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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단독] 사라진 줄 알았던 조선 근대 걸작, 일본 왕실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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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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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실소장품박물관 소장내역 공개

 

멀리 산과 숲, 밭을 배경으로 망건 쓰고 담뱃대를 문 노인의 풍모가 다가온다. 기울어지는 햇빛을 받아 입고 있는 허연 옷자락 곳곳에 그늘이 진 옆 모습을 인상파 분위기로 그렸다. 102년 전 국내 최초의 양화가 고희동(1886~1965)이 묘사한 습작 인물화의 생생한 모습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이렇게 오랜 세월 잊혀졌던 조선 근대 그림의 숨은 수작들이 일본 도쿄 일왕의 황궁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희동을 비롯해 윤희순(1902~1947), 김용진(1878~1968), 홍득순(1905~?) 등 1920~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화단을 움직였던 서화가 8명의 그림들이 일왕의 거처인 도쿄 황궁의 황실소장품박물관(산노마루쇼조칸)에 100년 가까이 온전하게 보관돼온 사실이 밝혀졌다. 태평양전쟁으로 일제가 패전하기 전 일본 황실 사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였던 궁내성이 1922~1933년 조선총독부 주최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에서 입상한 조선인·일본인 근대 작가들의 수상작 60여점을 사들여 황실 소장품으로 삼았던 기록이 공개되면서 확인됐다. 그동안 조선미전 도록에 희미한 도판으로만 나왔을 뿐, 실체가 어디 있는지 알 길 없어 망실된 것으로만 여겨져온 한국 근대미술사 중요 작품 실체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런 사실을 한국 학계에 처음 알린 이는 황실소장품박물관의 다나카 준이치로 주임연구원이다. 그는 지난 28일 서울 공덕동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회장 조수진) 부설 근현대미술연구소의 발표회장에 나와 자신이 지난 3월 일본에서 먼저 발표한 ‘조선미술전람회와 궁내성’의 논고를 슬라이드 도판과 함께 공개했다.

 

‘조선 미술전람회와 궁내성’은 황실소장품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 중 궁내성이 당시 구입한 조선미전 입상작 회화 작품들에 대한 첫 조사 연구 결과물이다. 다나카는 궁내청 서릉부 도서과 궁내공문서관에 소장된 ‘장려록’과 ‘장려어매상품연도별부’를 바탕으로 궁내성이 매입을 시작한 1922년부터 마지막으로 구입한 1933년까지 과정을 개괄하고, 그 변천과 실태를 검토했다. 그 결과 11년간 입상작 62점을 궁내성이 매입했고, 이들 가운데 조선 작가 9명(고희동, 윤희순, 김창섭, 홍득순, 김용하, 박호병, 김우범, 김용진, 김규진)의 그림과 글씨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은 그림은 서양화 5점과 문인화, 병풍 계통의 동양화 4점으로 나뉜다. 특히 서양화 쪽은 현전하는 작품이 거의 없는 1920~30년대 작가들의 실물이 나와 눈길을 끈다. 윤희순이 조선 소녀를 그린 ‘황의소녀’(1930), 도쿄의 니콜라이 성당을 그린 김창섭의 ‘성당’(1923), 홍득순이 1920년대 말 홍수로 무너진 수원 방화수류정 일대 성벽 자취를 그린 ‘교외의 방화수류정’(1929) 등이 주목된다.

 

발표회를 준비한 미술사가 권행가씨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 조선미전 출품작들이 상당수 전하지 않는데다 1920년대 중후반 조선 근대화단의 실물 그림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양화들은 근대회화사의 공백을 메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당대 화단의 실력자였던 해강 김규진의 17폭 병풍의 일부분 도판도 구입품으로 공개됐으나, 일부분 훼손이 심해 수복한 뒤 새롭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다나카는 전했다.

 

다나카는 “조선미전 입상작 말고도 각계 고위급 인사들이 기증하거나 다른 경로로 입수한 조선 작가들의 작품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전모를 구체적으로 조사한 적은 없다”며 “앞으로 한국 학계와 협업해 한국 근대미술사 주요 작가들이 포함된 소장품 조사 연구를 심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논고는 학회 학술지인 ‘한국근현대미술사학’(2026년 상반기, 8월 초 발간)에 ‘조선미술전람회와 궁내성: 잊혀진 한국근대미술컬렉션에 관하여’란 제목으로 실릴 예정이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705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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