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살아남은 자의 가장 긴 고백" (오디세이 ★★★★)
1,705 1
2026.08.01 10:20
1,705 1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고전을 건드리는 건 양날의 검이다. 특히 '오디세이아'처럼 수천 년 동안 해석되어 온 신화를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영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흑인 헬레네 캐스팅과 성전환 배우의 기용.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적잖은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지점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시작부터 빠르게 밀어붙인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 도입부를 쇼츠처럼 압축해 편집했다.


트로이 전쟁과 그 전후 맥락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관객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제로 핵심 이미지만 던지고,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과감한 생략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다. 이 영화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선택이다. 덕분에 영화는 초반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에 훨씬 더 많은 밀도를 할애한다. 관객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전쟁이 아닌 귀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붙잡는 건 신화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은, 괴물과 모험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전쟁 이후 인간이 어떤 상태로 남겨지는가'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영웅으로 남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인 동시에 그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채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여정 자체가 밋밋한 건 아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사는 동굴,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녀 키르케의 섬, 저승에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는 장면까지.


글로만 상상해오던 신화 속 이미지들이 스크린 위에 구현된다. 이 영화가 인간의 내면만큼이나 신화, 그 자체의 질감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준다.


이 화려한 여정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지탱하는 건 맷 데이먼이다. 흔히 '맷 데이먼이 고생하면 영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다.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 바닥까지 밀어붙인다. 영웅이 아닌 소모된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피로와 집착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서다.



여성 캐릭터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는 더 이상 순종적으로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다.


20년 동안 왕비의 자리를 지켜온 주체적인 존재로서,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와도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 모든 흐름이 가장 압축적으로 터지는 지점은, 마지막 재회 장면이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활시위를 걸어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고, 이후 페넬로페와의 '침대 시험'을 통해 서로를 확인한다.


반면 영화는 이 과정을 훨씬 내면적인 방식으로 바꾼다. 두 사람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페넬로페는 그의 말 속에서 돌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영웅의 귀환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했던 시간의 이유다. 그는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었는지를 털어놓는다.


그 고백에는 죄책감이 묻어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선택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과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트로이 전쟁은 처음엔 위대함과 승리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러나 후반부 회상에선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죽어간 병사들,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짊어진 채 살아남은 자의 시선. 같은 사건이지만, 기억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이 영화에서 귀환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기억을 직면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신화를 새로 쓰기보다, 원래 그 안에 있던 인간의 균열을 끝까지 파고든다.



후략



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433/0000129425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위즈덤하우스] EBS가 영혼을 갈아 만든 다큐프라임 〈주식의 시대〉 단행본 출간 이벤트 ! 426 07.29 77,046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07.13 230,474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501,82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912,67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862,406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235,85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1 21.08.23 8,682,05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584,13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40 20.05.17 8,807,25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84,10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709,306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29930 기사/뉴스 경남 양산 41.6도‥역대 최고기온 하루 만에 경신 2 14:48 127
3129929 기사/뉴스 20억 아파트에 20년 장기전세… “평생 살겠다” 호소 15 14:48 628
3129928 이슈 에어컨 보유률 낮았던 1994년 미친 더위를 잠시 잊게해준 레전드 공포드라마 3 14:47 268
3129927 이슈 그로구 귀가 팔랑팔랑팔랑 3 14:46 196
3129926 유머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 4 14:46 331
3129925 정치 '관저이전 의혹' 윤한홍 특검 출석…"취임 후 일, 나와 무관" 14:45 40
3129924 이슈 의외로 유서 깊은 2차창작 싸움: 누가 왼른이냐 12 14:45 506
3129923 기사/뉴스 "학습 데이터 오염 막아라"...AI 기업들, 오프라인 '인쇄 서적' 대량 확보 총력전 2 14:45 303
3129922 이슈 히히 웅니왓다 3 14:44 422
3129921 이슈 진짜 구라 한 마디도 안 섞고 호프에 이거랑 똑같은 씬 나옴 8 14:41 1,218
3129920 유머 샤브샤브 야채도 넉넉해서 토끼랑도 나눠먹었습니다 20 14:40 2,462
3129919 이슈 진짜귀여워 5 14:39 532
3129918 기사/뉴스 '장윤기 사건' 축소의혹 전 형사과장 두번째 구속영장도 기각 6 14:38 492
3129917 이슈 서비스 종료까지 D-12 5 14:37 1,124
3129916 이슈 팬들 원하는 건 거의 다 해주는 중인 일본 밴드 내한 근황...jpg 5 14:37 1,050
3129915 유머 난 집착광공이 좋아 만화 4 14:36 709
3129914 이슈 8월 4일 삼성라이온즈시구 nct wish 재희 1 14:36 367
3129913 이슈 [KBO]폭염취소로 올해 시구 두번이나 억까당한 사람... 4 14:36 1,998
3129912 기사/뉴스 [KBO] 김도영 올 시즌 현재 홈런 세계 2위 10 14:35 793
3129911 기사/뉴스 아이들 옆에서 흡연, 전쟁기념관 탱크 올라타기…'중국인 추정' 관광객의 민폐 2 14:35 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