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수도권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교실을 떠난 김모씨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얘기가 나오자 쓴웃음을 지었다. 드라마 속 교실에서는 강한 어른이 등장해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는다. 선을 넘은 학생과 학부모는 응징당하고,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낀다.
김씨가 겪은 교실은 드라마와 거리가 멀었다. 잘못한 학생을 앞에 두고도 교사는 훈계보다 녹음 여부를 먼저 의식했다. 학생 간 다툼이 벌어지면 사실관계를 따지는 일 못지않게 학부모 민원 가능성을 살폈다.
상담도 방어적으로 이뤄졌다. 교사와 학생이 각자 휴대폰 녹음 기능을 켠 채 마주 앉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학생은 상담 내용을 집으로 가져갔고, 학부모는 이를 다시 들은 뒤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달래고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가, 교사에게는 훗날을 대비해 말을 골라야 하는 절차가 됐다.
김씨는 “요즘 학생 상담은 교실에서 끝나지 않았다”며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학부모 전화까지 감당해야 상담이 끝났고, 심하면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수도권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교실을 떠난 김모씨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얘기가 나오자 쓴웃음을 지었다. 드라마 속 교실에서는 강한 어른이 등장해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는다. 선을 넘은 학생과 학부모는 응징당하고,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낀다.
생활지도와 학부모 상담에서는 남교사라는 점이 때때로 방패가 됐다고 한다. 민원이 많은 학년으로 소문이 나도 남자 교사가 담임을 맡으면 민원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아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가 “남자 선생님이시니 잘 아시잖아요”라고 말하는 일도 있었다.
반대로 성 관련 문제는 큰 부담이었다. 그는 고학년 여학생을 대할 때 특히 조심했다. 신체 접촉은 피했고, 작은 행동도 오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했다. 남교사들 사이에서는 배드민턴채 잡는 법을 알려주다 신고당했다는 이야기, 손목을 살짝 건드렸는데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 같은 사례담이 돌았다.
그는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들으면 위축된다”며 “여학생들의 관계 문제나 감정을 살필 때는 여자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생 변화에 뿌듯했지만…점점 커진 한계
교사로서의 보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한 4학년 학생을 기억했다. 감정이 조금만 상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눈물을 흘리던 아이였다. 초임이던 김씨는 그 학생과 자주 대화했다.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수업 종이 울리면 다른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하고 복도를 걸으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한 학기가 지나자 아이가 변했다. 예전 같으면 눈물이 터졌을 상황에서 침착하게 자기 감정을 말했다. 몇 주 뒤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많이 성숙해졌고, 선생님과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학생이 자라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래 버틸 수 없다고 느꼈다. 교육과정은 점점 추상적으로 변했고, 교과서는 현장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활동을 요구했다. 지역을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과 시내로 나가보자는 식의 내용이 대표적이었다. 김씨는 “운동장 한 번 나가기도 쉽지 않은데 학생 28명을 데리고 시내를 어떻게 가느냐”고 했다.
"녹음은 일상 …학부모 민원으로 돌아와"
김씨는 넷플릭스 ‘참교육’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재밌고 단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나 학교를 다녔고, 교실에서 억울한 일을 겪었거나 목격한 기억이 있다. 그 공간에 강한 어른이 나타나 문제 학생과 학부모를 혼내주면 몰입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교실은 드라마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겠다며 엎드려 있어도 교사가 강제로 일으켜 세울 수는 없다. 학생 간 갈등이 생기면 상담부터 해야 한다. 그 상담도 예전처럼 훈계하고 달래는 자리가 아니었다. 녹음이 일상이 됐고, 말 한마디가 민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는 “신고당한다고 바로 수갑을 차는 것은 아니지만 퇴근하고 경찰서에 가는 상황 자체가 교사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고 했다. 학부모는 전화 한 통으로 교사를 조사받는 상황에 놓이게 할 수 있다.
“잘못 없어도 사과”…학교 밖 갈등도 교사 몫
김씨가 교실에서 가장 무력감을 느낀 순간은 '잘못하지 않았는데 사과해야 할 때'였다. 그는 동료 학년부장 교사가 겪은 일을 떠올렸다. 거짓말과 폭력을 반복하던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온 날이었다. 교장과 학부모, 학년부장 교사가 마주 앉은 자리에서 학부모는 “왜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지 않느냐”며 눈물로 호소했다. 교장은 학년부장 교사에게 사과를 권했고, 그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문제는 그 뒤였다. 한 번의 사과는 민원을 끝내지 못했다. 학부모는 이후에도 “그때 사랑으로 돌봐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추가 민원을 이어갔다. 아이가 다른 학생의 뺨을 때려 벌어진 일이었지만, 학부모는 피해 학생에 대한 사과나 재발 방지보다 “우리 아이도 힘들다”는 말을 앞세웠다. 교사에게는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할 때마다 더 부드럽게 달래고, 다른 학생과 갈등이 생기면 별도로 불러 감정을 살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학교 밖에서 벌어진 일도 교사에게 돌아왔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방과 후 전화를 걸어 “아이가 저녁에 SNS로 다른 학생과 싸웠으니 해결해달라”고 했다. 김씨는 다음 날 학생들과 이야기해 서로 사과하게 했다.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학부모는 교사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며칠 동안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문제 가정엔 개입 어려운 학교
그는 교권 문제가 교육 제도에 있다고 봤다. 학생에게만 책임을 묻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문제 행동의 상당수는 가정에서 시작되고, 결국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는 없다는 것이다.
김씨가 더 문제라고 본 것은 양육자의 권리에 비해 책임을 묻는 장치가 약하다는 점이다. 학부모는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지만, 교사가 부당한 민원을 막을 수단은 많지 않다. 자녀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보호자가 있어도 학교가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는 조사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부모 편을 들고, 당장 부모와 떨어져 지낼 곳도 마땅치 않다.
참관수업에 온 학부모가 아이가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몸으로 밀쳐 벽 쪽으로 몰아붙이는 장면도 봤다고 했다. 제대로 씻지 못한 채 등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경우 방치에 가까웠지만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김씨는 “지금 구조에서는 민원인과 공무원이 붙으면 민원인이 거의 이긴다”며 “양육자의 권리가 책임에 비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절대 가지 않을 겁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내려놓는 데 두려움은 없었을까. 교사의 안정성과 방학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얼마나 편한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교실을 떠난 일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린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세계에서 빠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며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일 자체가 저한테는 낙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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