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2227078?cds=news_media_pc&type=editn
(중략)
첫 번째 키워드 '애플의 굴욕'입니다.
세계 1위 기업 애플이 미국 정부에 "중국산 반도체라도 쓰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답변]
한마디로, 그동안 인심을 잃은 애플의 업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7월 24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팀 쿡 애플 CEO와 고위 임원들이 최근 몇 주 사이 트럼프 대통령, 러트닉 상무장관, 베센트 재무장관을 직접 만나,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되는 애플 제품에 중국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의 메모리 반도체를 쓸 수 있게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메모리를 못 구해 제품 가격이 뛰게 생겼으니, 중국산이라도 써야 버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동정보다 "무리하게 메모리 납품업체들을 압박해 가격 후려치기를 일삼았던 애플의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수십 년간 단가를 후려쳐 온 애플이 부품사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미국 유일의 대형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쇠퇴한 미국 철강 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면서, 향후 10년간 미국에 2,500억 달러, 약 365조 원을 투자해 생산을 늘리겠다는 맞불 카드까지 내놨습니다.
물가냐, 자국 산업이냐.
트럼프 행정부가 샌드위치가 된 겁니다.
[앵커]
그런데 애플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건가요?
예전엔 부품사들이 애플에 줄을 섰잖아요?
[답변]
AI 시대에 메모리의 위상, 즉 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애플은 세계 최대 메모리 구매자였습니다.
막대한 물량을 앞세워 최저가로 메모리를 확보했고, 메모리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려면 애플의 가격 인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이 공식이 깨졌습니다.
숫자로 보면 확실합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범용 D램 가격은 1분기보다 58~63%, 낸드는 55~60% 급등했습니다.
범용 DDR4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1월 11.50달러에서 6월 21달러로, 6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에, 메모리 회사가 굳이 단가 후려치는 고객을 먼저 챙길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애플이 아니라 메모리가 '슈퍼 을'에서 '갑'이 된 시대입니다.
[앵커]
그만큼 메모리 강국인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상도 달라졌는데요.
그런데 왜 주가는 저평가라는 말이 나오는 건가요?
[답변]
위상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애플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 메모리 시장의 주인공이 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가를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 PER은 각각 4.42배, 4.73배에 불과합니다.
올해 장중 고점 대비 각각 34.8%, 40.9% 하락하면서, 코스피 전체 선행 PER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저점보다도 낮은 역사적 최저 수준까지 밀렸습니다.
참고로 마이크론의 선행 PER은 두 자릿수대로, 우리 기업들이 절반 이하 수준입니다.
이렇게 싼 이유,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른바 '반도체 고점 불안감'입니다.
주가 급락의 주된 원인은 빅테크, 즉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지금 같은 AI 인프라 투자를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입니다.
지금 이익이 사상 최대라도, 이게 꺾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주가를 누르는 겁니다.
둘째, 이익의 지속성에 대한 불신입니다.
메모리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라, 저 PER이 반드시 저평가를 뜻하는 게 아니라, '밸류 트랩' 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밸류 트랩(value trap)은 말 그대로 '싸 보여서 샀는데, 알고 보니 싼 이유가 있어서 계속 싸게 머무는 함정'을 뜻합니다.
사이클 산업은 호황 정점에서 이익이 사상 최대로 찍히기 때문에 PER이 가장 낮아 보이는데, 바로 그 시점이 주가 고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업계에는 "메모리주는 PER이 낮을 때 팔고, PER이 높을 때(불황 바닥) 사라"는 역설적인 격언까지 있습니다.
지금 삼성전자 4배대 PER을 두고 "역사적 저평가"라는 쪽과 "밸류 트랩일 수 있다"는 쪽이 갈리는 것도, 결국 지금의 사상 최대 이익이 계속 가느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 차이입니다.
셋째, 중국 반도체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만약 미국이 애플의 손을 들어줘 중국 메모리의 글로벌 시장 진출 길이 열리게 된다면, 반도체 시장의 경쟁 구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또한 CXMT의 상장 역시 국내 반도체주에 대한 앞으로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증권가에서도 "이익이 반토막 나도 싸다"는 저가 매수론과 "밸류 트랩을 조심하라"는 신중론이 팽팽합니다.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애플까지 무릎 꿇린 AI 시대 메모리의 힘, 그 중심에 우리 기업들이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미국 정부가 애플과 마이크론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 그 결정을 주목하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