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사람이고, 차량이고 할 것 없이 미어터질 지경입니다.”
8년째 경주 황리단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의 행복한 비명이다. 신라천년의 역사 유적과 유물, 거기에 21세기형 트렌드에 맞춤해 성장하고 있기에 젊은이들의 큰 사랑을 받는 황리단길까지.
경주는 최근 밀려드는 내외국인 관광객들을 맞이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열린 뒤로는 관광객들의 숫자가 더욱 눈에 띄게 늘었다. ‘포스트 에이펙 효과’라 불러도 좋을 정도라고 한다.
2025년 10~11월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경주시를 찾은 국내와 외국 여행객은 그 전과 비교해 22.8% 증가했다. 특히 외국인의 방문이 APEC 이후 35% 이상 늘어난 것은 경주시가 반길만한 시그널이다.
이른바 ‘여행 비수기’로 이야기되는 올해 1분기에도 24만4000여 명의 외국인 방문객이 경주를 찾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8%p 증가한 수치다.
찾아오는 외국인의 국적도 다양해졌다. 과거엔 특정 국가에 편중됐던 것이 올해는 중국, 러시아, 미국은 물론 인도네시아와 대만 관광객들도 경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 베트남과 태국 여행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경주시는 부연했다.
그들은 황리단길에서 멀지 않은 동부사적지와 황룡사지, 첨성대, 대릉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경주, 나아가 한국을 여행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늘어나는 경주 관광객, 일등공신은 ‘황리단길’
예전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 불국사와 석굴암 등 역사 유적 관람을 중심으로 여행을 했다면, 이젠 황리단길과 보문관광단지 등으로 여행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거기에 경주 특유의 문화를 체험하는 감성 기반 콘텐츠 프로그램이 더해져 관광의 즐거움을 느낄 영역도 확대되는 추세다.
APEC 정상회의가 열린 지 8개월 남짓. 이제 경주는 누가 뭐래도 국제적 문화·관광도시로 호평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통상 역사 유적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나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지목한다. 그리스의 경우 미려한 고대 유적이, 이탈리아는 중세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여러 성당이 사람들을 매혹한다.
경주 또한 1500여 년 전 만들어진 거대한 왕릉과 석탑이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넋을 빼놓는 도시다. 거기에 더해 경주는 황리단길이라는 ‘히든 카드’도 가졌다.

한국 청년들 사이에선 이제 황리단길이 ‘경상북도의 독보적 핫 플레이스’로 확고히 자리 잡은 듯하다. 누구나 호감을 느낄만한 특별한 문화적 환경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하고 재밌는 맛집 거리’로 인정받고 있는 것.
그 인기의 저변에는 뉴트로(newtro), 감성, 지역 문화의 효과적 결합이라는 삼위일체가 있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였던 한옥을 감성적인 카페, 액세서리 가게,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리모델링해 MZ세대의 취향에 맞췄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 속에서 모던한 먹을거리와 이색적인 문화까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황리단길이라는 인식이 갈수록 내외로 퍼지는 상황.
거기에 더해 차량 없이도 걸어서 신라의 대표적인 유적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월지, 월정교 등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도 국내외 여행객이 좋아할 관광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황리단길은 경주 시외·고속버스터미널과 지척이다. 세칭 ‘뚜벅이 여행자’는 저렴한 가격에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대여할 수도 있다.
“황리단길이 주목도와 인기를 더해가면서 이제 경주는 잠깐 구경하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닌 ‘머무는 여행지’로 바뀌고 있다”는 관광산업 전문가들의 지적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 됐다.
지난 5월엔 평일에, 6월 초엔 주말에 황리단길을 찾았다. 여타의 관광지엔 인적이 드물어지는 평일에도 황리단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파로 붐볐다. 주말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관광객의 지속적인 경주 유입을 위해선 황리단길이라는 하나의 ‘킬러 콘텐츠만’으론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황리단길에 ‘예스러운 신라 유적’ 더해 관광 활성화를…
사실 경주는 고대와 현대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보기 드문 도시다. 1000년을 이어온 고대왕국 신라의 핵심 볼거리가 경주 안에 거의 대부분 모여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황리단길과 효과적으로 결합시킬 것인지가 향후 경주 관광의 청사진을 그려가는 데 있어 놓쳐선 안 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경주시는 얼마 전 ‘관광 실태조사’와 ‘방문객 통계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의 결과를 종합하면 경주를 찾는 사람들은 황리단길과 연계돼 도보로 관광이 가능한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월지 등을 최고의 경주 여행지로 손꼽았다.
여기에선 낮과 밤을 불문하고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을 만날 수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 때린다’고 경주시는 관광 메리트를 높이기 위해 대릉원을 무료입장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신라 권력자들의 산(山)만한 거대한 고분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미국과 독일, 호주와 일본, 중국과 베트남 관광객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첨성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경주 관광의 귀한 보물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대릉원에서 지척이라 접근성 또한 좋다. 첨성대 일대에서 철마다 피어나는 유채와 튤립, 핑크뮬리는 경주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밤이면 환하고 아름다운 불빛으로 장식되는 동궁과월지 또한 야간 관광지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 서있던 80대 할머니가 “내 평생 이런 예쁜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 역사 유적에 현대적 감각을 플러스한 프로젝트가 가져온 효과다.
조선시대에 무너진 월정교의 복원도 경주가 선택한 탁월한 관광 진흥정책 중 하나로 이야기될 수 있다. 쭉 뻗은 나무다리 위에서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는 낭만은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
여기에 불국사와 석굴암, 다보탑과 석가탑은 또 어떤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과 예술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유적과 유물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의 탁월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한국인에겐 자긍심까지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다. 황리단길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경주 관광 보물’에 기존의 ‘예스러운 경주 관광 보물’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 여기엔 창의성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결국 경주가 다음 세대에도 세계적 관광도시로 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과제의 해결에 달린 듯하다
https://www.kbmaeil.com/article/2026062450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