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최초의 하프타임쇼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했지만, 정작 의미는 너무 적었다.”
마돈나! BTS! 샤키라! 저스틴 비버! 마이크를 차례로 잡은 초특급 스타들의 면면만 놓고 보면 크리스 마틴과 제작진이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나치게 빽빽한 이 출연진 구성은, 너무도 짧았던 공연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다.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의 잔디 위에는 잠시 방수포가 깔렸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펼쳐졌으며, 집에서 TV로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화면에도 쉴 새 없이 장면이 쏟아졌다. 너무 많은 일이 동시에 벌어진 탓에, 모두 따라가려다가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공연 전체는 누구나 좋아할 법한 무난하고 감상적인 분위기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도 거의 없었다. 여론조사를 거쳐 나온 듯한 무난한 분위기는 아마도 주최측이 정확히 의도했던 것이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하프타임쇼였을 뿐 아니라, 축구 경기의 전통적인 15분 하프타임 안에 공연을 끝내야 한다는 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공연은 시작 전부터 상당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위한 공연을 기획하는 일 역시 결코 쉽지 않다.
미국 시청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비교 대상은 매년 열리는 슈퍼볼 하프타임쇼일 것이다. 슈퍼볼은 보통 단 한 명의 초대형 스타가 공연을 이끌지만, 월드컵에는 무려 48개국 대표팀이 참가한다. 결승전의 전 세계 시청자 수는 20억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따라서 개최국 문화를 수 시간에 걸쳐 조명하면서도 일부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올림픽 개막식과는 달리, 월드컵 하프타임쇼는 불과 미국 TV 시트콤 한 편의 절반 정도 되는 시간 안에 전 세계 대중음악을 대표해야 한다는 터무니없이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접근은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팝 음악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의 수많은 대중도 이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히트곡을 함께 따라 부르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7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 헤드라이너 가운데 두 팀은 공연의 상당 부분을 스페인어로 선보였다. 올해의 배드 버니와, 2020년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를 중심으로 한 라틴 팝스타들의 공연이 그 예다.
이제 6개 대륙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모으고도, 전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 대부분이 그들의 공연을 반가워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스타들을 단 11분짜리 공연 안에서 하나의 일관된 무대로 엮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프타임쇼는 마돈나가 Y2K 히트곡 Music을 부르며 시작됐다. 무대 주변에는 스케이터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파티 참석자들을 연상시키는 복장의 댄서들이 함께했다. 안전한 선택이긴 했지만, ‘클래식한 마돈나’다운 탄탄한 오프닝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브라질 축구의 전설 호나우지뉴와 호나우두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장 안으로 걸어 나오자마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경기장 잔디 위로 중앙에 무지개색 지구가 그려진 거대한 바닥막이 펼쳐지자, 베네수엘라 출신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뉴욕 필하모닉,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펫들까지 이끌며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히트곡이자 스포츠 경기 응원가로도 유명한 Seven Nation Army를 연주했다.
그리고는 또 갑자기, BTS 멤버들이 빨강·검정·흰색 의상을 입고 등장해 세계적인 히트곡 Dynamite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댄서들이 경기장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관중석의 대형 스크린에는 노랫말이 함께 표시됐다
앞서 언급한 모든 장면이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펼쳐졌다. 그래서인지, 하프타임쇼도 중간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제이슨 서데이키스와 브렌던 헌트는 각각 테드 래소와 코치 비어드 역할로 경기장 가장자리를 걸어 나왔다. 다음 달로 예정된 테드 래소의 복귀를 홍보하기에는 딱 맞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는 왜인지 테드 래소가 저스틴 비버에게 짧은 격려의 말을 건넸고, 캐나다의 팝스타 비버는 덥수룩한 수염에 통기타를 든 채 경기장으로 나와 담백하게 편곡한 발라드 Everything Hallelujah를 불렀다.
막연한 감사의 마음을 노래하는 이 곡은, 특정한 메시지는 피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정치색을 배제하고 모두를 고무하려 했던 이번 행사의 모호한 기조와 잘 어울렸다.
TV 중계 화면은 비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췄지만,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이 그의 솔로 공연을 얼마나 제대로 즐길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었다. 반면 샤키라와 나이지리아 스타 버나 보이는 월드컵 공식 응원가 Dai Dai를, 우간다 청소년 댄스팀과 함께 선보이며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순수한 흥겨움만 놓고 보면, 그 순간이 이번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이어 뉴욕의 PS22 합창단이 다시 머펫들과 함께 콜드플레이의 신곡 We Dance를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충분히 사랑스러운 피날레였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경기장 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고, 모두가 노래를 통해 사랑이라는, 다소 진부한 만병통치약을 받아들이자고 외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배경에서 연주하고 있던 크리스 마틴과 콜드플레이를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번 하프타임쇼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한 나머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를 배드 버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의 공연은 개인적이면서도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했고, 정치적 울림까지 담아내면서도 엄청난 재미를 선사했다.
그에 비하면 FIFA 최초의 월드컵 결승 하프타임쇼는 히트곡 모음집 Now That’s What I Call Music! 시리즈의 어느 특정 시점도 떠오르지 않는 광고처럼 보인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전세계를 대표하면서도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공연이라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정말 실망스러운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