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살아남은 자의 가장 긴 고백" (오디세이 ★★★★)
1,773 1
2026.08.01 10:20
1,773 1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고전을 건드리는 건 양날의 검이다. 특히 '오디세이아'처럼 수천 년 동안 해석되어 온 신화를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영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흑인 헬레네 캐스팅과 성전환 배우의 기용.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적잖은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지점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시작부터 빠르게 밀어붙인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 도입부를 쇼츠처럼 압축해 편집했다.


트로이 전쟁과 그 전후 맥락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관객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제로 핵심 이미지만 던지고,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과감한 생략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다. 이 영화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선택이다. 덕분에 영화는 초반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에 훨씬 더 많은 밀도를 할애한다. 관객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전쟁이 아닌 귀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붙잡는 건 신화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은, 괴물과 모험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전쟁 이후 인간이 어떤 상태로 남겨지는가'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영웅으로 남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인 동시에 그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채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여정 자체가 밋밋한 건 아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사는 동굴,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녀 키르케의 섬, 저승에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는 장면까지.


글로만 상상해오던 신화 속 이미지들이 스크린 위에 구현된다. 이 영화가 인간의 내면만큼이나 신화, 그 자체의 질감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준다.


이 화려한 여정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지탱하는 건 맷 데이먼이다. 흔히 '맷 데이먼이 고생하면 영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다.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 바닥까지 밀어붙인다. 영웅이 아닌 소모된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피로와 집착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서다.



여성 캐릭터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는 더 이상 순종적으로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다.


20년 동안 왕비의 자리를 지켜온 주체적인 존재로서,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와도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 모든 흐름이 가장 압축적으로 터지는 지점은, 마지막 재회 장면이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활시위를 걸어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고, 이후 페넬로페와의 '침대 시험'을 통해 서로를 확인한다.


반면 영화는 이 과정을 훨씬 내면적인 방식으로 바꾼다. 두 사람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페넬로페는 그의 말 속에서 돌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영웅의 귀환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했던 시간의 이유다. 그는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었는지를 털어놓는다.


그 고백에는 죄책감이 묻어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선택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과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트로이 전쟁은 처음엔 위대함과 승리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러나 후반부 회상에선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죽어간 병사들,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짊어진 채 살아남은 자의 시선. 같은 사건이지만, 기억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이 영화에서 귀환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기억을 직면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신화를 새로 쓰기보다, 원래 그 안에 있던 인간의 균열을 끝까지 파고든다.



후략



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433/0000129425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위즈덤하우스] EBS가 영혼을 갈아 만든 다큐프라임 〈주식의 시대〉 단행본 출간 이벤트 ! 427 07.29 81,922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07.13 231,597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502,445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913,43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863,939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235,85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1 21.08.23 8,682,05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584,13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40 20.05.17 8,807,25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84,10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709,306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30040 이슈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가 후각만으로 주인을 찾았을 때 1 17:23 87
3130039 이슈 어제 청룡시리즈어워즈 상받은 주우재 인스타 업뎃 17:23 114
3130038 유머 새순만 뽑아먹는 후이바오, 그리고 동생이 남긴 댓잎 전량 섭취하는 루이바오🐼🩷💜 17:22 166
3130037 기사/뉴스 경찰이 범죄 증거 놓치면 그걸로 끝..피해자는 변호사비 '눈덩이' 1 17:22 71
3130036 이슈 일부일처 제도가 보편화된 이유 3 17:21 611
3130035 이슈 매일 아침 옆자리 직원에게 아침을 빼앗김 18 17:20 959
3130034 기사/뉴스 프로야구, ‘역대급 폭염에 탄력 운영 시행…최대 1시간 늦게 시작 17:20 144
3130033 유머 수현이가 얼음들 인트로를 만들었는데 찬혁이가 이거다!하고 이어 작사 작곡하더니 단독 작사작곡으로 올림 3 17:19 472
3130032 이슈 만화로 보는 초한지 - 노책사 범증.jpg 17:18 101
3130031 이슈 엄청 말랐다고 난리난 아리아나 그란데 뮤비 10 17:18 629
3130030 유머 김혜수 선배님 앞에두고 사람의 인체가 인상깊었다는 김지훈 2 17:17 856
3130029 이슈 발등에 아기천사 타투 새긴 블랙핑크 제니 2 17:17 771
3130028 이슈 멍하니 듣다가 20년 전 노래라는 거에 놀라서 올린 슈퍼주니어 노래들 17:17 97
3130027 이슈 청룡 캐치캐치 후기와 함께 영원히 사과하는 김재원 7 17:16 747
3130026 이슈 영화평론가 채널의 리센느 안원잘부 영상 리뷰 2탄 : 미나미 3부작 리뷰 17:15 245
3130025 기사/뉴스 이수지 '재선거 논란' 18일 만에 자필 사과문..."무겁게 받아들여" 7 17:12 797
3130024 이슈 [KBO] 7월 월간 성적 순위 4 17:11 543
3130023 유머 대한민국 날씨 1년 요약 9 17:09 1,322
3130022 이슈 내일 전국 날씨.jpg 15 17:08 1,455
3130021 이슈 WONHO (원호) - Don't Wake Me Up! | 쇼! 음악중심 | MBC260801방송 2 17:06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