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Q 촬영하면서 영화의 운명을 느낀다고 하셨죠. <추격자>, <곡성>은 좋은 운명, <황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고요. <HOPE>의 운명은 어떻던가요?
HJ 정말 좋았죠. 다, 다, 다, 다, 하늘이 도와줬어요. 안 도와준 신이 딱 하나 있었는데 버렸어요. 루마니아 산에서 찍은 와이드 샷, 롱샷이었는데 헌팅 갈 때만 해도 와, 어마무시했거든요. 바람이 많이 불면 골짜기의 나무들이 다 부러져서 쓰러지고 숲 전체가 자빠져 있었어요.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휩쓸고 간 것같이. 그런데 막상 촬영하려고 들어가 봤더니 흐리기만 하고 별로 좋은 그림을 못 건졌죠. 아쉬웠어요.
GQ 이번 영화가 착한 영화이고 만든 영화 중 가장 수위가 낮다고 했지만, 저는 다른 의미에서 섬뜩했어요. 일상에 스며든 무지에서 오는 비극이 더 소름 끼쳤고요.
HJ 그러니까요.
GQ 범석과 크리처가 눈 마주치는 장면에선 하여튼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요.
HJ 이상하라고 만든 장면이에요. 그 순간이 이상해야 하고, 어? 이 느낌은 뭐지, 생각이 드는, 당혹스러워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 그 순간을 기점으로 입장이 극명하게 뒤바뀌는 것이 표현되는 장면인데, 황정민 선배님은 좀 힘드셨겠죠. 보이지 않는 것과 시선을 마주치며 하는 연기인데 그런 표정을 보여주셔서 너무 다행인 거죠. 너무 감사한 거죠. 선배님께서 미리 필름에 담아주신 표정이나 리액션이 이후 크리처 작업에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요. 거기서 하는 리액션들에 맞춰서 크리처에 집어넣었어요.
GQ 배우에게 많이 기댔나요?
HJ 늘 기댑니다. 제가 만든 캐릭터이고 쓸 때는 제가 캐릭터에 대한 가장 전문가지만, 배역을 드리고 나서는 달라지죠. (황정민) 그 양반이 그 캐릭터만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심화시키면서 그 배우의 몫이 돼버리죠. 그래서 배우의 선택이, 저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신 분의 선택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첫 테이크, 두 번째 테이크에는 별말씀을 안 드리고 그분께서 해석하고 표현하시는 걸 최대한 담아요. 그다음에 이게 아닌 것 같다 싶으면 그제야 말씀을 드리고요. 제가 괜히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예측하지 못했던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을 끊을 수도 있으니까요.
GQ 대부분 선택되는 장면은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테이크인가요?
HJ 그런 경우가 많아요. 아닌 경우는 드물게 있죠. (황정민) 급의 배우에게는 아닌 경우가 거의 없어요. 베테랑이랑 일을 한다는 건 의지도 되고 기댈 수도 있고, 대화의 내용 자체가 달라지죠. 그 과정을 계속 겪으면서 3회 차, 4회 차, 갈수록 더 단단해지는 길을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서로 디렉션이 필요 없죠. 눈 마주치고 알아서 가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되면 기분이 좋죠. 한 신, 한 신 찍어 나가는 게.
GQ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재미있고 너무 좋았다” 언론 시사회 후에 임현식 배우의 회상 신에 대해 ‘너무’를 세 번이나 말했어요.
HJ 해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가 있어요. 뭔가에 꽂혀서 ‘이런 걸 해보고 싶다’, 그런 순간. 원래는 더 긴 장면이었어요. 시나리오에서 페이지 수를 꽤 많이 차지했어요. 그럼에도 이 대사를 꼭 남겨두고, 이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었어요. 촬영하고, 최종 편집에 담겨 있어서 너무 기분 좋아요.
GQ “외계인이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는 질문에도 그 신 핑계를 대셨죠. 언론 시사 때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최근 여러 모습들에서 위트가 많이 보입니다.
HJ 우리는, 다른 거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매 순간 그렇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은 거라고. 다들 힘든 순간에 제가 웃겨줄 수 있으면 너무 기쁘더라고요. 힘든 상황, 뜬금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그런 짓(?)을 하죠.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절대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상한 소리 하고 키득키득 웃고.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그런 면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커보니 저도 그러고 있더라고요. 하여튼 힘든 순간에 웃을 수 있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GQ 평소에도 좀 웃기신가요?
HJ 저는 한다고 하는데 감독이 저러니까 웃어주는 건지, 진짜 웃겨서 그런 건지 전혀 모르죠. 근데 대부분 안 먹혀요.
GQ 저는 영화 보면서 꽤 키득키득했습니다만.
HJ 그래요? 다행이네요. 사람들이 리액션을 하도 안 해가지고 극장에서 진짜 미치겠더라고, 답답해서.
GQ 나홍진 영화 보면서 웃어도 되나?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에서 웃어도 되나? 죄책감도 들었고요. 그런데 사이사이의 유머들이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아요.
HJ 감사합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텐션, 리듬감을 형성시킬 때 이 영화에서는 유머가 되게 중요한 지점들이에요. 진짜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으면 좋겠는데.
GQ 마음껏 웃어라! 라고 한마디하시죠.
HJ 아~~~ 웃기면 웃어주세요 제발.
GQ 장례식장이 아니니까, 영화관이니까.
HJ ‘B급 갬성’ 있으신 분들이 처음에 많이 소문을 내주셔야 해요. B급 뉘앙스를 알면 디테일이 더 잘 보이거든요.
GQ 이번 촬영 현장에서도 가장 많이 한 말이 “포기하지 마라”였다고요.
HJ 조인성 선배의 되게 위험한 신이 있어요. 승마 팀, 스턴트 팀 전부 다 못할 거라고, CG로 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계속 할 수 있다고 옆에서 설득을 하고, 기운을 북돋워 드리고, 좋은 영향을 드리려고 했어요. 결국 해내셨어요.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하루에 다 끝나버렸죠. 그날 너무 신나서 제가 술 한잔 샀어요.
GQ 시나리오를 쓸 때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요. <HOPE>를 쓰면서는 무엇을 들으셨어요?
HJ 미치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건, 샵의 “가까이 가까이 더 가까이”, 그거 제목이 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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