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강진우(39)씨는 주변에서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요즘 옷이나 신발을 거의 사지 않는다. 5억원이 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늘어난 데다 식비 부담도 너무 커져서다.
대신 꼭 사고 싶은 옷이 있으면 중고로 싸게 산다. 강씨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고정 지출은 계속 늘어나니 굶을 수는 없고 의류값부터 줄이는 것”이라며 “그래도 꼭 갖고 싶은 건 중고 앱에서 싸게 사서 쓰다가 되판다”고 했다.
고물가·인플레이션 압박에 패션 시장에도 불황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19일 맥킨지와 비즈니스오브패션에 따르면 2021년 1410억 달러(약 210조원) 수준이었던 세계 중고 패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2570억 달러(약 382조원)로 커졌다.
중고 패션 시장은 2030년엔 3930억 달러(약 585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이 기간 일반 패션 시장(신상품 소매)은 2~3% 성장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맥킨지는 “고물가 속에 합리적 가격(Affordability)을 찾는 소비 성향이 강해졌다. 브랜드들이 직접 중고 보상 판매나 자체 리세일(Resail) 플랫폼 구축에 나서면서 주요 비즈니스 인프라로 정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고 옷 구매는 ‘남이 입던 옷을 산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내 취향의 옷을 합리적 가격으로 산다’는 긍정적 이미지로 확산하고 있다. 옷 상태가 거의 새 것과 같은 데다, 제품을 되팔 수 있다는 점도 시장을 키우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 중고 거래에서 인기 있는 건 고가의 명품이나 디자이너 브랜드, 빈티지 패션, 한정판 상품 등이다. 중고거래 앱인 ‘번개장터’는 1020세대의 성지로 불린다. ‘스투시’ ‘디젤’ ‘살로몬’ ‘미스치프’ 같이 10·20대에게 인기 있는 디자이너 의류나 스니커즈 등이 활발하게 거래된다. 번개장터의 월간 거래액(3월 기준)은 915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인 트렌비도 지난 1분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다.
무신사의 중고 패션 서비스인 ‘무신사 유즈드’는 지난해 8월 첫선을 보인 후 10개월 만에 거래액이 10배 늘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기간 판매자 수가 30배 늘었고 판매 중인 상품 수도 6.7배 증가했다는 점이다. 무신사 관계자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가치 소비와 중고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양한 패션 취향을 가진 이용자들이 활발한 공급과 소비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커지자 대기업도 ‘중고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중고 거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가품 여부나 위생 문제를 보완했다. 코오롱FnC는 자사 브랜드 중고 거래 플랫폼인 ‘오엘오 릴레이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코오롱스포츠’ ‘럭키슈에뜨’ 같은 코오롱FnC 브랜드 중고 옷을 수거 신청하면 코오롱에서 수거해 검수한 후 새 옷 살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 코오롱 측은 수거한 옷을 세탁·수선해서 정가의 60~70% 수준에 다시 판매한다. 지난 2월부터는 타사 브랜드(160여 개) 중고 옷도 수거해 재판매한다.
백화점도 나섰다. 현대백화점 신촌점은 한 개층 전체를 ‘세컨드 부티크’로 운영하고 있다. 빈티지 중심의 중고 옷을 세탁·살균해서 판매하는데 중고 옷을 가지고 가면 새 옷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구매→ 사용→ 판매→ 보상→ 재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자사 몰 유입과 재구매를 유도하는 록인(Lock-in)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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