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과 박경원
한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물들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드물었던 시대에 파일럿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지만 학계의 평가는 전혀 다른데, 이는 둘의 삶의 궤적이 정반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권기옥은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는 위대한 인물로, 만 18세이던 1919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출소 이후에도 독립운동가 활동을 이어 오던 권기옥 여사는 1923년, 약 2년의 교육을 거쳐 비행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 이후에는 중국 국민당군 공군 휘하의 조종사로 근무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한국인 최초의 여성 장군으로, 광복 이후 귀국한 권 여사께서는 전 재산을 장학 사업을 위해 기부하였고, 6.25 전쟁 시기에는 직접 참전하진 않았으나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뼛속까지 애국자였던 권 여사께서는 그 뒤로도 천수를 누리시다가 1988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타계 이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생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박경원의 경우, 본래 직업은 간호사였으나 일제 시대이던 1925년 도일하여, 도쿄의 다치가와 비행학교에 입학, 4년 뒤 2등 비행사 자격을 취득하여 활동하였다.

박경원은 파일럿이 되는 과정에서 일제의 조력을 상당수 받았는데, 자신의 전용기 청연(靑燕)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일본 체신대신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협력을 받았고, 생전 일본군을 상대로 위문 비행을 다수 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여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는데, 1933년 8월 7일 박경원은 비행 도중 갑작스럽게 연락이 두절되었고, 시즈오카현의 한 산에서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해 추락사한 채 발견되었다. 그날은 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는데,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위험한 악천후 속에서 박경원은 무리하게 비행을 강행한 것이었다. 사실상 자살이나 다름 없고, 다윈상 후보나 다를 바 없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죽음이었다.
그녀는 사고 당일에도 일제의 만주국 건국 1주년 축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조종간을 잡았다가 변을 당했는데, 하늘이 있다면 정녕 이것이 '천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최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