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뇌은행 도입 11년 723명 기증… 기증 희망 의사 밝힌 사람도 5621명
日 등 해외선 50년 전부터 뇌은행… 알츠하이머-파킨슨병 연구 활발
‘초고령사회’ 韓, 뇌 질환 환자 증가… “기증 활성화-인프라 강화” 목소리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치매뇌은행에서 원재경 서울대 의대 병리학교실 교수가 기증받은 뇌 조직을 살펴보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5일 서울 중구 서울대병원 지하 3층에 있는 ‘치매 뇌은행’에서 연구원이 냉동고를 열자 1cm 두께로 잘라 보관 중인 뇌 조직들이 나타났다. 영하 80도의 냉동고에는 174명이 기증한 뇌가 보관돼 있었다. 치매 뇌은행장을 맡고 있는 원재경 서울대 의대 병리학교실 교수는 “이곳은 치매와 파킨슨병 등 뇌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출발점”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국내에서 뇌 기증이 누적 700건을 넘어섰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선 영역이다. 심장, 폐, 간 등 일반 장기처럼 이식을 통해 당장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니어서 ‘꼭 필요하다’는 인식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등 뇌 질환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 연구를 위한 뇌 기증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국내 뇌 기증 700건, 기증 희망자 5600명

29일 국립보건연구원과 한국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 뇌은행이 도입된 2016년부터 이달 28일까지 11년 동안 총 723명이 자신의 뇌를 기증했다. 뇌은행은 뇌를 기증받아 관리하면서 연구용으로 배포하는 기관이다. 현재 대학병원 12곳이 참여하고 있다.
뇌 기증은 희망자가 사망하면 가족의 동의를 거쳐 뇌를 적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뇌는 사후 24시간 안에 꺼내야 조직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 기증된 뇌는 두 가지 형태로 보관된다. 절반은 기증자의 뇌 질환을 분석하는 데 활용되고, 나머지 절반은 냉동 보관해 외부 연구용으로 활용된다. 다른 병원이나 연구소 등의 요청이 있으면 심사를 거쳐 연구에 필요한 부분을 떼어 배포하는 식이다.
최근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받은 뇌 조직을 기반으로 파킨슨병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세포를 찾아냈다. 아시아인의 뇌로 관련 연구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까지 뇌은행을 통해 뇌 기증 희망 의사를 밝힌 사람은 총 5621명에 이른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최용운 씨(53)는 2019년 부모와 자신, 아내의 뇌 기증을 등록했다. 2020년 아버지에 이어 지난해 11월엔 어머니가 뇌를 기증했다. 최 씨는 “핵의학 분야 연구자로 일했기 때문에 연구를 위해 핵심 자원의 기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며 “후손들을 위해 뇌 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 “선진국처럼 뇌은행 활성화해야”
해외에서는 뇌 질환 연구를 위해 50여 년 전부터 뇌은행을 운영해 왔다. 일본은 1967년 첫 뇌연구소가 문을 열었고, 네덜란드 뇌은행은 1985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5388개의 뇌를 확보했다. 알츠하이머 등 신경퇴행성 환자의 뇌만 연구하는 영국의 퀸스퀘어뇌은행은 2023년 기준 2723개의 뇌를 보유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도 뇌 기증을 더 활성화해 뇌 질환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알츠하이머 연구에는 기억과 학습 능력을 관장하는 ‘해마’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해마는 한쪽 뇌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약 4g에 불과해 국내 연구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원 교수는 “서울대병원에 연평균 20건이 기증되는데, 연구에 주로 활용되는 부위는 한정돼 있어 요청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뇌 질환 연구를 위해 인프라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대병원 치매 뇌은행도 연구 인력이 부족해 외부 요청이 왔을 때 적합한 연구인지 심사하고 뇌 조직을 지급하는 데 약 6개월이 걸린다. 뇌은행 소속 대학병원에는 연구개발(R&D) 목적으로 연간 2억 원이 지원되지만 사용처가 제한돼 냉동고 등 노후 장비 교체 등에는 쓸 수 없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737589?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