 만큼 여전히 낮다. 그런데 여성 중식 셰프를 추켜 올리는 과정에서 이 맥락은 종종 실종된다. 고군분투하는 여성 중식 셰프의 캐릭터를 톺아보고, 이들의 캐릭터와 중식 생태계의 관계를 살펴보자.

 

중략

 

신계숙 교수

1964년생 신계숙은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이자 미디어에 거의 처음 포착된 여성 중식 셰프다. 신계숙은 2021년 <유 퀴즈 온 더 블럭>(tvN)에 출연하여, 처음 중식을 배우려 할 때 스승이 “너 대한민국 주방 다 다녀봐. 여자가 어디 있냐”라고 반대했다고 밝혔다. 아직 ‘여자는 밥이나 하는 존재’, ‘주방은 여자의 영역’이라는 편견이 공고하던 때이지만 전문 영역의 진출은 여성에게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의 반대에마저 부딪힌 신계숙은 가출을 감행했고, ‘네가 3일만 버티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말에 보란 듯이 3년을 버티며 최초의 여성 중식 셰프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정국에서 EBS의 <세계테마기행>에 출연한 신계숙은 스쿠터를 몰고 다니며 친화력을 뽐내는 모습으로 순식간에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중년 여성 출연자는 시청률이 별로 높지 않다’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뜨거운 반응에, EBS는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새로 선보였다. 50대에 원동기 면허를 딴 여성이 꿈의 오토바이로 불리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다양한 음식과 낯선 상황을 즐기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방송은 2024년까지 시즌 4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이는 이후 <흑백요리사 2>에 신계숙이 ‘중식 폭주족’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하는 밑거름이 된다. 탄탄한 경력에도 흑수저로 출연하여 요리를 즐긴 후, 미련 없이 떠나는 신계숙의 뒷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략

 

중식 요리사 정지선은 흑수저 셰프와의 1대일 대결에서 ‘흑초시레기빠스’라는 창의적인 음식을 선보여 확제가 됐다. 넷플릭스

정지선은 굵직한 프로그램에서 중식 업계의 차별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여성 셰프들끼리의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다른 여성 셰프들이 방송에 나올 수 있도록 이끈다. 혼자 잘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선택이다. 다만 근엄하고 엄격한 성격이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KBS)에서 권위적인 상사, 갑질을 하는 상사로 비쳤는데, 최근 호평 속에 종영한 <언더커버 셰프>(tvN)가 이런 아쉬움을 상쇄했다. <언더커버 셰프>는 스타 셰프가 정체를 숨기고 외국 식당의 막내로 잠입하여 일을 배우는 예능이다. 권투 선수 출신의 써니로 거듭난 정지선은 그 엄격했던 기준이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됨을 증명했다.

 

박은영 셰프, jtbc ‘냉장고를 부탁해’ 홈페이지

1991년생 박은영은 이 계보에서 막내에 속하며, <흑백요리사>와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차세대 스타셰프로 자리매김했다. 처음 방송에 등장했을 때는 외모가 출중한 여성이 으레 그러하듯 ‘중식 여신’으로 불리며 실력보다는 여성으로 평가받았다. 냉부 시즌 2의 유일한 여성 고정 멤버로 발탁된 초기, 냉부가 박은영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박은영은 냉부의 공식 ‘잘 풀린 또라이’, ‘광인’으로 불리며 승승장구 중이다. 한참 위의 선배에게도 기죽지 않는 씩씩함, 양식의 섬세한 과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화끈하게 밀어버리는 줏대, 아재 입맛은 아재가 더 잘 안다는 도발에 “내가 진짜 아재다, 수염 난다, 아침에 면도하고 왔다”라고 받아치는 패기가 중식 셰프다운 한편, 박은영만의 ‘개인의 것’ 매력은 여성성을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모로 평가받는 여성들은 그것이 좋은 평가일지라도, 그 평가에 갇히게 된다. 박은영이라고 그런 고충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박은영은 천연덕스럽게 “그래 나 예쁘다. 유명했다. 너도 나 예쁜 거 알지?”의 태도를 고수한다. 쌍둥이 자매와 서로 자기가 더 예쁘다고 투닥거리고, 친한 셰프의 이상형을 자기라고 확신하며 거들먹거린다. 여경래와의 관계에서 ‘딸’로 소비되는 것에 두려움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렇지 않게 “아빠, 져주세요!”라고 외친다. 젊은 여성이 남성들이 많은 자리에서 춤을 추면 재롱이나 볼거리로 여겨질 수 있거나 말거나, 자기 흥대로 희한한 춤사위를 뚝딱뚝딱 춘다. 동안이라는 칭찬에 피부과 의사인 남편이 시술을 많이 해줬다고 너스레를 떨고 걸그룹이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포부를 펼친다. 박은영 또한 중식계의 성차별을 혹독하게 경험했지만, 박은영에게서는 ‘여자니까’ 더 완벽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흠 잡히면 안 된다는 긴장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자연스러움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더 자유롭게 할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유튜브 섬네일

최근 박은영은 이문정과 냉부에서 팀전을 진행하며, ‘중식 자매’라는 팀명으로 찰떡같은 호흡을 과시했다. 1980년생인 이문정은 흑백요리사 출연 당시, 대용량의 재료를 묵묵히 그리고 신속하게 손질하는 실력과 영화적인 말솜씨로 주목받았고, 개인 유튜브의 독특한 편집 감성으로 떴다. 최고 등급인 중식 조리 기능장 소유자로 요리 솜씨는 물론, 요리 중에 신이 들린 듯 펄쩍펄쩍 뛰거나 밀전병을 내밀며 대뜸 ‘야호’를 외치는 엉뚱한 매력이 발군이다. 이문정은 <옥탑방의 문제아들>(KBS)에서 정지선과의 동료의식을 드러내고, 냉부에서는 선배로서 박은영을 든든하게 이끌다가도 도발하는 권성준에게는 “나대지 마라”라고 일침을 놓으며 웃음을 유발한다.

 

‘사회적 DNA’라는 개념이 있다. 생물학적인 유전자가 아니라 학습이나 문화, 환경을 통해서 전해지는 행동 양식, 태도, 가치관 등을 일컫는다. 여성 중식 셰프들이 DNA처럼 공유하는 기개와 실력에 감탄하다가도, ‘그렇게까지’ 뛰어난 여성들만 일부 생존하는, 소수자는 특별해져야만 하는 업계의 가혹함을 생각한다. 넓게 보면 온 세상이 중식 업계와 유사하고, 제약 속에서 애쓰는 이들이 여성 중식 셰프 같은 처지다. 특별한 그들을 응원하며, 특별하지 않은 이들 역시 차별과 배제 없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80415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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