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평범하고 딱딱한 공간으로 여겨졌던 일터가 최근 안방극장의 단골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직장을 배경으로 한 '오피스 드라마'들이 연달아 흥행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작품들은 단순한 사내 연애나 권력 투쟁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판타지적 설정과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다채로운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11일 방송가에 따르면, 현재 방영 중인 tvN 월화드라마 '내일도 출근!'은 직장인들의 현실적인 사내 연애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오피스 로맨스의 정석'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번아웃에 시달리던 7년 차 직장인 차지윤(박지현 분)과 까칠한 상사 강시우(서인국)가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최고 시청률 4.8%를 기록하며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tvN은 '내일도 출근!'의 흥행 기세를 이어갈 후속작으로 역시 웹툰 원작의 '최애의 사원'을 낙점했다.
내달 3일 첫 방송을 앞둔 이 드라마는 아이돌 덕후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설립한 패션 회사에 입사하며 벌어지는 독특한 삼각관계를 그린다. 김혜준과 강훈이 주연을 맡아 이른바 '덕업일치' 로맨스라는 신선한 설정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달 최고 시청률 9.7%로 종영한 tvN '은밀한 감사'도 올 상반기 인기를 끈 대표적인 오피스 로맨스물이다.
신혜선과 공명이 주연한 이 드라마는 대기업 감사실을 배경으로 사내 비리와 풍기문란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극의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최연소 여성 임원과 연하남 사원의 로맨스를 결합해 기존 사내 연애물의 문법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맨스의 비중을 줄이고 직장인의 갈증 해소에 집중한 '판타지 오피스 활극'도 강세다.
지난 6일 종영한 이준영·이주명 주연의 JTBC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은 20대 청년의 몸에 빙의한 70대 재벌 회장이 대기업 내 권력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는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다.
오피스물에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 소재를 결합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이 작품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13.6%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내년 공개를 목표로 제작 중인 서인국·정수정 주연의 tvN 드라마 '운명을 보는 회사원'은 타인의 사주를 읽는 초능력을 가진 직장인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며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직장이라는 극 중 배경 자체가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사회 구성원이자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20∼50대 사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높이기에 최적화돼 있다고 분석한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나라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시청자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는 흐름이 크다"며 "직장은 시청자들이 생활하는 삶의 한 축이자 온갖 애환이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를 묘사한 오피스물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사라질 수 없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과거 오피스물과 최근 작품들의 가장 큰 차별점은 '성 역할의 반전'과 '로맨스 만능주의 탈피' 등 다각도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오피스 로맨스물이 대개 재벌 2세 혹은 엘리트 남성, 그리고 여성 신입사원 간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반복해왔다면, 최근 작품들은 여성 상사와 남성 부하직원의 연상연하 로맨스나 여성 재벌 2세를 전면에 내세우며 '클리셰'(진부한 표현)를 비틀고 있다.
로맨스를 과감히 배제하고 직장 내 부조리를 타파하는 사이다 복수극이나 판타지 서사에 집중해 직장인 시청자들에게 청량감과 대리만족을 안기는 작품도 늘었다.
실제 '신입사원 강회장'의 경우, 영혼 체인지로 청년의 몸에 들어간 아버지가 막내딸과 공조하는 설정을 취했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전개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한 것이다.
드라마를 접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부녀 관계라는 설정 자체가 새롭다", "남녀 간의 사랑보다 부성애를 강조한 서사가 오히려 더 뭉클했다"는 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방송가 안팎에서는 직장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무대로 다채로운 상상력을 더해 서사의 스펙트럼을 넓힌 오피스물들이 앞으로도 지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 평론가는 "과거에는 여성이 직장 내에서도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피동적인 캐릭터로 자주 소비됐다면, 최근에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극을 끌어나가는 추세"라며 "앞으로는 아예 로맨스를 걷어내고 직장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판타지적 전개 등 차별화된 요소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흐름도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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