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오후 10시경 경기 고양시에 사는 A 씨는 체온이 39.5도까지 오르며 피를 토하는 생후 19개월 딸을 안고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대장이 늘어나 대변을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는 ‘선천성 거대 결장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병원에는 소아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장비도, 소아청소년과 세부 전문의도 없어 다른 큰 병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수술을 받았던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딸은 심정지를 일으켰다. 출동한 119 구급대가 경기 부천시 종합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지만 딸은 끝내 숨졌다.소아청소년과 기피로 병원마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증 응급 소아환자의 ‘응급실 표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2016년부터 지정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소아응급센터)도 배후 진료 인력 부족 탓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호남, 강원, 제주는 ‘소아응급’ 불모지
17일 충남 천안시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소아응급센터에선 류정민 센터장 혼자 당직을 서고 있었다. 32개월 여아가 42도 고열로 내원하자 류 센터장은 보호자 동의서를 받는 것부터 기관 삽관,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 짜기,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판독을 모두 혼자 처리했다. 류 센터장은 “아이 상태가 안 좋아 서울 상급병원으로 옮겼는데 전원을 끝내고 나니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며 “당직자가 모자라 병원을 비우고 전원에 동행할 때도 있다”고 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에 따르면 이달 현재 전국에는 소아응급센터 14곳이 지정돼 있다. 이 중 비수도권에 있는 센터는 5곳에 불과하다. 권역별로 ‘5극 3특’ 중 광주전남과 강원, 제주 등에는 소아응급센터가 아예 없다. 전국 소아응급센터 전문의 104명 가운데 지방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도 26%(27명)에 그친다.
지방 소아응급센터들은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니 모두 전문의 1명이 혼자 당직을 선다. 또 원칙적으로 365일, 24시간 운영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단축 진료를 하는 곳도 있다. 세종시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응급센터는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주 4일만 24시간 진료를 하고, 나머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운영한다.
20일 이곳에서 만난 서정호 센터장도 홀로 당직을 서고 있었다. 서 센터장은 식사를 거른 채 산부인과 질환으로 방문한 15세 학생과 고열에 시달리는 8세 아이, 어지러움과 구토로 방문한 3세 환아 등을 잇달아 진료했다. 그는 “경기 남부권과 충북 지역 소아 환자도 많이 와 주7일 운영하고 싶지만 전문의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 “인건비 인상 등 유인책 필요”
지방 소아응급센터를 뒷받침할 배후 진료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중증 소아 환자는 응급실에서 최종 치료가 불가능해 질환에 따라 소아신경과, 소아외과 등 세부 전문의가 있어야 하지만 지방 병원에선 이런 의료진을 구하기 어렵다.
지방의 한 소아응급센터장은 “뇌병변으로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소아환자가 폐렴으로 응급실에 온다면 소아신경, 소아호흡기, 소아감염 등 전문의가 다 있어야 진료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며 “특히 소아외과 계열은 진료가 어려워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상황”이라고 했다. 선천성 기형과 외상 등을 치료하는 소아외과 전문의는 전국 50여 명에 불과하다.
임택진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법제이사는 “거점 병원을 지정해 의료진을 한곳으로 모으거나 순환 당직을 실시하는 등 집중화를 해야 한다”며 “수도권에 집중된 소아 세부 전문의가 지방으로 올 수 있도록 인건비를 인상하는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부 경증 환자까지 소아응급실로 오면 중증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는다”며 “소아응급센터는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하도록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735901?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