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차 뒷자리에 앉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리 많지 않았다. 안전벨트에 단단히 매여 이동하는 공간에서 우리가 펼칠 수 있는 가장 유일하고 거대한 놀이터는 오직 ‘말’이었다. 끝말잇기부터 시작해 ‘쥐를 잡자’ 게임까지, 우리는 입으로, 언어로 고속도로 위의 지루한 시간을 버텨냈다.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했던 축제장의 화려함이나 박물관의 거대한 전시품보다, 가끔은 동생과 차 뒷자리라는 좁은 공간에서 나눈 그 소소한 대화와 게임이 훨씬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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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오래된 ‘읽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관람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HOPE)’ 때문이다. 오늘날의 영화는 대개 상영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다. 포스터, 예고편, 그리고 SNS를 타고 퍼지는 입소문까지. 책을 읽을 때와 달리 현대의 영화 관람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스포일러’에 노출된 채 시작되기 마련이다. 어두운 마을, 총을 든 사람들,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존재. 그 한가운데에 아주 커다란 글자로 ‘HOPE’라는 타이틀이 박혀 있다. 초등학생도 단번에 ‘희망’이라고 읽어낼 수 있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언어다. 관객은 이 명료한 글자를 읽으며, 크리처가 가져온 절망 속에서 작은 인간들이 어떻게 희망을 쏘아 올릴 것인지 자연스럽게 기대하며 상영관 의자에 몸을 묻는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단어 ‘HOPE’의 거창함이 아닌, 한국의 낯선 시골 마을 ‘호포리’다. ‘HOPE’라는 영문 철자를 품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별다른 친절한 설명도 없이 곧바로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습격당한다. 이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도상들이다. 호랑이, 운, 희망이라는 묵직한 관념, 그리고 서로의 이름과 족보를 모조리 꿰뚫고 있는 끈끈한 마을 공동체. 한국 관객들은 화면에 ‘보이는’ 뉘앙스만으로도 그 맥락을 빠르게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포섭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스친다. ‘한국’이라는 문화를 텍스트로서 처음 접하는 외국인 관객들에게 이 상징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읽힐 것인가? 보이는 텍스트(HOPE)와 실제로 일어나는 맥락(호포리) 사이의 간극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는 한편으로 아주 익숙한 상업영화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외계인의 비주얼, 디즈니나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지구인과의 대결 구도, 그리고 특별한 개연성 없이도 기이할 정도로 잘 싸우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때때로 느닷없이 치고 들어오는 신파적 클리셰마저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그럴듯한 구조 중 하나로 작동한다.
전작 ‘곡성’이나 ‘황해’에서 감독이 파놓은 트릭에 한번 속아본 관객들은 매 순간 팽팽한 긴장감으로 화면 속 숨은 의미를 ‘읽어내려’ 애쓴다. 그러나 영화는 상징 뒤에 거대한 비밀을 숨겨두기보다, 오히려 화면에 보이는 직관적인 껍데기를 있는 그대로 던져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눈에 보이는 껍데기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스크린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영화 ‘호프’는 눈에 ‘보이는 것’과 그 속에서 ‘읽히는 것’들을 기괴하게 섞어가다 후반부로 갈수록 커지는 압도적인 굉음 속으로 관객을 몰아넣으며 영화적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참으로 21세기다운, 지극히 현대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매체로서의 영화가 지나치게 대중의 직관적인 감각에 치우쳐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인상도 남겼다.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27
기사/뉴스 보이는 것과 읽히는 것 (영화 호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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