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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엔의 1641년 작품 '폭풍우'. 하는 투자마다 실패하는 '마이너스의 손'이었던 탓에, 화가의 삶도 이 그림처럼 폭풍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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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 화가 제라드 테르 보르흐가 그린 호이엔의 초상화.
성공 가도를 걷던 호이엔은 1636년 어느 날 이상한 얘기를 듣습니다. 얼마 전 동방에서 들어온 튤립이라는 꽃이 있는데, 이 꽃을 사면 누구든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튤립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피식 비웃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친척 누구는 튤립 거래로 떼돈을 벌어 은퇴했다고 하고, 옆 동네 누구는 튤립을 판 돈으로 집을 몇 채나 샀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수습생 녀석들도 튤립 얘기뿐. “지금 안 사면 바보”라나요. 호이엔은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화가로 살아온 지 20년은 된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캔버스와 씨름하는 고단하고 단조로운 생활. 큰 불만은 없었지만, 좀 더 여유 있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해가 바뀐 1637년 1월 27일. 호이엔은 큰맘 먹고 지인에게 튤립 뿌리 9개를 수천만 원에 샀습니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꾸준히 오르기 시작하는 가격에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즈아~!” 그는 일주일 뒤인 2월 4일 1억원어치 튤립 뿌리를 ‘추가 매수’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날인 2월 3일, 튤립 거래의 중심지였던 하를렘에서는 이미 시세 폭락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상투를 잡은 겁니다. 값비싼 투자 상품이었던 튤립은 한순간에 그저 흙 묻은 풀때기로 변해버렸습니다. 이게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인 ‘튤립 파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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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레흐트 근처의 펠쿠스 게이트'(1646). 다소 칙칙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안개 낀 네덜란드 특유의 축축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낸 걸작이라는 게 유럽 사람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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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튤립 가격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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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호이엔의 '폭풍'(1637). 투자가 크게 실패한 해에 그린 그림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는 농부 한 명이 검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화가의 속도 이렇게 까맣게 타들어가지 않았을까. 미묘하고 부드러운 색감 표현이 특징이다.
잘 하는 걸 하자. 확실히 호이엔은 그림에서만큼은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투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1656년, 그의 빚은 18억원에 달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빚은 그가 남긴 재산으로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사들인 집 6채는 총 15억6700만원에 팔렸고, 남긴 그림들과 물건이 2억4150만원에 팔렸거든요.
- 호이엔이 평생 남긴 그림은 확실히 기록된 것만 해도 1200점. 실제로는 약 2천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 -
이렇게 열심히 그린 덕분에 이자를 내고 ‘적자 인생’을 면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이엔의 그림은 그가 죽은 뒤 금세 유행에 뒤처진 작품이 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시장에 그림이 너무 많이 풀린 탓에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했거든요. 호이엔이 재평가된 건,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보다 독창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20세기에 들어선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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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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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발췌 후 일부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